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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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천을 맴도는 금정굴 영혼
    제목 없음 취재팀은 서울대학병원 법의학센터로 향했다. 오늘 취재는 6.25전쟁 중 발생한 유골이 묘지에 안장되지 못하고 10년째 서울대 병원에 방치되어있다는 다소 황당한 내용이었다. 법의학센터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제일 처음 본 것은 부검 실 팻말이었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몸이 서서히 움츠려들었다. 부검 실 내부는 바닥과 벽이 온통 하얀 타일로 덮어져있었고 부검 실 중앙에는 스텐레이스로 된 2개의 부검 대가 썰렁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상한 것은 이런 곳에 처음 와보는 장소인데도 불구하고 전혀 생소하게 느껴지질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는 부검 실이라는 장소를 영화나 텔레비전을 통해 너무 익숙하게 보아왔던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검 대 위에는 작은 배수 구멍이 수도 없이 뚫어져 있었고 아래는 군데군데 여러 개의 수도꼭지가 달려 있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부검 대 위의 조명등과 바닥의 촬영기구들이 하얗게 먼지를 뒤 집어 쓰고 있었다. 부검 실 옆방에는 내용물을 알 수없는 수많은 유리병들이 빼곡히 쌓여있었는데 그것이 무엇인가 대략은 짐작이 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볼 용기는 차마 나질 않았다. 우리가 취재할 장소는 바로 부검 실 옆방에 있는 유골 안치실이다.   6.25 전쟁 당시 금정굴(경기도 고양시 탄현동 소재) 사건으로 발생한 유골170여기가 이곳 10평 미만의 좁은 방에 빼곡히 쌓여있었다. 금정 골 유해는 철재 4단 선반에 보관되어있는데, 맨 위에 머리 부분을 시작으로 아래로 골반, 팔, 다리뼈 순으로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임시 안치실은 항온, 항습 장치가 없는 일반 실험실이어서 유해 보존 상태가 열악해 보였다. 이곳을 관리하는 L 교수는 유해가 처음 발견되었을 당시는 요즈음처럼 DNA 검사가 일반화 되지를 못하였고, 현재까지 이런 식으로 유해가 관리되고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취재팀에 토로했다.   금정굴 사건은 지난 1950년 9.28 서울 수복 이후, 한 달여에 걸쳐 고양·파주 일대에서 북한군 점령 하 인민위원회 등에 협력한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분아래 1000명 이상의 주민들이 경찰과 우익단체들에 의해 불법 연행된 후, 고양 금정 굴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희생된 사건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던 지역주민들로 북한 점령기 인민위원회 활동에 참여하는 등, 소극적인 부역행위를 했던 사람도 일부 있으나, 상당수는 도피한 부역혐의자 가족들과 부역혐의와 무관한 주민들이고 희생자 중에는 10대가 8명, 여성이 7명이 포함된 것으로 밝혀졌다.   금정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정부 조직인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이하 진실위)가 지난 2005년 발족했다.   진실위는 "비록 희생자 가운데 일부가 부역자나 부역혐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관련 법령 및 규정에 따른 적법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비무장 민간인을 집단 총살한 것은 명백한 범죄행위"라고 설명했다.   진실위는 재발방지를 위해 제반 법률 개정과 경찰 대상 인권교육, 역사관 건립 등을 추진할 것과 유해 봉안, 적절한 위령시설 설치 등 화해와 위령사업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진실위의 이러한 권고가 작년 2007년에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가 없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진실위가 내년 2009년이면 위원회 활동임기가 만료되고 조직이 와해될 처지에 놓이게 되어 유가족들을 더욱 애타게 하고 있다.   이 사건을 깨끗하게 매듭지어야할 해당 정부부처의 무관심이 금정 굴 사건 영혼들을 구천에 맴돌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 안치실은 마치 의대생을 위한 유골 전시장 같았다. 그동안 여러 취재 현장을 다녀 보았지만 이렇게 수많은 유골을 촬영해보기는 처음이다.   갑자기 ‘킬링필드’의 영화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나는 두 눈을 질끈 감고 촬영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촬영할 때 피사체를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파인더를 통해 보는 것이 훨씬 덜 긴장 된다. 왜냐하면  파인더가 사물을 무채색으로 바꾸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L 교수 인터뷰를 준비했다. 막 인터뷰를 시작하려던 순간 L 교수는 “ 안치소에서 인터뷰하기는 처음입니다. 혹시 유골을 배경으로 한 인터뷰 장면이 편집과정에서 빠질지도 몰라요.” 라고 한다.   그렇다!   부검 실이라는 공포의 현장에서 놀라 도망쳤던 나의 도덕적 감각이 되살아났다. 아무리 현장감을 강조하는 카메라기자지만 유골을 배경으로 한 인터뷰는 아무래도 심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안치실 밖으로 나와 다시 인터뷰를 했다. 하마터면 애써 녹화한 인터뷰가 사장될 뻔하였다. 인터뷰가 끝나갈 즈음 갑자기 부검 실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추석을 며칠 앞둔 유족들이 이곳에서 차례를 지내기 위해 막 도착했기 때문이다. 유족들은 마치 친척집을 방문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부검 실을 들어선다. 유가족인 M 할머니는 가져온 음식물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부검 대위에 올려놓고 태연히 부검 실 세척 대에서 과일을 씻기 시작한다.   “남들은 추석이라고 멋진 장소에서 차례 지내는 것을 보면 우리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라며 할머니가 취재팀에 속내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좁은 안치실에서 즉석 차례 상이 차려졌다. 사과, 배, 막걸리 등으로 소박하게 꾸며진 차례 상이 준비되자 유족들은 촛불과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다. 차례를 마친 유족들은 막걸리로 음복을 하고, 제사 술을 유골 주변 이곳저곳에 뿌리기 시작한다. 조금 전, L 교수로부터 최근 유해 보존 상태가 더욱 나빠졌다는 얘기를 들은 후라, 항온, 항습 장치가 없는 안치실에서 술을 뿌리는 것도 유해 보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았다.   M  할머니와 유족들은 우리 취재팀에게도 음복을 권하고 차례 지낸 떡과 과일을 나누어준다. 나는 단지 한시바삐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황급히 인사를 하고 부검 실을 나왔다. 취재차에 거의 다 왔을 무렵, 뒤 따르던 L 기자가 “선배! 유가족 분들이 먹으라고 준 음식 이예요”라며 양손 가득 음식물을 들고 있었다.   유가족들이 처음 이곳 부검 실을 방문했을 때에는 기자와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반세기란 모진 세월이 그들의 감각기관 마저 이처럼 무디게 만들어 놓았다. 부검 실이 주는 혐오감이 그들에게는 더 이상 혐오감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과거 50년 동안 부역자라는 멍에에 큰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숨죽이며 살아온 유족들,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자기 부모, 형제가 쓰러져갈 때, 흘렸던 눈물은 이제 더 흘릴 눈물조차 없이 말라버렸다.   이제 남은 유족들의 수도 얼마 되지 않고, 워낙 고령인지라 그들이 받았던 마음의 상처와 고통의 기억도 이제 가물가물해져 가고 있다. 금정굴 사건이 더 이상 그들만의 아픔과 상처로 남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취재하는 줄곳 머릿속을  맴돌았다.   문화방송 보도국 영상취재2팀 서영호 * 위의 내용은 ‘한 맺힌 차례 상’ 이란 제목으로 지난  9월 15일 MBC 뉴스데스크에서 방송 되었습니다.
    2008-09-19
  • <줌인>
      “카메라기자의 눈, 더욱 날카롭게 빛나야 할 때”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  두 계절이 미처 지나가지도 않은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통령 최측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 지상파 및 보도·종합편성 채널을 허용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 구본홍 YTN 사장 날치기 임명, KBS 이사 강제 교체, MBC PD수첩 징계, 네티즌 실명제, 사이버 모욕죄 신설 추진, KBS 정연주 사장 해임 요구, 등 여론장악의 일방통행은 날이 갈수록 심화(深化, 깊어짐) 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언론만이 문제는 아니다. 경찰관기동대, 폭력진압, 대량검거 등의 공안정국 양상(樣相, 생김새나 모습)에서부터 대통령 친인척이 공천 청탁수수사건으로 구속되는 사건까지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모든 분야에서 과거 권위주의 독재 권력의 행태를 닮아있다. ‘섬뜩한 과거로의 회귀(回歸, 도로 돌아오거나 돌아감)’를 걱정하는 이유다.  권력 감시는 언론의 본분(本分, 의무로 마땅히 하여야 할 것)이다. 감시의 본분을 잃어버린 언론은 언론일 수 없으며, 언론의 본분을 지키기 위한 노력은 국민에 대한 의무이며 책임이다.  관습적으로 행하여오던 POOL문제에 대한 협회의 준칙이 발표되었다. 열악한 취재환경과 부족한 인원문제를 임시방편으로 막아왔던 POOL제도가 사실상 폐지된 것이다. 분명 고통은 따르겠지만 한편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있다. 카메라기자가 지켜 온 현장, 그 현장은 오늘의 역사다. ‘섬뜩한 과거로의 회귀’를 우려 하는 이때, 우리는 언론의 주체로서 바른 언론을 이끌어 가야 할 책임이 있다. 언론인으로서 소임을 다하고 각 사를 대표하여 이 역사의 현장을 지킨다면, 카메라기자의 위상은 다시금 자리매김 할 것이다.  올림픽이 시작되었다. 국민의 관심이 비켜있는 역사의 현장을 감시하는 카메라기자의 눈이 더욱 날카롭게 빛나야 할 때다.
    2008-09-01
  • 6자 회담 취재, 이렇게 했습니다.
    < 6자회담 HD POOL취재 이렇게 했습니다 > “4개 사의 합의 통해 mpeg2 파일로 송출”  지난달 9일부터 13일까지 4박5일간 중국 북경에서 6자회담이 열렸다. 이번6자회담에서는 KBS, MBC, SBS, YTN 4개사가 HD카메라를 이용한 풀 취재를 하였고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장상황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취재와 인터넷송출을 마칠 수 있었다.  현지 풀 취재단의 취재 및 송출방식을 소개함으로써 앞으로 있을 IT기반의 풀 취재와 송출에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취재장비와 송출방식을 결정하기위해서 회담출발 몇 일전 풀 카메라기자 간 미팅을 가졌다. 전화로는 정확한 의사소통이 힘들기 때문에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HD카메라는 각사의 사정에 맞게 준비하기로 했다. KBS, SBS는 소니 XDCAM350을 MBC, YTN은 파나소닉 P2를 사용하기로 했다. 다음은 촬영원본을 웹 하드에 올릴 때 최종적인 파일포맷을 결정하는 것인데 각 사간에 이견이 있었다. SBS, YTN은 HD방송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굳이 용량이 크고 업로드시간이 오래 걸리는 HD화질을 원하지 않았고 KBS와 MBC도 서로의 mxf파일이 호환되지 않았다. 그래서 4개사가 함께 받아들일 수 있는 mpeg2방식으로 업로드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청와대 팀에서 해외에서 mpeg2파일로 송출하고 있었기 때문에 4개사 모두 흔쾌히 수용했다.  HD화질로 송출하지는 못했지만 불안한 중국의 인터넷속도와 1시간 느린 시차를 고려했을 때 파일사이즈를 줄여 제시간에 그림을 송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9시뉴스를 기준으로 북경현지시간 19시까지는 모든 송출이 완료돼야 했기 때문에 풀취재단 카메라기자들은 노트북 앞에서 각자의 원본을 송출하기에 바빴다.  다행히 프레스센터에 전용선이 설치되어 1mbps 이상의 속도가 나왔지만 기자들의 기사와 그림 전송량이 집중 될 때는 속도가 순간적으로 다운되기도 했다. 촬영원본을 랜더링해서 파일로 만드는 방식은 각사가 서로 달랐기 때문에 본인이 촬영한 원본은 본인이 책임지고 송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K는 베가스8.0을 이용했고 M은 P2모바일 데크와 아비드를 이용했으며, S는 피나클, Y는 에디우스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mpeg2파일을 만들었다. 편집 툴은 서로 달랐지만 최종 포맷을 mpeg2로 통일했기 때문에 각 사 영상편집팀에서 편집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물론 출발전 테스트용 파일을 각자 업로드해서 체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원본카피는 외장하드를 통해 비디오클립을 넘겨주거나 소니 PDW-F70데크의 HDSDI입출력 단자를 통해 디스크에 카피했다. 해외 출장 시 항상 외장하드나 USB를 가지고 있으면 비디오클립의 카피와 공유가 용이할 것이다.  각 사의 기존 웹하드는 보안상 아이디, 패스워드를 공유할 수 없기 때문에 6자회담 기간 중에 업 로드할 공동의 웹 하드가 필요했다. 그래서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청와대 웹하드 2개중에서 KT웹하드를 6자회담 기간 중에만 사용하기로 했다. 용량은 2기가로 작지만 mpeg2를 업로드하기에는 충분했고 부족한 저장 공간은 오래된 파일을 그때 그때 삭제하여 확보했다. 웹 하드안의 폴더는 5개(공동폴더 1개와4개의 전용폴더)로 나누었다. 공동폴더에는 다시 날짜별 폴더를 만들어 4사가 공유하는 그림과 인터뷰를 업 로드했고  4개의 전용폴더에는 각 사의 기자멘트와 스탠드 업을 업로드해서 편집자의 혼란을 방지했다. 파일전송의 시작과 종료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평한 송출조건이었기 때문에 취재팀 안에서의 불협화음과 불만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결과적으로 최종 업 로드할 파일포맷만 정해지고 공동의 웹 하드만 있다면 인터넷을 이용한 풀 취재는 가장 공정한 방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전송속도만 담보된다면 HD고화질의 송출도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도 계획적인 풀이든 현장상황에 따른 돌발 풀이든 풀 취재가 완전히 없어지긴 어렵다고 본다. 테이프리스 카메라와 인터넷송출이 일반화된 지금의 취재환경에서는 오히려 화면공유가 손쉬워졌고 풀의 유혹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카메라기자의 풀 취재는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번 6자회담에서 한국의 방송사보다 뜨거운 관심을 가지며 한 개 방송사가 4,5개의 촬영팀을 독자적으로 운용하는 일본의 언론을 보면서 내심 부러웠다. 이영재 기자 picture@kbs.co.kr
    2008-09-01
  • <릴레이 인터뷰> KBS 김승욱 기자
    제목 없음 <이어지는 인터뷰 - KBS 영상취재팀 김승욱 기자> “협회, 회원들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장이 됐으면”  지난달 22일, 국회의사당 내 한강이 보이는 멋진 카페에서 ‘환한 웃음이 매력적인’ KBS 김승욱 기자를 만났다. 김 기자는 할 얘기도 많지 않은 사람을 정민환 차장이 추천했다며 연신 쑥스러워했다. 그럼,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MBC 정민환 차장이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 ‘환한 웃음이 매력적인 사람’이라며 김승욱 기자에게 이어지는 인터뷰 바통을 넘겼다. 바통을 받은 소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정민환 차장같이 좋은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해줬다는 것이 기쁘다. 기쁜 일임과 동시에 좀 부끄럽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그런 칭찬을 들을 만큼 친절한 사람인가?’하는 생각도 하게 됐다. 사실 내가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은 아니다. 정 차장이 워낙 인상이 좋으니까 친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같다.(웃음) 어쨌든 고맙고, 웬 지 모르게 기분 좋은 것은 사실이다.    2. 김승욱 기자가 생각하는 ‘정민환 차장’은?  몇 년 전에 정 차장과 함께 경찰팀 캡을 했었다. 경쟁사이긴 했지만 서로 교감이 되는 관계라고 할까? 아무튼 정 차장은 굳이 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척’ 하면 ‘척’ 알아듣는 센스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함께 일을 하면서 어려운 일이 없었다. 매우 합리적이면서도 꼼꼼하고, 문제가 생겼을 때 조율을 잘 한다. 다시 말해 만나면 기분 좋고, 편안한 사람이다. 정민환 차장을 추천했던 전재영 차장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만나면 좋은 친구~ MBC 정~민환~”(웃음) 3. 요즘 근황은 어떠한가?  국회 출입을 하고 있다. 한 일 년 반 정도 된 것 같다. 얼마 전까지 개원을 하지 못하던 국회가 뒤늦게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일이 좀 많은 편이다. 그렇다고 눈 코 뜰 새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 아침 8시 쯤 출근해 저녁 8시~9시 사이에 퇴근하는 것 같다. 특별히 다른 일은 없다. 요즘은 마음만 바빠 운동도 못 하고 있다. 하고 있는 운동이라면 손목 운동(술 잔 꺾기) 정도? 4. 카메라기자로 일한지 몇 년이 되었나?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은?  햇수로 15년 정도 됐다. 생각해 보니 나도 놀랍다. 세월이 참 빠른 것 같다. 우리 연차 정도 되면 아마 다들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삼풍백화점 붕괴’, ‘이라크 전’ 등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삼풍백화점’ 사건은 앞에서 여러 분들이 말씀하신 관계로 ‘이라크 전’ 취재를 갔던 이야기를 할까한다.  사실 전쟁처럼 위험한 현장에서는 과도한 경쟁을 자제해야 하지만 기자 근성이라고 할까, 뭐 그런 것 때문에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 때도 위험한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한 방송사 취재진이 먼저 그 곳으로 들어갔다. 타 방송사가 들어갔으니 우리도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바스라 쪽으로 들어갔다. 검문소가 세 개나 있어 중간에 잡힐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상 외로 무사히 통과했다. 그곳에서 취재한 화면은 다시 쿠웨이트에 나와 송출을 해 뉴스를 통해 시청자에게 전해졌다. 시청자에게 그곳 상황을 영상으로 전했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타사와의 경쟁 때문에 목숨을 걸고 들어갈 일이었는지는 생각해볼 대목이다.  이 때문에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 뉴스가 보도된 후 모 미디어 관련 신문에 제보가 들어간 것이다. 시간적으로 봤을 때, KBS가 새벽에 들어가서 낮에 돌아와 뉴스를 내기가 시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제보를 한 측에서는 우리가 자료 영상을 구해 뉴스를 낸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결국 진실을 밝혀 오해가 풀리긴 했지만 여러 가지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가 컸던 사건이었다.    5. 카메라기자로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은?  사실 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어렴풋이 생각해 왔던 것은 강렬하고 화려한 효과 영상이 넘쳐나는 지금, ‘잔잔하고 담백한 영상으로 구성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좀 더 내공을 쌓아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 카메라기자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6.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시다면?  아들 하나, 딸 하나가 있기 때문에 다른 계획은 없다.(웃음) 내 목표는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너무 간단했나? 7. 협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예전과 비교 했을 때, 협회가 많이 활성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바라는 것이 있다면 정보 공유가 더욱 활성화 되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단지 일에 관한 것뿐 아니라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 정보를 함께 공유했으면 좋겠다. 나 개인적으로는 지난 호 협회신문에 나온 ‘여름 휴가지 추천’이 매우 도움이 됐다. 가족들과 2박 3일 정도로 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정보를 얻을 곳이라고는 방송이나 인터넷이 전부인데 그렇게 알려진 곳은 이미 사람이 너무 많아 제대로 된 휴가를 즐기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런데 많이 알려지지 않으면서 경관이 좋은 곳에 대한 정보를 협회신문에서 얻을 수 있어 매우 좋았다. 이것은 하나의 예이지만, 앞으로 협회가 다방면에서 회원들의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8.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다음 주자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떠오르는 사람이 몇 있었지만, 그 중 특히 보고 싶은 이가 YTN 하성준 차장이다. 하 차장과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통화를 하는 것 같다. 통화할 때 마다 “형님, 밥 사주세요!”해 놓고 절대 오지 않는 친구이다. 사실 입사는 1994년으로 나와 동기이다. 그런데 나보다 나이가 조금 적기 때문에 ‘형’이라고 부른다. 하 차장과는 1998년 청와대 3진으로 함께 출입하면서 친해졌다. YTN 기자로서 자부심과 소신을 가지고 일하는 모습이 매우 보기 좋았던 것 같다. 알면 알수록 더 알고 싶은 사람, 그리고 때때로 궁금해지는 사람, 다음에는 하성준 차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9-01
  • KBS 온새미에 대해 아시나요?
    ‘KBS 온새미’에 대해 아시나요? "뉴미디어 방송환경에서 영상기자만의 독자적 방송서비스 모델개발의 계기됐으면"  지난 5일, 여의도에서 ‘KBS 온새미’를 기획한 KBS 영상취재팀 박진경 기자를 만났다. ‘KBS 온새미’는 ‘KBS 뉴스’ 인터넷 사이트에서 서비스하는 영상 뉴스 코너이다. ‘KBS 온새미’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그럼 지금부터 박진경 기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KBS 온새미’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주신다면?  ‘온새미’는 카메라기자의 시각으로 만들어진 영상 뉴스입니다. 핵심은 ‘영상’이 아니라 ‘영상 뉴스’라는 것입니다. 우리 방송사 뉴스뿐 아니라 타 방송사 뉴스에도 ‘영상’이라는 것이 방송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영상’일 뿐이죠. 머리 아픈 뉴스들 사이의 ‘휴식’이라고 할까요? 보면서 항상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의 역량이 100%라면 50% 밖에 보여주지 못하는, ‘절름발이’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온새미’입니다. 인터넷 뉴스이긴 하지만, 카메라기자 스스로가 ‘영상 뉴스’로 전달해야 맛이 나는 아이템이라는 판단이 서면, 취재부터 기사작성, 편집, 자막 작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단독으로 맡아 제작하는 것입니다. 현재는 취재를 나가서 획득한 정보나 영상 중 사장되기 아까운 내용을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나, 앞으로는 ‘온새미’를 위한 아이템도 기획해 채워나갈 예정입니다. 2. 코너명을 ‘온새미’라고 붙이신 이유 [온새미 : 가르거나 쪼개지 아니한 생긴 그대로의 상태]  무엇보다 이 코너의 성격에 가장 부합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그 판단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팀원들의 의견을 물어 결정한 것입니다. 이것을 기획해 놓고, 팀 내에서 이름을 공모했습니다. 그리고 공모해서 나온 이름들 중 참신한 것으로 세 가지 정도를 골라 가장 좋은 이름에 체크를 하라는 내용의 벽보를 붙였습니다. 거기서 ‘온새미’가 가장 많은 체크를 받았습니다. 기획을 한 나뿐만 아니라 데스크에서도 매우 적합하다는 의견이어서 코너 이름으로 낙점됐답니다. 이 이름을 낸 사람은 올해 신입기자, 조세준이라는 후배인데요. 공모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우리말 사전을 열심히 뒤져가며 골랐다고 합니다. ‘온새미’… 보고 또 봐도 참 잘 지는 이름인 것 같습니다.(웃음) 3. ‘온새미’를 기획하시게 된 배경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온새미’는 ‘아쉬움’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익한 정보들이 사장되는 아쉬움, 신명나는 공연의 분위기를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아쉬움, 그리고 카메라기자들의 역량을 시청자에게 다 보여주지 못하는 아쉬움… 이런 ‘아쉬움’이 온새미를 만들었습니다.  이 ‘아쉬움’은 저 혼자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지금 KBS 보도영상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데요. 십 여 명가량의 회원이 있는데, 2주에 한 번씩 아침 일찍 출근해 외신이나 국내 주요 언론 모니터를 하며 의견을 나눈답니다. 몇 달 전, 언제나처럼 모니터를 하고 나서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 후배가 ‘아쉬움’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인터뷰를 한 시간이나 했는데 기사에 맞추다 보니 10초 정도 밖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였습니다. 뉴스에 나가지 않은 인터뷰 내용 중 중요한 부분들이 꽤 있었는데 사장되어 안타깝다는 것이었죠. 이 후배의 얘기에 많은 사람이 공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의견들을 취합해 팀장이하 팀원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한 것입니다. 매우 반응이 좋았고, 인터넷 뉴스를 담당 하고 있는 ‘디지털 뉴스팀’에서도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의견을 보내왔습니다. 그렇게 5월에 준비를 시작해 6월, 시험 방송을 거쳐 7월부터 본 방송을 하게 된 것입니다. 4. 현재 ‘온새미’는 어떻게 꾸려져 가고 있나?  이 역시 앞에서 약간 언급했던 것 같네요. ‘온새미’는 카메라기자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채워가는 코너입니다. 정해진 순서도 틀도 없습니다. 본인의 판단에 온새미 꺼리가 된다는 생각이 들면 궁금한 것은 좀 더 물어보고, 필요하다 싶으면 촬영도 좀 더해서 내용을 소개하는 간단한 기사와 함께 편집하고 자막까지 넣은 영상뉴스를 올리는 것입니다. 온새미 데스크는 장익환 부장께서 맡고 계시고, 저는 온새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5. ‘온새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아직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홍보가 많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도 ‘KBS 뉴스’ 인터넷 사이트 메인 화면에 올라가 있기 때문에 간간히 피드백이 들어옵니다. 참신하다는 평도 있고, 내래이션이 익숙하신 분들은 지루하다는 얘기도 하십니다. 아무래도 영상과 현장음 위주로 구성을 하다 보니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상과 현장음만으로 구성을 해도 지루함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속적인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6. 앞으로 ‘온새미’가 어떻게 자리를 잡았으면 하나?  8월 12일, ‘온새미’에 대한 중간 프리젠테이션을 합니다. 사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기 때문에 해결해야할 문제도 많습니다. 나는 ‘온새미’가 카메라기자만의 독자적 서비스 모델 개발의 계기됐으면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지적된 문제점들을 해결하고, ‘온새미’만의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방송 환경이 디지털화 되면서 MMS, DMB, IPTV 등으로 채널이 다양화 되는 것도 염두에 둘만 합니다. 이런 영향으로 KBS 역시 24시간 뉴스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뉴스도 다양한 형식으로 거듭나야 할 것입니다. 온새미’는 이런 때를 맞이하기 위한 시험과 연구, 그리고 훈련의 장이 되리라고 봅니다. 7. 그 외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마디.  ‘온새미’에 대한 많은 애정과 관심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온새미’는 KBS 카메라기자들 만의 코너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코너입니다. KBS 온새미를 통해 모든 카메라기자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고, 함께 발전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박진경 기자와 인터뷰를 마치고 만난 ‘온새미’ 데스크 장익환 부장은 ‘온새미’의 매력에 대해 “매일 매일 숙제하듯이 만들어 내는 뉴스가 아닌 기자들의 자발적인 의지로 만들어지는 뉴스이기 때문에 만드는 카메라기자의 생각, 감정 등을 보는 사람이 함께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뉴스”라고 말했다. 덧붙여 “이를 통해 카메라기자들의 역량 향상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온새미’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8-29
  • 생방송으로 전해진 우리의 땅 독도
    “생방송으로 전해진 우리의 땅 독도” 캡 : “태현아, 이번 주에 특별한 일 있냐?” 태현 : “아니요.” 캡 : “그래? 그럼, 독도 구경 다녀와라.” 태현 :  “네, 알겠습니다.”  캡과 이 짧은 대화 후, 일본 문부과학성이 중학교 교과서에 자국영토로 명시함으로 인해 긴장감이 고조된 독도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앞으로 다가올 힘든 여정을 알지 못 한 채 출장 준비를 바삐 한 후, 저녁 8시경 취재진은 강원도 동해 묵호항으로 향했다. 새벽 1시경 동해에 도착 다음날 아침 7시 울릉도행 배를 타기위해 묵호항 근처 숙소를 잡았다. 갑작스런 출장에 정신없이 짐을 챙기고 여기까지 달려오느라 몸이 피곤했으나 ‘이번 취재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무거운 책임감과 역사의 현장에 내가 곧 선다는 설렘으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다음날 해가 밝았다. 선선한 바람, 너무나 잔잔한 파도 덕분에 묵호항을 출발 9시간 만에 드디어 독도에 도착했다. 무사히 독도에 도착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독도 선착장에 힘차게 들뜬 마음으로 발길을 내딛는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수 백 명의 사람들은 20분 정도의 제한된 시간 안에 눈으로, 마음으로 그리고 사진으로 독도를 담으려고 분주히 움직였다. 이 순간 독도는 더 이상 외로운 섬이 아니었다.  얼마 후 잠시나마 독도와 함께했던 이들은 떠나가고 취재진은 서너 시간 뒤에 있을 뉴스를 준비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이번 출장에 취재진은 취재기자 2명, 보도기술팀 3명, 오디오맨 등 최소한의 인원으로 꾸려졌다. 그래서 나는 취재 및 송출 이외에 매 뉴스 시간마다 중계 카메라맨의 역할도 해야 했다. 라이브 장소가 바뀔 때마다 보도 기술팀 선배들과 같이 장비를 옮기고 적절한 조명 설치와 좋은 앵글을 잡기 위해 힘썼다. 우리들은  한 몸인 듯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타사보다 먼저 저녁 6시, 7시, 9시, 11시 아침뉴스에 독도 생방송을 할 수 있었다.  이번 독도 출장의 가장 큰 포인트는 일본이 촉발 시킨 영유권 분쟁의 현장인 아름다운 우리의 땅 독도에서 라이브로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KBS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는 점이었다. 독도  경계근무에 만전을 기하는 경비대원들의 모습, 어느 때보다 유난히 펄럭이는 태극기, 독도 근해를 쉼 없이 정찰하는 해양 경비함과 헬기, 아름다운 우리의 땅 독도의 여러 모습 등이 우리의 카메라를 통해 많은 시청자들에게 전해졌다.   때로는 안개가 자욱이 쌓이고 때론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취재진이 독도에 머문 5일 동안 생방송 연결은 계속되었다. 독도는 취재뿐 아니라 먹고 자는 데도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동도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는 와 등대 한 곳뿐. 우리들은 등대 소장님의 큰 배려로 등대에 거처를 어렵사리 잡았다. 여기에도 등대지기 3명, 타사 취재진 5명 우리 취재진 7명 포함 넉넉한 공간은 찾을 수 없었다. 3개의 방중 작은방 하나에 4명이 간신히 몸을 뉘었고 나머지는 부엌, 지나가는 통로에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바깥보다는 이곳이 천국이지만 하루 동안의 피로를 풀기에는 부족한 곳이었다.  일본의 터무니없는 망언 때마다 많은 관심을 받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라는 행정 구역을 가진 독도. 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KBS 카메라로 이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많은 시청자들에게 전달하며 느꼈던 가슴 뿌듯함은 오랫동안 가슴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김태현 / KBS 보도본부 영상취재팀 기자
    2008-08-29
  • 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그리고 우리는 바다로 갔다 - 독도를 다녀와서 -  독도로 가는 길은 예상외로 험했다. 동해의 묵호항이나 경북 포항에서 배를 타고 울릉도에 들른 다음 거기서 다시 세 시간 뱃길이다. 기상도 종잡을 수 없는데다 일반 항구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작은 접안 시설은 조금만 파도가 쳐도 접근을 허용치 않는다. 게다가 육중한 방송장비들이 있어 배편을 잡는 것도 쉽지 않다. 한 해에 접안 할 수 있는 날이 수십일 밖에 되지 않는다는 그 길고 험한 길을, 가야만하고 갈 수 있는 길을 하늘의 별을 보고 가는 심정으로 내디뎠다. 첫 번째 항해는 실패로 끝났고 두 번째는 해경의 도움을 빌어 겨우 독도의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3년 전 시마네 현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한다고 해서 떠들썩했던 때에 이미 먼저 와봤던 선배들이 있었지만 TV를 통해 봐야만 했던 그 동단의 정토를 딛고 서있는 심정은 가슴 뜨거운 흥분이나 애국심 같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착잡함이었다. 무엇이 수 천 년 동안 인간의 욕망을 흘겨보며 바다 위로 나있었던 이 두 개의 돌섬의 단잠을 깨워야만 했을까.  이 험한 곳에도 사람의 발길은 미친다. 시절이 하수상한지라 이곳에 굳이 휴가를 오겠다는 이들도 늘었다고 한다. 대학생들, 역사 선생님들, 공무원들은 물론이거니와 가정주부들도 국토의 최동단을 눈과 발로 확인하고는 카메라에 담으며 감격의 심정을 누린다. 일반인들이 닿을 수 있는 독도는 두 개의 섬 중 동도의 선착장 주변에 인공으로 만들어놓은 콘크리트 바닥이 전부이다. 그곳에서 에메랄드 빛 바다와 자유로이 비행하는 바닷새들을 둘러볼 수 있을 뿐이다. 경비대가 통제하는 수 백 개의 계단을 힘들여 올라가면 그 곳에는 독도 경비대의 막사와 등대와 통신시설들이 서있다. 고관대작들이야 헬기를 통해 편하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무거운 방송 장비들을 들고 올라와 그 정상에 서면 새들의 분비물로 가득한 이 땅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우리는 그 곳에 생중계를 위해 장비를 설치하고 이곳이 대한민국의 땅임을 굳이 더 확인시켜주려 앵글을 잡아야 한다. 몇 개월 동안 뭍과의 인연을 멀리해야 하는 경비병의 애로와 긍지도 담아야 한다. 언뜻 문명과는 멀어 보이는 이곳에서 휴대전화가 터지고 TV의  영상이 전달되는 것도 실로 경이로운 일이다. 뜨거운 햇빛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은 그 곳에서 천 개에 가까울 계단을 오르내리며 영상을 찍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아슬아슬하게 방송을 마쳤고 때로 우리의 일을 잠시 뒤로 미룬 채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들 멋진 경관들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그렇지만 두 번은 오지 않았으면 하는 공통의 심정을 나누었다. 밤바람이 차가운 중에도 창고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도 생각만큼 힘든 일은 아니었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만 아니라면 며칠 더 그 곳에서 노숙하더라도 충분히 그 광경을 눈과 머릿속에 담아두고자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바닥이 들여다보일 듯 한 옥 빛 맑은 물을 주위에 끼고 있는 그 섬은 철제의 탑들, 소총으로 무장한 젊은 병사들의 굳은 표정과는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오히려 오래 전부터 대를 이어 그 섬을 보금자리로 삼았을 바닷새들의 힘찬 날개 짓이나 살며시 부는 바람에도 몸을 흔드는 이름 모를 풀들이 이 외로운 섬의 오랜 벗일 것이다. 그 동안에도 총리며 장관이며 정치인들이 이곳을 들러 그 연분을 과시하고자 했겠지만,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태평양을 그리워하며 서있는 푸른 돌섬은 그렇게 변함없이 의연히 서있을 것이다. 양두원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8-08-29
  • <대담> 영상기자만의 상상력! 역량 발휘가 필요하다
    <대담> 중앙일보 ‘사진 조작’ 사건을 보고 - 돌아보는 뉴스 영상 연출 “영상기자만의 상상력! 역량 발휘가 필요하다”  지난 22일, 여의도에서 ‘중앙일보 사진 조작 사건을 보고 - 돌아보는 뉴스 영상 연출’이라는 주제로 대담이 이루어졌다. 이번 대담에는 KBS 정현석, 한규석, MBC 김우철, SBS 임우식, YTN 최윤석 기자가 참여했으며, 사회는 본지 편집장인 MBC 장재현 기자가 맡았다. 대담에 참석한 기자들은 중앙일보 ‘사진 조작’ 사건을 보고 들었던 생각과 함께 뉴스 영상 연출의 과거 및 현재, 그리고 연출과 설명 사이의 경계에 대해 솔직 담백한 이야기를 나눴다. 장재현 : 다들 기사를 봐서 알 것이라고 본다. 중앙일보 7월 5일자 신문에 실린 사진이 조작이라고 밝혀졌다. 사진 설명에는 ‘손님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다’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그곳에 나간 ‘취재기자’와 ‘인턴기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먹고 있었던 것이다. 사진에 등장한 두 기자 모두 여자였는데 고기의 양이 너무 많다는데서 의심을 받아 ‘사진 조작’ 여부가 공론화 되었고, 결국 ‘조작’임이 밝혀진 것이다. 이 사진의 경우, 현재 국민적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연출’, ‘조작’ 여부가 논란이 되어 결국 그 진실이 밝혀졌지만,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많을 것이라고 본다. 임우식 : 지금도 지금이지만, 예전에는 더했다. 식품회사에서 음료를 출시했다고 하면 해당 회사에서 기용한 모델이 시음하는 사진을 찍어 내놓고 사진 설명에는 ‘그곳에 온 손님이 시음을 하고 있다’는 식으로 기술을 한다. 지금은 신문을 보면 ‘모델’이면 ‘모델’이라는 설명이 되어 있으니 많이 나아져 있고 나아져 가는 중이라고 생각이 든다. 정현석 : 나 역시 임 기자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온 중앙일보 사진 조작 건은 조금 의외였다. 그 사진의 경우, 소속 언론사의 정치적(?) 의도가 극명하게 드러난 것으로 어떤 상황을 설명해주기 위한 ‘연출’이라기보다는 ‘조작’의 성격이 짙은 건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전혀 보여줄 것이 없을 때, 독자를 위한 ‘설명’ 차원에서의 연출은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내 개인적인 의견이다. 문제는 그 수위, 즉 적절성 여부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중앙일보 사진 조작 건은 인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된다. 김우철 : 동감한다. 팩트를 어기는 화면구성은 어떤 경우에도 용인될 수 없다. 재연과 연출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실을 떠난 연출과 재연이 녹아있는 화면은 왜곡된 텍스트 보다 더 위험하다. 단, 설명해야하는 기사와 가치를 판단해야 하는 기사는 다소 성격이 다른 것 같다. 중앙일보의 사례는 사실에 반한다는 점과 함께 판단의 문제영역을 건드려서 더욱 문제가 심각하다.  한가지 덧붙인다면, 연출과 조작에 관련해서는 현재의 취재환경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TV뉴스의 사실성을 배가시키기 위해서는 현장 밀착성이 관건인데, 취재기자보다 카메라기자가 현저히 모자한 현재의 환경은 카메라기자의 관찰과 수집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고, 이런 측면들이 연출이나 조작의 유혹으로 넘어온다고 본다. 거시적인 관점에서는 취재환경의 개선이 먼저 논의되어야 한다. 최윤석 : 그거야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가? 시간에 쫓기지 않을 만큼 취재 인원 확보해 주면 좋겠지만, 그것이 당장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나? 백 번 양보해도 있지도 않은 사실을 조작해서 사진을 만들어 내 보내는 것은 기자로서 자질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시간에 쫓긴다고, 혹은 데스크가 독촉을 한다고 사실을 왜곡하는 보도가 용납될 수 있을까? 그 당시 상황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장재현 : 그렇다. 그 기자의 입장이 전혀 이해되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사건을 타산지석 삼아, 속된 말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이런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모두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럼 이제 우리 이야기를 좀 해보자. 현재 방송 뉴스의 경우, 재연이나 연출이 거의 없어졌다. 입사 초만 해도 가스관을 타고 올라간 강도 사건 취재를 갔다 하면, 누군가는 가스관을 타야했다. 왜냐? 그림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뉴스 영상을 찾아 볼 수가 없다. 사실 그런 영상이 반드시 필요한 것도 아닌데, 우리 스스로가 너무 자극적인 영상에 길들여져 있던 나머지 그런 시도가 수시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이런 유형의 아이템 취재를 많이 하고 있는 한규석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금은 어떠한가? 한규석 : 그런 재연은 전혀 없다. 자동차 절도사건 취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피의자의 이동 경로를 따라 현장 영상만 촬영해 뉴스를 만들었다. 편집을 해놓고 보니 좀 밋밋한 감은 있었으나 회사 선배들로부터 재연이나 연출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누차 들었기 때문에 시도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김우철 : 맞는 이야기다. 사실 그런 재연이나 연출은 무의미할뿐 아니라 각사의 언론윤리조항에도 어긋난다. 그뿐 아니라 모방 범죄의 가능성까지 안고 있어 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범행수법의 재연이나, 보는 이마다 시각차가 있는 가치판단 영역의 연출, 그리고 팩트와 다른 연출은 당연히 시도되지 않아야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절대불가한 조작의 적절성에 대한 논의가 아니라, 설명적 아이템에서 뉴스 효율성을 위해 용인되고 있는 연출에 대한 함의가 필요할 것 같다. 예를 들어 독거노인의 힘든 점을 보여줘야 하는 아이템에서 제일 좋은 방법은 밀착성과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몇일낮 몇일밤을 계속 함께 생활하는 것이지만, 이는 현재의 취재구조에서는 비현실적이다. 가치판단이 아닌 설명적 아이템에서는 이런 상황적 한계 때문에 재연의 기법을 쓰는 경우가 현실적으로 있다. 네오리얼리즘 감독들이 그들의 사실주의 영화에서 구현했듯이, 사실을 취재해서 사실에 입각해서 당사자의 증언과 행위에 기반한 연출은 불기피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무조건 안된다는 규정보다는 현실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현석 : 그렇다. 그런 경우 김 기자의 말도 맞다. 정말 적절한 예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기준을 세운다는 것이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본다. 우선 원칙은 ‘재연’이나 ‘연출’은 안 되는 것으로 하고, 그 원칙 안에서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풍부하고 자세한 설명도 좋지만, 그런 디테일한 내용은 뉴스 영상으로 보여주지 않아도 기사 등을 통해 더 상세히 알 수 있다. 재연을 해서 보여준다거나 사건 현장을 따라다니며 줄줄 보여주는 것은 카메라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영상 기자로서의 센스를 발휘해 사건을 이미지화 시켜 보여주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카메라기자도 ‘상상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임우식 : 좋은 이야기이다. 우리는 뉴스를 만드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연이나 연출은 원천적으로 배제해야 한다. 이는 뉴스의 신뢰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기자들이 이 부분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살짝 편집장이 언급했지만, 예전에는 그림을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건 취재에 있어서는 피의자를 데려다가 범행 내용 일일이 재연시키는 일도 다반사였다. 현장 검증을 경찰과 기자가 함께 했던 것이다.  사실 아직도 시사 다큐멘터리 같은 호흡이 긴 프로그램을 제작할 경우, 재연이나 연출을 할 때가 있다. 주어진 시간과 인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원하는 그림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기다려볼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마저도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연출이나 재연을 카메라기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시간에 쫓겨 나 역시 그들과 함께 하지만, 그들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낀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언론의 생명은 ‘국민의 신뢰’이다. 이 점을 간과하지 말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최윤석 : 기획 리포트처럼 비교적 호흡이 긴 프로그램의 경우 적절하고 핵심이 되는 화면을 잡아내기 쉽지 않다. 앞에서 말씀하셨듯이 시간에 쫓기다 보니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사실’, ‘실태’를 보여줘야 하는 부분을 ‘연출’, ‘이미지’로 대체하려는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다. 그러나 쉽게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노력을 했으면 좋겠다. 취재여건의 한계를 극복하려 하면 할수록 손때 묻지 않은 무공해 영상을 얻게 될 것이고 이것이 카메라기자 개개인의 경쟁력이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안양초등생 사건으로 인한 불안감으로 부모들이 자녀들을 직접 등하교시키는 아이템의 취재를 생각해 보자. 끈기를 갖고 잡아낸 화면, 아이를 등교시키고 난 후 근심스런 눈빛으로 뒤돌아보는 어머니의 표정 한 컷이 “자녀 한번 안아주세요”라는 취재진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화면보다 더욱 시청자들의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결국 카메라기자의 노력과 의지가 있어야지 시스템의 한계도 개선시켜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장재현 : 좋은 말씀 잘 들었다. 취재 여건 상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어렵다 어렵다만 하지 말고 ‘언론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할 것이다. ‘공신력’은 언론의 존재의미이다. 언론이 ‘공신력’을 잃으면 우리 역시 설 자리를 잃는 것이다. ‘재연’이나 ‘연출’ 역시 ‘가치 판단’이 필요하다는 김우철 기자의 말에도 공감이 간다. 그리고 우리의 취재 시스템 상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신문이든 방송이든 기자들이 원칙적으로 이를 배제하고 현장을 대하는 자세를 갖는 것인 것 같다. 중앙일보의 예처럼 이런 사건이 발생했을 때, 이것은 문제가 된 기자 한 사람 혹은 그 언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언론인으로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재현 기자의 정리로 대담은 이렇게 끝이 났다. 참석자들은 이런 사건이 계속되면 언론의 공신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공감했다. 이어 연출과 설명 사이의 경계에 대해서는 ‘가치 판단’을 요하지만, 이 시점에서 선언적으로라도 ‘재연’이나 ‘연출’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는 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라며 입을 모았다. 참석자들은 진실을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런 것들이 필요한 경우라 하더라도 영상 기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해 다른 시도를 해보려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대해 함께 모여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도 정보 공유나 발전 차원에서 좋을 것 같다고 언급했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8-25
  • 당신의 '야근' 어떠십니까?
    당신의 ‘야근’… 어떠십니까? 응답자의 85% 야근 후 체력적 부담 느껴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회장 전광선)는 최근 촛불 집회 등으로 야간 취재에 대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카메라기자들의 야근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고자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번 설문조사에는 10년 차 이상 45명, 4~6년차 27명, 7~9년차 20명, 1~3년차 20명 등 총 112명의 카메라기자가 참여했으며, 서울지역 회원을 대상으로 했다.  카메라기자들은 ‘야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이번 설문 조사에서 주목할 만 한 점은 카메라기자 85%가 야근 후 체력적 부담을 느낀다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체력적 부담을 느낀다면 몇 년차부터 그랬나?”는 질문에 “1~3년차부터”가 40%로 가장 많았고, 4~6년차부터가 30%, 7~9년차부터가 17%, “10년 차를 넘으면서부터”가 13%로 가장 적었다.  야근에 대한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서는 “싫다”는 대답이 42%로 가장 많았고, “보통이다” 38%, “좋다”20%로 과반수 가량의 카메라기자들이 야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야근이 싫은 이유로는 53%가 “밤에 잠은 자지 못하면 생체 리듬이 깨지니까”라고 답했고, “밤에 나가는 취재는 육체적으로 힘들거나 위험한 경우가 많으니까”(30%), “야근한 다음날도 일의 연속(집안일, 아기 돌보기)”(15%) 등의 답변이 있었다. 야근이 좋다고 대답한 사람들의 경우, 대부분 야근이 좋은 이유로 “야근한 다음날 개인용무를 볼 수 있기 때문”을 들었다.  그리고 야근 하는 날 출근 시간을 잘 지키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자의 75%가 잘 지키고 있다고 대답했다. 야근 시 출근 시간에 대해서는 “오후 1시”가 30%로 가장 많았고, “오후 2시”가 24%, “오전 9시”가 23%, “오후 4시”가 16%, 오전 8시가 “7%” 순이었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오후 출근이 70% 로 오전 출근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야근의 빈도는 대부분 “주 1회 이하”(95%)라고 대답했다.  야근한 다음날은 56%가 “휴식을 취한다”고 답했으며, 23% “가사 및 육아 등 집안일을 한다”, 12%가 “취미 생활을 한다”고 답했고, “누구와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냐?”는 질문에는 “가족”이 58%로 가장 많았고 “혼자”(25%), “친구”(7%), “연인”(6%) 순이었다.  기타 질문으로 “촛불 집회 취재 시 가장 어려웠던 점”에 대해서는 “신변 위협”, “시위대의 욕설 및 야유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육체 피로”, “취재 방해” 등의 답이 주로 나왔다. 소수 의견으로는 “부감 촬영 제한” 등의 의견이 있었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8-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