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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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가 거짓말쟁이 기자라고요?
    제가 거짓말쟁이 기자라고요? 제2, 제3의 마녀 사냥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며  한 네티즌이 자신이 목격한 현장이라며 ‘아고라’에 글과 사진을 올린 후, 지난 6월 1일 새벽 집회 당시 전의경의 집단 폭행으로 20대 여성이 숨졌다는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져 갔다. 동시에 8시 뉴스 보도 후 ‘전의경들에게 둘러 쌓여 구타 당하는 시민이 죽은 여성과 동일 인물이다’라는 소문이 돌면서 SBS에 대한 음모론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진실을 알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 한다’, ‘현장을 촬영한 기자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면 영상을 은폐하지 말고 공개해라’는 등의 항의 전화가 폭주했고, 인터넷 게시판은 항의성 댓글로 몸살을 앓았다.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고, 대응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가는 회사도 나도 거짓말쟁이가 되겠구나라는 판단에 캡, 데스크와 상의 후 해명 글을 올리기로 했다.  다음은 SBS 사이트에 올린 해명 글과 댓글의 일부이다. [취재파일] SBS 보도영상과 '구타 사망설'은 무관합니다   2008-06-03 20:13 [편집자 주 : 인터넷 다음 아고라 자유토론방과 아프리카TV 등에서 SBS가 보도한 동영상에 나오는 시민이 구타 사망설과 관련은 없는지 진상을 알고 싶다는 요구가 많아 당시 현장을 촬영한 영상취재 기자가 당시 상황을 영상과 함께 SBS 인터넷 뉴스부에 보내 왔습니다.]  당시 현장을 촬영한 SBS 영상취재팀의 이용한 기자입니다. 저는 1일 새벽 3시쯤 한국일보 앞 동십자각로에서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전경버스 위에서 촬영 중이었습니다. 웅성대는 소리를 듣고 본능적으로 카메라를 누르니 한 시민이 전의경에 둘러 쌓여 구타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후 방송된 화면을 보고 많은 문의와 요구가 있어서 이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 혹시 사망설 나온 여성은 아닌가?   = 40대 중후반의 남성분이셨습니다. 사망설의 여성도, 서울대 여학생도 아닙니다. 둘째, 구타 당한 사람은 무사한가? = 구타 당한 직후 경찰에 연행되기는 했지만 걸어서 연행된 것으로 보아 크게 다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다만 혹시 이 남성의 신변에 이상을 있을 가능성을 염려해 경찰에 확인 요청했습니다. 셋째, 풀 영상을 공개해 달라. = 동영상은 함께 첨부합니다. 역시 8시 뉴스에서도 해당 내용을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 이 동영상은 촬영 무삭제 동영상입니다. 다만 영상 중간에 화면 컷(Cut)이 있는 것은 촬영할 때 필요한 화면만을 찍기 위한 것입니다. 이것은 타사 방송기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으로 SBS 뉴스에 관심을 가져 주신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koma76158.141.xxx.249 2008-06-05 05:56 정말 분노가 터지네....초딩도 알겠다...정말 너무들 하시네...sbs당신들도 똑같군요...언젠간 진실은 밝혀집니다..제발 국민들 눈속임은 그만하세요   jodie3824.188.xxx.139 2008-06-05 05:45 이것을 촬영한 기자의 실명을 밝혀주시고,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한 시민을 찾아서 안전을 확인해야합니다!! 그리고 풀 영상이 아닌 게 분명한데, 이런 식으로 발표하는 것이 더 이상합니다... 눈 가리고 아웅 식의 보도는 국민들의 맘을 더욱 무겁게 만듭니다...   sunhees121.161.xxx.125 2008-06-05 05:15 캠코더 등 촬영하시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보통 저런 상황에서 컷하지 않고 계속 찍습니다. 찍고 나서 필요한 화면만을 편집하지요. SBS같은 방송사가 테이프가 없어서 컷 하면서 찍겠습니까? 무엇을 숨기고 싶어서 ?   shta1shta1.null.xxx.null 2008-06-04 18:39 저게 무슨 옷 색깔이 다른 거야~~ 딱 보니 옷이 늘어나서 살색으로 보이는 거 구만~ 그리고 카메라맨은 촬영할때 계속 찍지 않고 컷으로 나누어 찍거든.. 그래야 편집할 때 편하거든.. 계속 오래 찍어놓으면 끊기 힘드니깐. 그걸 가지고 편집했다는 둥.. 그리고 희미하게 나오는 것은 모자이크 처리 한 거 아냐.. 아나.. 진짜 애들 왜 이렇게 민감해   s1cb222.108.xxx.249 2008-06-04 16:42 편집한 게 아니라 촬영을 끊어서 한 거라고 위에 파란색 글에 적혀있네요. 얼굴을 흐릿하게 처리한 건 저 분을 위한 배려(?) 아닐까요.. 군홧발로 밝힌 여대생도 얼굴 모자이크 처리해서 나오던데... 제가 보기엔 남자 같네요. 옷이 늘어나서 흰색으로 보였다 검은색으로 보였다 그러는 거 같아요.   psjhys92218.237.xxx.49 2008-06-04 14:22 전경 속으로 끌려들어가신 분의 옷 색깔과 나오신 분의 옷이 확연히 다릅니다. 언젠가 진실은 드러나는데.. 그때 어쩌시려구 이렇게 방관자의 모습을 보이십니까? 이용한 기자님!! sbs지원 여러분!! 제발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sjsj3384221.161.xxx.39 2008-06-04 10:04 저 동영상 눈 썩은 사람이 보지 않는 이상 100% 여자 맞습니다. 저 화면은 뿌옇게 처리해서 긴가민가하게 하는데 원본 영상 보시면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어디서 갖다붙이냐! 전문가 아니래도 편집 했다는거 알겠다!!   arrtieom211.221.xxx.203 2008-06-04 08:20 진짜 SBS 못 믿겠네.. 풀 동영상이라더니 더 편집된걸... SBS는 무관하다. 아 참나.. 진짜 세상은 언제 바뀌려나.. 결국 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힌 후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면서 여대생 사망설은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끝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성을 응원하는 글과 사망설이 이대로 묻히면 안 된다는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도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연일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 시위가 대한민국을 달구고 있다. 시민들의 열기는 촛불의 불씨보다 뜨겁다. 촛불의 불씨는 밤새 꺼질 줄 몰라 아침까지 카메라를 들고 밤을 지새우다 보니 육체적으로 많이 지쳐있다.  국민들에게 진실을 전하기 위해 밤새 현장을 묵묵히 지키는 기자의 양심과 진정성을 의심하고, 마치 ‘마녀 사냥’을 하듯 절대적인 다수가 한 사람을 비웃고, 매도하는 상황은 육체적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는 나에게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이번 촛불 집회는 대한민국의 집회 문화를 바꿔 놓고 있다. 첫째, 20대 학생 위주의 집회가 유모차부대, 예비군부대, 10대 청소년, 직장인, 노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참여한 축제의 장으로 변했다. 둘째, 정치적 구호는 사라지고,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구호가 이를 대신한다. 셋째, 노트북, 캠코더 등 디지털기기로 무장한 웹 2.0 세대들이 집회를 실시간으로 생중계하며 기성 언론이 못하는 부분을 담당하기도 한다. 위의 긍정적인 변화는 인터넷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웹 상에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과 억측들, 그리고 이유 없는 욕설과 비난은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있다. 네티즌들이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스스로 걸러낼 수 있는 자정 능력을 길러 또 다른 제 2, 제 3의 ‘마녀사냥’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기를 기대한다.   이용한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8-07-14
  • <대담> 카메라기자, 안전 확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제목 없음 <대 담> 카메라기자, 안전 확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지난 2일, 여의도에서 ‘카메라기자, 안전 확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를 주제로 대담이 이루어졌다. MBC 장재현 기자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대담에는 KBS 윤재구 기자, MBC  구본원 기자, SBS 이재영 기자, YTN 박정호 기자가 참석했다. 대담에 참석한 각 기자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 취재와 ‘중국 쓰촨성 지진’ 취재에서 느낀 카메라기자 들의 안전 문제에 대한 생각을 기탄없이 털어 놓았다. 그럼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장재현 : 다들 알겠지만, 요즘 카메라기자의 안전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서 카메라기자들이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속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협회에서 경찰청에 항의 방문을 하기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각 사의 사정은 어떠한가? 윤재구 : 다들 아시겠지만, 우리 회사 신봉승 기자가 전경에게 폭행을 당해 오늘 병원에  다녀왔다. 신입 정환욱 기자 역시 폭행을 당해 손가락 인대가 파열돼 수술까지 받았다. 정말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어디 무서워서 취재 나가겠나? 구본원 : MBC도 마찬가지다. 서두범 기자는 연행 장면 촬영 중 뒤통수를 가격 당했고, 김신형 기자는 경찰의 간부급에게 발길질을 당했다. 오늘 협회에서 시경에 항의 방문을 해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다고 들었는데, 이런 일은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호 : 그렇다. 일어날 수도 없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경찰에게 맞은 것도 그렇지만, 시위대에 의해 폭행을 당한 경우도 허다하다. 나는 전자보다 후자가 더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하거나, 그것이 잘못됐으니 하지 말라고 이해를 시키거나, 어떤 행동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분명하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그렇지가 못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위대는 폭력을 휘두르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취재 자체를 못하게 막는다. 나 역시 촛불집회에 취재를 갔었는데, 시위대가 YTN 기자라는 이유로 막아서 그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장재현 : 아니,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시위대가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나? 박정호 : 명확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다기 보다는 누군가 뉴스를 보고 “저 방송사는 보도를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라고 인터넷에 글을 올리면 그것이 일파만파가 되어 속칭 ‘쓰레기 언론사’로 낙인이 찍히는 것 같다. 현장에 갔더니 MBC 외에 타 언론사는 모두 쓰레기라며 MBC를 연호했다. YTN 뉴스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의사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렇게 몰아가는 것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을뿐더러 기가 막히기까지 하다.    장재현 : 그럼, SBS는 어떠한가? 이재영 : SBS의 경우도 시위대 입장에서 봤을 때, 보도방향에 대해 불만이 많은 것 같다. 그 정도가 YTN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부서원들이 촛불 집회 취재 나가는 것을 두려워할 정도다. 시위대가 현장에 접근을 못하게 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들에게 맞은 기자도 한 둘이 아니다. 사다리에 올라가서 촬영하고 있는 기자를 끌어내려 얼굴을 가격하지 않나, 자기 얼굴을 찍었다고 폭행을 하지 않나,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을 가지 않나 말 그대로 '카메라기자 수난시대'이다. 장재현 : 정말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 눈에 잘 띌 수밖에 없고 촬영을 하다보면 모든 신경이 거기에 집중이 되기 때문에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사고가 계속적으로 발생하는 것 같다. 박정호 : 시민들에게 미운털이 박힌 YTN이나 SBS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카메라에 회사 로고가 붙어있기 때문에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취재를 거부한다든가 욕을 한다든가 심한 경우에는 폭력을 휘두르기까지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재영 : 사실 나는 아직 촛불 집회 취재를 나가보진 않았다. 불행히도 오늘 밤 취재를 나갈 예정이지만 말이다. 취재를 나갔었던 기자들에게 촛불집회를 나갈 때에는 웬만하면 회사 점퍼를 입는 것은 삼가란 말을 들었다. 그리고 오늘 회사에서 모 오디오맨이 취재용 사다리에 붙어있는 회사로고를 떼는 것을 봤다. “너 왜 그것을 떼고 있니?”하고 물었더니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덤벼들어요.”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기는 했지만, 그의 말 한마디로 상황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윤재구 : KBS도 촛불 집회 취재를 나가는 사람들에게는 회사 점퍼는 입지 말라고 하는 등 안전에 유의하라고 누차 강조한다. 이미 여러 차례 사고가 있었기 때문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같다. 구본원 : MBC의 경우 그렇지는 않다. 아시다시피 시위대나 시민들의 경우에는 MBC 뉴스의 보도방향뿐 아니라 ‘100분 토론’이나 ‘PD수첩’ 등의 영향으로 MBC를 과도하게 지지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현장에 나가서 취재를 하다보면 부담스러울 정도다. 우리도 경찰에게 폭행을 당한 경우는 몇 건 있었으나, 시위대와의 문제는 없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서는 특별히 할 말이 없다. 장재현 : 갈수록 일하기가 힘들어 지는 것 같다. 이러한 사태를 해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박정호 : 글쎄, 방법이 있을까? 경찰은 ‘재발 방지 약속’했다고 하니 그렇다 치고, 시위대는 1,700여개 단체에다가 자발적으로 나선 일반 시민들까지 모인 것이라고 하는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한 명 한 명 붙잡고 얘기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전 국민을 상대로 “취재진을 때리지 맙시다!”하며 방송을 할 수도 없는 아닌가? 방법이라고 하면 보도 방향을 바꿔 그들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인데, 그 또한 참… 답답하기만 하다. 이재영 : SBS뉴스의 경우, 타사와 보도 방향이 달랐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방송되는 뉴스를 보면 그렇지 않다. 앞에서 박 선배가 잠깐 언급했었지만, 시위대가 뉴스를 제대로 모니터 하지 않는 것 같다. 사실 요즘 SBS 뉴스를 보면 처음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에 대해 보도했을 때와는 많이 다르다. 그런데 시위대의 모습은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 것이다. 결론은 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뉴스를 제대로 보지 않고, 인터넷에서 보거나, 무리 안에서 선동하는 사람들의 말만 듣고 행동에 옮긴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런 생각까지 든다. 그들이 부르짖는 ‘공정 방송 MBC'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뉴스를 만들어 방송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좀 나아지지 않을까? (웃음) 정말 답답하긴 한가보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구본원 : 그렇다. 정말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난 ‘황우석 사태’ 때를 생각해 보라. 단지 MBC라는 이유로 어딜 가도 욕먹고, 배척당했었다. 후에 역전이 되기는 했지만… 나는 보도방향이 바뀐다고 그들의 자세가 완벽히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시위대가 노리는 것이 그것, 다시 말해 보도 방향을 바꾸어 본인들이 원하는 대로 뉴스를 만들도록 하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위대가 보도 방향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보며 긍정적 쪽으로 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이렇게 하니까 우리 뜻대로 되네?'하는 생각에 더 강하게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윤재구 : 나는 그렇게까지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만나서 얘기를 해보면 생각보다 쉽게 일이 풀릴 수도 있다고 본다. 문제는 그들의 주체가 모호하다는 것인데, 명분뿐이라고 해도 어찌되었든 그들의 대표가 있고, 또 그 1,700 여 개의 단체 중 이 집회를 가장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곳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또 앞으로 그 단체들이 모여 하나의 단체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래도 그 축은 참여연대나 경실련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러므로 협회 차원에서 그런 단체와 접촉해 이야기를 풀어가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박정호 : 그러나 오히려 그들을 자극할 수도 있다. 확실한 주체라고 보기도 어렵고, 특히 그들 역시 통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괜히 말이 와전되기라도 할 경우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숙고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재영 : 그렇다. 심각해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런 잘못이 없는 상황에서 취재 거부는 둘 째 치고 매까지 맞아야 하는데 대해 그들의 얘기를 듣고 우리의 얘기를 전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 취재를 나가보지 않아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당당하고 싶다. (모두 웃음) 장재현 : 여러분의 이야기 잘 들었다. 내가 묻기는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취재진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있겠나? 각 회사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스스로 조심하는 수밖에… 박정호 : 회사에서는 항상 조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어디 그것이 되나? 위험한 줄은 알지만 뛰어드는 것이 우리의 생리인 것을. 위험하다고 모두 피한다면 어떻게 취재를 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때 보면 우리가 죽을 줄 알면서도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 같다. 이재영 : 부나방? 아주 좋은 비유인 것 같다. 나 스스로를 봤을 때도 위험하면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들어가는 것 같다. 이것이 기자정신인가?(웃음) 다른 분들도 느끼셨겠지만, 이런 경향이 갈수록 심화되었으면 심화되었지 약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선언적으로라도 이에 대한 취재 가이드라인이나 매뉴얼 등 대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장재현 : 맞는 말이다. 사실 가이드라인이 있다고, 또 매뉴얼이 있다고 그 선에서 안 들어갈 우리가 아니지만, 어떤 식으로든 이런 상황에 대한 준비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윤 기자가 얘기한 것처럼 우선은 대화를 시도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시위대의 주체가 모호하다고 그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게다가 곧 단체를 수립할 예정이라고 하니 접촉을 시도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되겠다.  그럼, 좀 거꾸로 가는 감이 없지는 않지만 ‘중국 지진 취재’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자. 우리나라 취재진의 경우, 재난 재해 취재를 가면서도 제대로 된 준비를 하는 것을 거의 보지 못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이번에 ‘중국 지진 취재’를 가서 어려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었는지 한 사람 씩 얘기 해보자. 박정호 :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겠다. ‘안전’과는 조금 다른 얘기지만, 카메라를 빼앗겼던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내 경우 여행 비자로 중국에 입국했기 때문에 카메라 반입이 안됐다. 그런데 시범적으로 하나씩 가방을 여는 중에 내가 걸렸다. 당시에는 하늘이 노랗고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장비를 부쳐 달라고 해야 하나? 그럼, 그 동안은 무엇으로 취재를 하지? 회사로 돌아가야 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다행히 S전자 현지 법인에서 캠코더를 빌려 무사히 취재를 하긴 했지만 그렇게 진땀이 났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재영 : 우리 회사도 나는 취재 비자를 받고, 같이 간 동료는 여행 비자를 받아서 중국으로 들어갔다. 그러므로 나는 ENG를 가져갔고, 동료 기자는 여기 있는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6mm 캠코더를 가져갔다. 다들 취재비자 낼 생각을 못한 이유는 중국이라는 나라 특성상 취재 비자 발급이 잘 안되며, 발급이 되더라도 7일에서 10일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통념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다른 취재 건과 달리 중국이 자기 나라의 어려움을 만 천하에 알려 원조를 받아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외교부를 통해서 내긴 했지만 30분 만에 취재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ENG를 들고 들어가니 막힐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OK였다. 취재 자체는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참고하면 될 것 같다.    윤재구 : 그런 것을 몰랐다. 그저 당연히 중국은 취재 비자를 받아 가기 어렵기 때문에 6mm를 들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준 프로용 6mm를 같이 간 동료는 손바닥 만 한 핸디캠을 가지고 갔는데, 그곳 초등학교 무너진 것을 찍다가 공안에게 걸려 자칫하면 잡힐 뻔한 적도 있다. 게다가 우리는 비행기를 탈 때 짐 6개를 부쳤는데, 중국 공항에서 보니 2개 밖에 없는 것이었다. 공항 출입하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알아보니 인천공항에 짐이 있다고 했다. 119구조대와 함께 비행기를 탔는데 구조대의 짐이 많아 짐을 빼는 과정에서 함께 빠진 것 같다고 한 마디로 황당했다. 급한 대로 특파원 선배에게 연락해 캠코더 한 대를 빌려 짐이 올 때까지 취재를 했다. 이런 일이 없으려면 중요한 짐은 작은 가방에 넣어 손으로 들고 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구본원 : 다들 우여곡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경우 그렇게 특별한 일은 없었다. 하나 있었다면 노트북 전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차를 한 대 빌렸는데 장재현 : 도움이 되는 얘기들이었다. 특히 중국 취재를 갈 때는 당연히 여행 비자에 6mm 캠코더를 생각하게 되는데 이런 재난 취재의 경우, 얘기가 다르기 때문에 취재 비자를 받아 당당하게 취재할 수 있었다는 점은 알아 두면 좋을 듯하다. 그럼, 이번에는 ‘안전’에 관한 얘기를 좀 해보자. 무엇이 두려웠고, 어떤 점이 아쉽다고 느꼈나? 이재영 : 나는 다른 것보다 전염병이 가장 무서웠다. 특히 모기! 날이 습하고 더웠기 때문에 시체 부패 속도가 매우 빨랐다. 둘 째 날인가? 세 째 날인가? 그 날도 시신 발굴 현장을 열심히 취재하고 있는데 코이카 관계자가 다가오더니 모기를 조심하라는 것이었다. 시신에 붙어 있던 모기가 사람에게 옮겨 다니면서 전염병을 전파한다고 했다. 그 말을 들고 보니 모기가 어찌나 많든지… 그 덥고 습한 날 점퍼도 벗지 못하고 속된 말로 떠 죽을 뻔 했다. 그 때 생각났던 것이 ‘모기 퇴치 스프레이’이다. 왜 아기들 잘 때 모기 물리지 말라고 뿌려주는 것 있지 않나? 이것이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박정호 : 그렇다. 전염병이 무서웠다. 보통 예방주사는 일주일에서 열흘 전에는 맞아야 효과가 있는데 우리 일의 특성상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주사를 맞는단 말인가? 모기도 모기지만 나는 광견병이 더 무서웠다. 중국인들의 사망 원인 5위 안에 드는 것이 광견병이라고 하는데 돌아다니는 개체의 반이 ‘개’인 것 같았다. 현지인의 얘기에 따르면 개들이 피 냄새로 인해 미쳐 사람을 무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다고 했다. 나와 함께 다니던 현지 코디네이터가 개에게 물려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그 병원에 만도 개에 물린 사람이 300명은 된다고 했다. 거기다 광견병 주사를 맞은 개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광견병에 걸린 개에게 물렸을 경우 죽을 수 있다고 의사가 얘기했다. 치료약도 없다고 하니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방주사를 맞으려 해도 효과가 없다고 하고 개만 보면 어찌나 몸이 떨리던지… 특히 재난 지역에 가는 사람들은 ‘개 조심’도 해야 할 것 같다. 구본원 : 협회에서 지난해 재난 보도 매뉴얼도 만들었지만,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진 것 보다 상황별 핸드북을 만들어 취재를 가는 사람이 출장 명령이 내려지는 즉시 참고하고, 준비할 것은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책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잘 봐지지도 않고 가지고 다니기에도 어중간한 사이즈이다. 각 재난 유형별로 취재를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손바닥 만한 핸드 헬드 매뉴얼을 만들면 좋을 것 같다. 이재영 : 핸드 매뉴얼에서 착안한 것인데, 재난 유형별 키트를 만들면 어떨까? 지진이면 지진, 수해면 수해, 화재면 화재, 핸드 매뉴얼과 함께 그것을 사무실에 항상 배치해 두면 아침에 출장 명령이 떨어지더라도 카메라와 그것만 들고 나가면 되지 않은가? 윤재구 : 맞다. 키트까지는 아니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 웬만한 것은 준비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것 외에 필요한 것만 현지에서 구입했다. 기본적인 준비를 해둘 필요는 있는 것 같다. 가서도 그곳 코디네이터가 방독면 등 필요한 것을 사왔기 때문에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전염병 무서운 줄도 모르고 다녔다. 현지 코디네이터가 알약을 사서 함께 먹지 않으면 같이 다니지 않겠다고 해 중국에 있는 내내 그 알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이 그 약을 먹으면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참 무모한 짓이긴 했지만, 여하튼 아무 일이 없어 정말 다행이었다. 장재현 : 그렇다. 다른 것은 둘째 치고라도 기본적인 안전 장비가 들어있는 취재 키트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송출이 여의치 않아 사고 지역과 다소 떨어진 곳에 숙소를 잡았기 때문에 그렇지 않지만, 본래 지진 지역 취재를 가면 언제도 여진이 올지 모르기 때문에 건물 안에 들어가지 않고 노숙을 한다. 예를 들어 그런 상황에 침낭하나 없이 갔다면 그 기간 동안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기본적인 것들을 계산해 ‘재난 취재 키트’를 만들어 상비해 놓은 매우 필요한 일이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집회’ 취재에서부터 ‘중국 지진 취재’까지 취재진의 안전에 대한 다소 긴 얘기를 나누어 보았다. 취재 현장은 카메라기자들의 일터이다. 그리고 일터에서 근로자의 안전 확보는 기본이다. 우리의 직업 특성상, 완벽한 안전을 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눈 얘기가 문제의 해답이 되지는 못할 테지만, 이것을 시작으로 회사 차원이나 협회 차원에서 이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7-14
  • 5.12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 '8'의 저주
    5.12 중국 쓰촨성 대지진 참사 - '8'의 저주 “극도의 불안감과 압박감 엄습…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기를” - 취재진 전용기 -  14일 밤 중국 '청두(成都)공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 출국 장소에서부터 비행기 탑승하기까지 현장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취재진들이 보였다. 모두 한 비행기를 탈 것이라 예상했고 기내에서는 서로들 인사까지 나누는 분위기였다. 이 비행기는 '쓰촨성 대지진 취재'를 위한 대한민국 '언론사 전세기'이자 지진 현장으로 가는 첫 비행기. 청두에 도착하니 바로 항공사 직원의 한마디 ''이번 주말부터 운항이 전면 취소되오니 북경이나 상해로 경유하여 귀국 하십시오" 이 한마디에 지진의 심각성을 새삼 다시 느끼며 현장으로 출발. - 난공불락의 베이촨(北川))현 -  5월 16일 어렵게 총(6mm 카메라)을 구한 우리 팀은 가장 피해가 심한 베이촨(北川))까지 들어갈 각오(?)를 하며 새벽6시 호텔을 떠나 출발, 약 두 어 시간 정도 달리니 도로를 공안들이 봉쇄하며 지역주민 외 타 지역의 차들은 통제됐다. 우리는 그 경계를 걸어서 넘은 뒤 오토바이를 웃돈을 주고 구해  약 30분 정도 달리니 또 다른 입구가 나왔다. 이곳부터는 위험하고 오염지역이기 때문에 군, 경 이외에는 출입을 통제 하고 있었다. 우리 취재진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떻게 하나 고민했고 이 주변에도 피해지역이 많으니 근처에서 제작해 돌아가자는 의견도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언론사들이 그렇게 했으리라 생각된다. 그 때 해외에 나가면 카메라기자협회 영문프레스 카드가 유용하게 쓰인다는 얘기를 들어 지갑 속에서 꺼내어 코디에게 보여 주자 긍정적으로 반응하여 검문을 하는 군인에게 보여주니 '이게 웬일인가 '우리 팀 모두를 들여보내 주었다. 그 후에도 이 영문 프레스카드는 여러 번 효력을 발휘했다.  진앙지 원촨 잉슈 그리고 베이촨 등 대규모 인명피해를 낸 곳은 대부분 산골이거나 협곡에 있었다. 산지이면서도 세계 최고의 인구 밀집지역이다. 베이촨의 경우 인구2만중 약 8 천 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대부분의 피해지역이 산지라 가는 도중 집채 만 한 돌이 도로 대부분을 막고 있었고 약1시간 정도를 빠른 걸음으로 들어가니 저 멀리 핵폭탄을 맞은 듯한 도시 하나가 보였다. 땅이 갈라져 차와 건물들이 그 속에 묻혀 있었다.  말 그대로  도시가 사라져 버렸다. 길가에 놓인 주검들, 마스크를 써도 콧속 깊이 파고드는 악취, 아비귀환 -최악의 상황이었다. 산자는 도시를 빠져나가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피난을 가는 주민들을 뒤로 하고 우리는 한 걸음씩 처참한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1,2팀의 외신 기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CCTV 기자들이었습니다. 한 중국기자는 우리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고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다소 놀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마도 군인들이 통제를 하고 있어 대부분의 외신이 들어오지 못한 듯- 다시 한 번 협회 프레스카드에 감사함을 느끼며- 했다. 홍수 위험이 있는 베이촨의 호수를 촬영 후 우리 팀은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서둘러 복귀했다. 더운 날씨 험한 산길에 지친 우리 팀은 한 트럭이 지나가자 운전자에게 태워 달라고 하니 시체를 태웠던 차인데 괜찮냐는 말에 포기 할 수밖에 없었다. 온몸이 땀과 먼지 악취에 뒤덮인 채 도착한 경계선에 오니 또 다른 난관에 부딪쳤다. 이제 타고 갈 차량이 없는 게 아닌가? 30여분가량 실랑이 끝에 가이드를 통해 오토바이를 어렵게 구하여 뒤에 두 명씩 타고 지진으로 파이고 갈라진 도로를 곡예 운전하며 차량이 있는 도로 경계까지 겨우 도착했다. - '8'의 저주 -  5월 20일 밤 11시 우리 코디에게서 다급한 전화 한 통이 왔다. TV뉴스에서 오늘새벽 6.5이상의 강한 여진이 온다는 경고가 자막으로 계속해서 나와 모두 대피 중 이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8'이란 숫자를 좋아 한다고 한다. 올림픽 개막일도 8월 8일 저녁 8시 8분에 하기로 예정될 정도로 중국인들이 좋아하는데, 숫자 8이 최근 잇따르고 있는 중국의 대형사건 사고일과 같아서 8자의 저주라는 괴담이 나돌고 있었다.  이번 대형 지진은 5월12일(5+12=8), 티베트 사태는 3월14일(3+14=8) 폭설피해는 2월6일(2+6=8) 지진 발생은 공교롭게도 올림픽을 88일 앞두고 발생 당초 7.8로 알려졌던 지진 규모마저 나중에 8로 수정되었다. 오늘 12시가 지나면 5월 21일(5+12=8)우리 코디를 비롯해 중국인들 모두가 동요하고 있었다. 호텔 밖에서는 청두시내를 빠져 나가려는 차량 행렬과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우리는 진담 반 농담 반으로 현지인들로 피난 가는데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것인가? 너스레를 떨며 위안을 삼았고  취재를 위해서 현장에 머무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지만 두려움이 엄습해 오는 것은 어쩔 수 가 없었다. 다행이도 그 날 밤에는 큰 여진이 찾아오지는 않았고 밤사이 상황을 아침 리포트로 제작 할 수 있었다.  이번 취재는 육체적 노동의 강도 보다는 정신적인 불안감(여진의 공포, 현장 고립, 통신 두절, 교통 통제, 전염병)과 압박감이 컸다. 잊지 못할 그리고 값진 경험이 되었던 쓰촨성 대지진-그러나 다시는 있어서도 일어나서도 안 될 참사이다. 대지진으로 희생된 그리고 고아가 된 수많은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그러하다. 이승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8-07-04
  •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칭촨현에서의 하룻밤  중국 지진 취재를 가서 여러 날을 머물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칭촨현에서 머물었던 하룻밤이다.  지난달 21일, 중국에 도착한 지 나흘째, 우리는 지진 피해로 고립되었던 칭촨현으로 떠났다. 계속되는 여진으로 칭촨현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가 이제야 길이 뚫렸던 것이다. 칭촨현은 청두시에서 아침 7시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3시간여를 달린 후 험난한 산길을 오르내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다행히 가는 길에 공안들의 검색은 없었다. 그러나 도로가 문제였다. 좁고 굴곡진 산길을 달리기도 아찔한데 바위를 피하고 절반이 날아간 도로를 달리려니 과격한 운전 솜씨를 자랑하던 현지 운전기사인 장 씨도 등골이 싸늘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징촨현 약 40km를 남겨둔 지점에서 산사태로 인해 길이 통제되었다. 이때 장 씨가 조심스럽게 취재진에게 말을 건넸다. “그만 돌아가는 게 어때?” 그러나 돌아갈 수는 없는 법. 다행히 기다린 지 30분 만에 도로는 뚫렸다. 굽이진 산길을 달리고 달려 저 앞에 파란색 천막 행렬이 보였다. 처참히 부서진 가옥들, 공동 급수대에서 설거지며 빨래를 하는 사람들. 눈앞의 광경은 처참했다. ‘여기가 우리가 취재해야 할 곳이구나.’  현지 농민의 안내로 언색호와 갈라진 산을 찾아갔다. 산길을 올라가는 동안 천막을 세우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너무나 외진 곳이라 이제야 천막이 지원된 것이다. 비포장 산길을 오르다 산사태가 일어난 길 앞에 차가 멈춰 섰다. 흙더미 너머로 언색호가 있다는 것이다. 무너진 흙더미를 넘어 왼쪽으로 틀자마자 긴 호수가 나타났다. 호수 한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서있고, 맑은 물 아래로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야채들이 보였다. 좁은 실개천이 산사태로 막히면서 물이 차올라 개천 양쪽의 밭을 삼켜버린 것이다. 호수를 따라 30분을 걸어 올라갔다. 그러나 호수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 계곡이 끝나는 곳이 호수의 끝이겠지.’라고 생각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언색호 촬영을 마친 시간이 오후 5시. 지금부터 산의 갈라진 틈을 찾아가야한다. 해지기 전에 내려오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했다. 현지 농민이 앞장서서 산을 올랐다. ‘카메라(PD-150)도 가벼운데 왜이래 힘들지……?’ 그 이유는 다름 아니라 우리를 안내하는 농민의 발걸음이 무지 빨랐던 것이다. 허름한 천운동화를 신었는데도 어찌나 빠른 걸음으로 오르던지……. 게다가 숨소리와 표정에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산에 오르는 것이 이들의 일상인 듯했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니 건너편 산의 산사태와 갈라진 틈의 전체적인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 레코드버튼을 눌렀다. 내 거친 숨소리가 녹음될 정도로 액정 화면은 위아래로 쉼 없이 움직였다. ‘젠장, 줌은 전혀 쓰지도 못하겠는데…….’ 산을 1시간 정도 오르자 발아래로 갈라진 틈이 나타난다. 팔뚝이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의 폭에 수 미터 길이의 틈이 반복적으로 길을 따라 나있다. 여진이 있을 경우 바로 산사태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산을 내려갈 때까지 여진이 없기를…….’  칭촨으로 내려오는 길에 해가 저문다. 취재진은 이곳 주민들의 저녁 생활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곳 주민들에게서 받은 느낌은 여유와 인심이다. 취재진이 만난 주민들의 대부분이 밝은 웃음을 머금고 있다. 카메라를 보고 모여든 주민들이 건네는 말에 내가 답할 수 있는 말은 ‘한궈(한국의 중국발음)’뿐이었다. 그러자 그들은 ‘오~ 한궈!’ 하며 신기한 듯, 반가운 듯 마냥 웃는다. 천막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는 네 식구의 어머니는 취재진을 보자마자 죽을 퍼 담는다. 취재진에게 권하는 것이다. 네 식구 먹기에도 넉넉하지 않을 식사인데도 불구하고 낯선 외국인에게 그들의 밥을 나눠준다. ‘역시 시골인심인가?’  이 외진 시골마을에서도 휴대폰은 필수품인 듯하다. 전기가 끊긴 이곳에 유일하게 전기가 지원되는 곳은 휴대폰 충전소이다. 수십 개의 휴대폰 충전기가 멀티탭에 꽂혀있다. 주민들은 도로가 끊여 갈 수 없는 가족들에게 휴대폰으로 안부를 전했다.  오늘의 취재를 마치고 취재진의 저녁시간. 칭촨에서의 하룻밤은 이곳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인 민간구조대와 함께 묵게 되었다. 구조대가 마련하준 식사는 중국에 있는 열흘 동안 먹은 식사 중에 최고의 밥상이었다. 흰쌀밥에 김치, 구운 김, 꽁치찌개 등 너무 맛이 있어 밥 두 그릇에 누룽지까지 배가 터지도록 먹어버렸다. 운전사 장 씨도 꽁치찌개가 맛있었는지 무엇으로 만든 거냐며 묻는다. 텐트에서 자는 동안 두 번의 여진을 느꼈으나 너무 피곤해서인지 꿈속에서 지진이 일어난 듯 했다. 이렇게 매우 인상적이었던 칭촨현에서의 하룻밤이 저물었다. 곽영주 기자 kwakyj@ytn.co.kr
    2008-07-04
  • “디지털이 바꿔 놓은 뉴스취재의 기록 ”
    “디지털이 바꿔 놓은 뉴스취재의 기록 ” 1. ‘디지털 뉴스 핸드북’은 어떤 책인가?  구지 정의하자면 ‘취재메뉴얼’이자 ‘디지털 길잡이’ 쯤 되겠다. 그렇다고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시지는 말기를. 이 책 안에는 ‘디지털 방송 환경’에서 뉴스 제작에 필요한 딱 기본적인 것들만 들어있다. 기본적인 것의 기준은 내 경험을 통해 세웠다. 다시 말해 내가 LNG 시스템이나 MBC 멀티미디어 제보 시스템, 그리고 현재 하고 있는 디지털 뉴스룸 구축에 참여하면서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앞으로의 방송환경에 적응하면서, 장비에 구애받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카메라기자’인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유용한 정보를 정리한다면, 다른 기자들에게도 유익한 내용이 되리라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용하면서도 유익한 책’이 되었으면 한다. 2.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몇 년 전에 신입사원을 위한 디지털 매뉴얼을 만들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을  알아야 하는 것은 비단 신입사원에 국한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선배가 문제인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디지털 기술이 나오고 취재 방식도 변화하는데, 그것에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MBC 본사도 그렇지만, 이런 현상은 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심각한 것 같다. 이런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이기 위해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 목적은 사내 교육용으로 디지털 취재 매뉴얼을 만들어보자는 것이었다. 회사나 그 외 외부 지원을 찾아 보았지만 사내외에 그런 지원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강구한 것이다. 매뉴얼의 경우 다른 것보다는 책의 형태로 만들어 지는 것이 전달 면에서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에 출판사의 힘을 빌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을 한 것이다. 3.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다른 것보다는 책으로 만든다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사실 책을 쓰는데 걸린 시간은 약 4개월 정도다.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은 이유는 내가 전에 해왔던 일들의 기록 혹은 정리 성격의 내용이 많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내가 모르는 내용이 있어 공부하며 쓰기는 했지만, 쓰는 것 자체는 그렇게 힘들지 않았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커뮤니케이션북스’가 언론 분야의 서적 출간에는 가장 권위 있는 출판사이지 않나? 그런데 내가 처음 책을 쓰다 보니 요령도 없고 글 솜씨도 없어 그 출판사의 권위에 맞게 그리고 ‘책’이라는 형식에 맞추어 규격화 시키는 작업이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출판사와 오고가며 수정하는 시간이 2개월, 순수하게 출판에만 걸린 시간이 2개월 정도 걸렸는데, 수정에 소요된 두 달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었다. 너무 힘들고 지치다보니 ‘책’이 나왔을 때도 반갑다기보다는 홀가분하고, 시원하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 같다. 4. MBC에서 ‘디지털’ 혹은 ‘HD’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름은 ‘이창훈’일 것이다. 어떻게 그런 내공을 쌓게 되었나?  카메라기자에게 영상적인 감각도 물론 중요하지만, 본인의 감각을 100% 발휘하기 위해서는 본인이 쓰는 장비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찌되었든 카메라기자는 카메라라는 도구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하에 누군가가 해주기를 기대하기 보다는 내 스스로 알려고 노력했던 것들이 쌓이다 보니 지금에 이르게 된 것 같다. 공부를 하다 보니 더욱 관심을 갖게 됐고, 이에 대해 더욱 깊이 알아볼 기회도 주어졌다.  사실 이 부분에 있어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다. 우선 우리 회사 선배들에게 감사하다. 선배들이 나에게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선배들이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지 않았다면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또 후배들의 조언도 한 몫 했다. 함께 고민하고 공유했던 그들에게 역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5 ‘디지털’에 완전 문외한인 사람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는 팁을 알려준다면.  우선 겁내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하다가 안 되면 찾아보면 되는 것이다. 이 책 안에는 기본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케이블 잭에 대한 설명까지 담겨져 있다. 그런 내용까지 담은 이유는 내가 예전에 해외 출장을 갔을 때, 장비를 연결하고자 했던 방식이 있었는데 그것이 안 돼 애를 먹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단자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만 있었어도 가능한 일이었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한꺼번에 다 알려고 하지 마라. 그리고 부담도 갖지 마라. 조금씩 하나씩 알아가다 보면 그 앎의 속도가 두 배, 네 배, 여덟 배로 빨라질 것이다. 6. 올해 특별히 세워놓으신 목표가 있으시다면.  사실 현재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이번 학기가 논문 학기이다. 논문 역시 보도영상에 관련된 내용으로 쓰고 있는데, 카메라기자들이 많이 사용하는 영상 기법들에 대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러한 영상 기법들이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인식되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이번 학기에는 논문을 잘 마무리해서 대학원을 졸업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이자 계획이다.  하나 더 말씀드린다면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인 ‘디지털 뉴스룸 구축’을 성공리에 마무리 하는 것이다. 그것까지 마치고 나면 2008년도 다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7. 덧붙여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이전에는 카메라기자들이 본인이 쓰는 도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이용에 대해 수동적인 모습을 보였던 반면 최근에는 자기가 필요한 것들을 본인이 직접 찾아 공부해 사용하는 능동적 유저로 변해 가는 것 같다. 그렇게 했을 때와 그렇게 하지 않았을 때의 차이는 매우 크다. 개인적으로 기술 이용론자다. 보도 영상에 대한 감각이 있는 사람이 능동적인 유저가 됐을 때 기술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업에 적용할 수 있다. 그런 측면에서 카메라기자야 말로 제대로 기술에 끌려가지 않고 기술을 이용할 수 있는 테크노크라트(Technocrat)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모든 카메라기자들이 본인이 필요한 것은 본인이 연구하고, 개발하고,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더욱 경쟁력 있는 기자로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7-04
  • “바다와 같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인터뷰 주자는 YTN 부산지국 전재영 차장이다. 전 차장은 거리상의 문제와 더불어 개인적인 사정(둘째 아이 출산 임박)으로 서면 인터뷰를 청해왔다. 이번 인터뷰는 메일로 질문을 보내고 답변을 받는 식으로 진행됐다. 그럼, 이제 그를 만나보자. 1. 윤 차장이 절 ‘바다’ 라고 했다는데……  사실 너무 낯간지러운 칭찬입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평을 받아본 적이 없거든요.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때, 그런 정도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세상 살아온 것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저는 오히려 윤 차장이 ‘바다’와 같은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 주위의 누군가가 절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네요. 이제부터라도 정말 ‘바다’같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인성을 갈고(?) 닦아야겠습니다. 2. 윤 산이라는 친구는……  1994년 YTN 공채 2기로 첨 만났죠. 같이 수습생활을 하고 저는 부산지국으로, 그 친구는 인천지국으로 발령을 받아 근무하면서 가끔 만나 술도 많이 먹었죠. 그리곤 몇 년 있다가  그 친구가 당시 개국예정이던 인천방송으로 회사를 옮겼습니다. 윤 차장, 참 고생 많이 한 친굽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요. 다른 분들도 익히 알고 계시겠지만, 윤 차장이 몸담고 있던 회사가 매우 큰 시련을 겪지 않았습니까? 그 와중에 자신의 건강에도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됩니다. 하지만 낙담하지 않고 시련을 잘 이겨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죠. 저는 그런 친구가 고맙기도 하고 또 존경스럽기도 하답니다. 3. 가장 기억에 남는 일……  글쎄요. 말 그대로 ‘일’ 에 대한 기억인데요. 2002년 4월에 부산 인근 김해의 한 야산에 중국 민항기가 추락해서 16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가 있었습니다. 비가 조금 내리고  있었는데, 그런 날씨에 사고 현장인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동안의 육체적 괴로움은 차치하고서라도, 현장에 도착한 제 시야에 들어오는 그 처참함이란… 저의 오감을 통해 전해진 것은 온통 ‘죽음’이었습니다. 그 후에도 그것이 잘 잊히지 않더군요. 물론 슬픈 일을 당한 유가족의 절망에 비할 바이겠습니까 마는, 지금도 그 주변을 지날 때면 저도 모르게 맥박이 빨라지는 것을 느낍니다. 4. 근무여건……  어느 회사에 계시는 분이건, 충분한 인력이 투입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저희 지국도 마찬가지 입니다. 다만, 저는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힘들지만 ‘재미있게’ 일을 하려고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죠. 물론 생각하는 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지만요.   5. 개인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실 수도 있는데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 생각이시겠지만, 내 이름을 걸고 좋은 ‘작품’ 하나 정도는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 동료, 선 ? 후배들이  만들어 놓으신 좋은 작품들을 보면, ‘아, 나도 저렇게 만들고 싶다’하는 부러운 마음과 듭니다. 또 조급한 마음도 들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저 스스로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을 해야겠지요. 6. 후배들에게……  아직 후배보다 선배들이 많이 계시는 ‘연차’라서… 한 가지만 말씀드릴게요. 저 스스로 항상 다짐하는 것이 ‘열심히 배우자!’입니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도둑질’만 빼고는 뭐든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무와 연관된 것은 말할 나위가 없겠죠? 많은 분들이 지적하셨듯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방송 제작 환경에 잘 적응하고 아울러 더 큰 동력을 이끌어내야 하는 이때 배우는 것이 바로 우리 카메라기자들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라고 봅니다. 사실 저도 생각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렸으니 오늘부터는 정말 열심히 배워야겠네요. 7.  다음 주자 추천……  협회 사무처장이신 MBC 정민환 차장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사실 자주 만난 사이는 아니지만 몇 번 만나 얘기를 해본 결과, 정말 멋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분을 보면 항상 떠올리게 되는 단어가 ‘팔방미인’입니다. 성격도 좋으시고, 능력도 출중하시고… 말 그대로 ‘만나면 좋은 친구’가 아닌가 싶네요. 그분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2008-07-04
  •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자 특혜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자 특혜  팔이 저리고, 이마에서 땀이 흐른다. 스르르 눈이 떠지고 잠에서 깨며 눈앞에 펼쳐져 있는 책을 본 후에야 여기가 도서관인 것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점심 먹고 또 졸았네… 어제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중계를 밤새 본 까닭에 피곤함이 밀려 온 것 같았다. 졸음을 깨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뽑아서 호수 쪽 벤치로 향한다. 6월의 신록이 가득한 캠퍼스는 생동감이 넘쳐흐르지만 쳇바퀴 돌 듯 집과 도서관을 오가는 생활만 반복하는 나에게선 생동감은 찾아볼 수 없다.      ‘카메라기자가 꼭 되고 싶다!’는 마음을 먹고 본격적으로 준비한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공부가 힘들다고 느껴졌다. 현직에 몸담고 있는 선배님들의 입사과정을 익히 들었고, 그러한 경험담이 나를 채찍질하기도 하지만 머릿속에 맴도는 막막함은 떨쳐 낼 수 없다. 그럴 때마다 순환교육을 통해 뵈었던 카메라기자 선배들의 명함을 지갑에서 꺼내 보면서 나도 모르게 씩 웃어본다.  무작정 방송관련 학과에 진학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서 대학에 들어왔지만 군대를 제대한 3학년 때까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나였다. 작년 봄에 별 생각 없이 지켜보던 뉴스영상에서 '네임수퍼'란 것을 관심 있게 보게 되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뉴스영상을 촬영, 편집하면서 객관적인 입장으로 영상을 취재하는 기자.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역사속의 사관. 마음에서 카메라기자에 대한 동경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방송국 공채시험 시즌이 돌아왔고 졸업을 1년 남기긴 했지만 학교 선배들이 지원할 때 경험이라도 해보고 싶어서 나도 무작정 카메라기자 시험에 도전하였다. 시험을 통해 경험을 쌓았다고 스스로 위로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얕은 시각과 부족한 독서량을 뼈저리게 느꼈고, 시험장을 나서면서 졸업 할 때까지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서 시험에 다시 도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하지만 시험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기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들을 의논할 사람이 없어서 매우 답답했다. 그 때 학교 게시판에서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서 대학생 명예기자를 뽑는다는 광고물을 보게 되었다. 순간 “바로 이거야!!” 라는 생각이 들었고 바로 협회사이트에 접속해 정보를 얻게 되었다. ‘왜 진작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를 알지 못했을까?’하며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다른 것보다 카메라기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러던 중 운이 좋게 대학생 명예기자가 되었고, 임명장을 받으러 오라는 말에 마치 뭐라도 된 냥 기쁘게 달려갔다. 내 꿈에 한발 다가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그렇게 명예기자 활동이 시작되었다.  많은 카메라기자 선배님들과 명예기자 선배들과의 만남, 협회에서 주최하는 교육을 통해서 명예기자는 카메라기자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축복, 아니 특혜라고 생각했다. 꺼내든 명함을 다시 들여다보니 이러한 사실도 잊은 채 힘들어 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동시에 나도 꼭 현장을 누비는 카메라기자가 되겠노라고 다시 한 번 다짐 해본다. 오늘도 나는 ‘오늘은 어떤 주제로 논술을 써볼까? 왜 토익점수는 더 안 오르지? 내일은 무슨 책을 읽을까? ’ 등등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간다.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에 감사드리며 현장에서 고생하시는 선배님들이 안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윤성욱 / 제3기 대학생 명예 카메라기자
    2008-07-04
  •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 취재기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싸이클론이 휩쓸고 간 미얀마. 외신을 통해 전해오는 미얀마 피해는 수 만명의 희생자를 낳으며 국제적 관심이 모아졌다. 5월 6일 갑작스런 미얀마 출장 지시를 받았다. 다음날 현지로 출발하는 일정으로 취재기자 한명과 촬영기자는 신봉승선배를 1진으로 두 명. 출발당일 아침 우리는 미얀마대사관에서 급행으로 비자를 신청했다. 보통 2박3일이 걸리지만 신청비를 더 내면 당일 오후에 받을 수 있었다. 드디어 20:50분 방콕을 거쳐 미얀마 양곤으로 출발...  과거 버마로 불리던 미얀마는 군부독재 국가이다. 미얀마 사람들 앞에서 정치이야기를 하는 것은 과거 우리나라 군부독재시절의 서슬퍼런 보안사나 안기부의 악명처럼 현지인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미얀마 역시 정보 분야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치밀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인다. 미얀마의 보안대 MI는 소수 엘리트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미얀마 사람 10명이 모여 있으면, 그 중에서 2~3명은 MI이거나 그 끄나플이라고 한다. 이런 정치적 환경을 지닌 국가로의 재난취재 출발은 조심스러움과 철저한 준비가 필요 했다.  출발전날 외신을 통해 전해 온 미얀마공항에서 BBC기자의 추방소식은 가뜩이나 아무런 정보나 현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상황이 안 좋을수록 더욱 계획적인 준비로 대응하는 수 밖에 없었다. 또한 우리의 신분을 노출시킬 만한 장비(핸드마이크, 로고택, 심지어 명함까지)는 가져가지 않았다.  양곤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예상 시나리오를 짜야했다. 전날의 BBC기자 추방사건으로 외국인과 취재진에 대한 미얀마 당국의 태도를 예상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행이 아니고 개별적으로 입국한다. 모두 성공적으로 들어간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호텔에서 픽업 나온 사람을 찾아라. 미입국자는 방콕에서 대기 또는 서울 복귀.  양곤공항의 분위기는 우리 스스로 위축되지만 않는다면 여느 동남아공항 분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모두 다행히 성공적으로 입국 후 호텔 미니밴에 올랐다. 공항에서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는 30여분 남짓. 차창 밖으로 보이는 뿌리채 뽑힌 거목들과 부서진 집들은 당시의 상황을 짐작하고도 남게 했다. 현지 국영방송인 MR TV뉴스는 온통 군부정권 장군들이 구호품을 전달하는 화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군경의 눈을 피해 아주 조심스럽게 양곤시내 취재를 마친 우리는 자신감과 더불어 현지에 최초로 들어간 한국언론으로써의 책임감이 느껴졌다. 싸이클론 피해의 중심부인 미얀마 남부 이라와디 삼각주로 들어가자. 그러나 현실은 현지코디도 구할 수 없었고 도움을 구할 사람은 현지호텔의 한국인직원이 전부인 상황이었다. 이때 신봉승선배의 아이디어로 한국에 있는 ‘버마민주화동맹’이란 단체를 통해 ‘oo’라는 예명을 사용하는 아웅산수지를 지지하는 단체의 사람을 현지코디로 구할 수 있었다. 참고로 미얀마사람들은 예명을 주로 쓴다. 이유는 이름이 길고 외국인이 따라부르기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이제는 어떻게 그곳으로 갈 것인가? 각 지역마다 이동 할 수 있는 미얀마의 도로는 오로지 하나. 우회로가 존재하지 않는다. 길이 막히면 돌아서 갈 길이 없다. 목적지까지의 예상시간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반정부인사들의 도움으로 차량과 현지사정에 정통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서 준비해간 라면과 생수 그리고 호텔에서 구입한 빵을 싣고 가장 피해가 크다는 이라와디 삼각주 보걸리시로 출발. 목적지로 가는 길에 펼쳐지는 상황은 양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피해가 컸다. 출발 전 서울에서 봤던 외신 화면보다 더욱 심각했다.  우려했던 대로 보걸리시 입구에서 우리는 경찰들에게 출입통제를 받았고 여러 수단(?)으로 들어가 보려 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군부정권 서열3위의 장군이 현지에 와있었다. 보걸리시 입구까지의 상황만으로도 안의 피해정도가 얼마나 심각한지 추정이 가능했다. 해가 지면서 어쩔수 없이 빠뽀라는 도시로 나와 1박을 했다. 다음날 수소문 끝에 또 다른 피해 지역인 꽁창곤시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현지취재가 가능할지 긴장감 속에 도착한 마을은 취재 이전에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해 질 수 있는지, 도움의 손길이 미치지 못했을 때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이 나약해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라와디 삼각주 취재를 마치고 양곤으로 돌아오는 길은 촬영기자로, 그 전에 한 명의 사람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했다. 취재기간 동안 라면 한 끼와 빵 몇 조각으로 끼니를 때운 것을 마치 훈장처럼 생각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많은 천연자원과 동방의 정원이라 불리는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나라 미얀마. 싸이클론 피해의 현장에서 숨쉬고, 보고, 느꼈던 KBS 촬영기자로서 절망의 땅에서 희망의 땅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김상민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2008-06-26
  • <줌인> 취재 시 안전사고 예방할 수 있다
    취재 시 안전사고 예방할 수 있다  지난달 27일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을 취재하던 일간지 사진기자가 환영, 반대 시위대간의 충돌도중 날아온 각목에 맞아 이마가 찢어지는 상처를 입고 병원으로 후송되는 일이 있었다. 집회나 시위도중 폭력사태가 일어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취재를 나가는 기자들이 안전장비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폭력시위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만 안전모와 협회에서 나눠준 프레스용 완장을 갖춰 취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안전사고는 안전장비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 현장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취재현장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안전장비를 준비하지 못했다면 위험에 노출된 채로 취재를 하게 된다. 이럴 때 안전에만 신경을 쓰게 되면 생생한 현장을 잡아내는 것은 쉽지가 않다.  각종 사고나 화재 등의 현장에서도 안전장비를 갖추는데 소홀히 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고속도로 터널에서 차량화재로 터널내부에 유독성 연기가 자욱한 상황이었지만 취재를 하고 있는 기자들 대부분이 안전마스크를 준비하지 않아서 호흡기를 혹사시키면서 취재를 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한다. 또한 유독가스로 인한 사망사고 현장에서 숨을 참고 촬영하기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었다. 요즘은 호흡기만을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뿐만 아니라 시야를 확보하면서 유독가스로부터 호흡기와 눈을 보호할 수 있는 방연마스크도 쉽게 구할 수 있다.  취재인원에 맞춰 장비도 갖춰지지 못하고 공동으로 관리하다보니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어 수량도 턱없이 모자라기도 하고 파손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장비담당자가 취재안전의 중요성을 인식해서 취재 중 발생할 수 있는 불의의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안전장비키트를 개발하고 날로 새로워지는 안전장비를 수시로 교체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취재 중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안전장비는 장비담당자에게 요구해서 키트에 포함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전장비키트가 마련된 후 개별적으로 관리를 하거나 취재차량에 비치해 두면 언제어디서든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준비는 마친 셈이다.  안전장비를 갖춘다고 해서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취재현장에서 안전장비가 없어 머뭇머뭇하는 사이 결정적인 순간을 놓쳐버릴 확률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2008-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