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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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릴레이 인터뷰> YTN 이상은 기자
    <이어지는 인터뷰 - YTN 이상은 기자> “카메라기자로서의 영광, 제대로 된 특종해보고 싶어” 1. 이어지는 인터뷰에 추천된 소감  추천한다는 조금의 귀띔도 없었기에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박동혁 선배가 날 차기 인터뷰 주자로 뽑아 주었고, 추천사에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쑥스럽게도 개인 사정까지 걱정해주니 너무 고맙다. ‘나이에 비해 순수한 사람’이란 부분만 좀 걸리는데... ‘철없는 사람’은 아닐 거라 믿는다. (웃음) 2. 이상은 기자가 생각하는 박동혁 기자는?  내가 아는 박 선배는 참 성실한 사람이다. 처음엔 학자를 연상시키는 샤프한 외모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지만, 취재 현장에서 자주 마주치고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외모와는 달리 속마음은 정말 푸근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더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주저 없이 함께 하고픈 선배다. 현장에서 볼 때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하던데 매번 점점 더 밝아지는 것 같다. 결혼 이후 웃음이 더 보기 좋던데, 일 때문에 힘들어도 신혼은 신혼인가 보다. 부러울 뿐이다.   3. ‘공정 방송 수호’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즘 근황은?  ‘공정방송’ 배지를 가슴에 달고 사측에 입바른 말을 했을 뿐인데 엄청난 징계 조치가 내려졌다. 해직자, 정직자, 감봉자, 모두 의로운 일을 하신 분들이며 이 일이 있기 전엔 YTN의 성장을 위해 열심히 일만 하셨던 분들이다. 보통은 10여년 넘게 이 회사에서 근무해 온 분들이 대부분이다. 집에선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을 텐데… 하지만 이런 탄압성 징계 조치에도 힘을 잃기는커녕, 그럴수록 더 큰 힘을 내는 그들이기에 나 역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 같다. 선택한 길을 믿고 계속 따라갈 뿐이다.    4. 입사한 지는 얼마나 되었나? 그 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2005년 1월에 입사했다. 이제 4년차도 며칠 안 남았다. 5년차에 이르면 모든 취재에 자신감이 붙고 가장 좋은 그림이 나온다고 그러던데, 더 노력해야 가능할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입사 초기에 취재했었던 동대문 시장 동문 상가 화재이다. 새벽에 작은 신발 가게에서 시작된 불은 늦은 오후가 되서야 꺼졌고, 결국 시장 건물 3동을 태우고 4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였다. 야근에 지친 몸이었지만 매캐한 냄새를 맡아가며 영상취재 팀의 막내로서 뭔가 보여줘야겠다, 몸 사리지 말아야겠다는 의지로 시장 곳곳을 뛰어 다니며 열정적으로 취재에 임했었다. 1년 차에 나간 힘들었던 일정이라 새록새록 기억이 난다.  이 사건이 내게 다른 일정보다 먼저 생각나는 건, 화재가 일어나기 2주 전에 발화 건물 건너편에 있는 한 의류 상가를 취재해 ‘재래시장 화재에 무방비’라는 리포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전에 상가 상인회 측에 통보하지 않고 전문가와 함께 화재시 재래시장이 갖게 되는 취약점을 진단하는 것이 목표였다. 취재를 시작한 지 이 십 여분이 지나자 내부 CCTV를 보고 왔는지 검은 유니폼을 입은 아저씨 3명이 다가와 상가 측 허락 없이 들어왔으니 건물 밖으로 바로 나가라는 경고를 보냈다. 다시 들어오면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으름장에 좀 위축되긴 했지만 몇 가지 부족분을 위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갔다. 그리곤 곧 잡혔다. 관리 사무실로 끌려가 2~3시간 동안 감금(?)당하며 깍두기 아저씨 5명과 촬영한 테이프를 놓고 설전을 벌였다. 상가 측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중재한 후에야 겨우 풀려났는데, 이렇게 어렵사리 제작된 리포트 방송 날짜는 상가 측 반발을 줄이기 위해 2주 정도 미뤄졌고, 방송이 나간 이틀 후 새벽에 대형 화재가 난 것이다.  야근을 마치고 퇴근하면서도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욕 먹어가며 감금당하며 어렵사리 만든 리포트가 나갔는데도 이틀 후에 4명의 귀한 목숨이 사라지다니 도대체 난 무엇을 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포트 한 건 채우려는 마음만 갖고 있었던 건 아닌가? 5. 앞으로의 계획 또는 목표가 있다면?  부끄러운 얘기지만, 그동안 영상 특종을 해본 적이 없다. 주위에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고는 하지만 그건 성에 안 찬다. 수상 여부를 떠나 특종 화면을 잡았을 때 온몸을 타고 흐른다는 희열을 느끼고 싶다.  보통, 최신 핸드폰엔 수백만 화소의 고성능 카메라가 달려 있어 방송에도 손색없는 좋은 동영상을 담을 수 있다. 또, 캠코더를 이용해 여가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해가 바뀔수록 영상을 즐기는 인구가 늘어남에 과거 카메라기자만이 할 수 있었던 영상 특종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홀로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정도로 가치가 있는, 내가 아니면 세상에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렸을 지도 모를 일을 기록할 수만 있다면 내게 그만한 영광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7. 협회에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카메라기자 일을 하면서 아직도 카메라기자 협회의 많은 선후배들을 모른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취재 일정에 쫓기다 보면 서로 눈인사하기에도 어려울 때가 많고, 협회에서 주관하는 수중촬영 교육 같은 이벤트에 참여해도 폭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협회에서 정기적으로 체육대회나 등산 같은 모임을 마련해 준다면 회원 간의 친목을 도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협회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8.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KBS 왕인흡 선배를 추천하고 싶다. 정말 정 많고 인간성 좋은 선배이다. 2년 전 금강산 이산가족 상봉 취재를 마치고 복귀하다가 양평 부근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목 디스크 판정이 나 한동안 고생한 적이 있다. 이때 걸려온 한 통의 전화, 왕 선배였다. 진심 어린 말로 안부를 묻던 왕 선배, 몇 달 후 순환 근무 차 지방으로 내려가 감사하다는 인사를 제때에 충분히 전하지 못한 것 같다. 이 지면을 통해 전하고 싶다. ‘타사 후배인데도 신경 써줘서 고맙고요, 선배도 교통사고 후유증 조심하세요.’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1-15
  • 2009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취재하고```
    제목 없음 2009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취재하고 경쟁보다는 취재원의 입장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200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지난 11월 13일에 실시됐다. 시험 전날 사회팀장으로부터 휘문고에서 수능을 취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고사장 출입증 뒷면에 기재된 내용을 숙지할 것, 특히 교실 안으로 들어가거나 정해진 시간을 초과해가며 취재를 하지 말라는 지시도 함께 받았다. 카메라 기자가 고사장을 취재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8시 10분부터 30분까지. 1교시 언어영역 시험지도 제대로 못 찍고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 당일 휘문고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대부분의 카메라기자는 취재가 허락된 20분의 시간을 지켰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촬영을 했다. 2년 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점심시간 때도 교실 안으로 들어가 취재를 하는 기자는 없었다.    2007학년도 수능 때는 장충고로 갔었다. 학교 앞에서 응원전 취재를 마치고 다급히 고사장 안으로 들어가 수험생을 촬영했다. 1교시 답안지를 나눠주는 순간부터 언어영역 시험지를 나눠 줄 때까지 교실과 복도를 들락거리며 취재를 했다. 듣기평가 예비령이 울렸을 때 교실 밖으로 나와 몇 컷 더 찍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장충고를 찾은 타사 카메라기자나 사진기자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취재를 했다. 점심시간엔 식사를 하는 수험생을 찍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2년 전에 비해 수능취재준칙은 엄격해졌다. 하지만 조금 더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많은 언론사가 특정 학교에 몰리다 보면 취재가 과열될 수도 있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쏟아져 나올 리포트를 대비해 다양하고 좋은 영상을 확보하려는 카메라기자의 욕심 아닌 욕심이 취재시간을 어기게 만들 수도 있다. 시험 당일 집중력을 최대한 유지해야 하는 수험생에게 무리한 취재로 불편을 끼쳐서는 안 된다. 수험생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사장 내부 취재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교실 밖에서 촬영을 한다고 해도 문을 열어놓고 찍는다면 수험생에게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풀단을 만들어 고사장 취재인원을 제한하는 것이 과열취재를 막는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고사장 밖에서 하는 영상취재는 각 방송국의 재량에 맡긴다 하더라도 고사장 내부 취재인원을 제한하고 분산시키면 촬영으로 인해 수험생들이 받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수험생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다음 시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점심시간에는 취재 자체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취재현장은 기자들의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경쟁을 피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경쟁보다는 취재원의 입장을 고려해야만 하는 현장이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취재현장이 바로 그런 곳이다. 매년 수능취재규칙이 엄격해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엄격한 규칙을 만들고 지켰으면 좋겠다   강영관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15
  • Media Eye 제5대 편집위원을 마치며```
    제5대 편집위원을 마치며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편집장 MBC 장재현 30년 넘게 살면서 감투라는 것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그 흔한 초등학교 부반장 아니 줄반장도 한번 안해본 접니다. 뭔가를 쓴다는 것도 입사시험후로 드문 일이었는데요. 덜컥 편집장이란 자리를 넘겨받고 후회했었요. 어찌어찌해서 이렇게 후기까지 쓰게 되어서 마음후련하네요. KBS 이영재 어떻게 하면 카메라기자들의 다양한 역할과 고민들을 담아낼까 고민했던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교차합니다. 앞으로는 독자의 입장에서 열독하고 차기 편집위원들의 원고청탁이 있다면 펑크 안내고 열심히 쓸게요. MBC 오 령 협회보 편집의 후유증이 생겼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오·탈자가 보이면 고치고 싶어집니다. 일 년 반이 다 지나고 난 이제 와서야 그 시간이 빨리 간 것 같습니다. ‘고생했다’며 같이 웃을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지금 없습니다. 하늘에서 같이 뒤풀이해요.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MBC 정연철 올 한해도 이리저리 바쁘게 흘러갔네요. 마지막 신문을 내고 이제는 시원하게 쉴 수 있네요. 모두들 수고하셨구요. 같이 달콤한 낮잠 좀 즐기시지요. SBS 박현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맛있는 저녁도 많이 먹고, 좋은 선물도 많이 받고... 차기 편집위원님들도 즐겁게~ SBS 정상보 소통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카메라기자로서의 사명감, 아픔, 고민, 자부심과 부끄러움까지...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기에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2년의 시간동안 고생하신 동료 편집위원들의 해방감을 공감하며 편집위원이라는 이유로 강제에 가깝게 글을 부탁했던 부서원들과 어머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YTN 곽영주 2년 동안 기사를 써주신 YTN 선후배, 동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알차고 볼거리 많은 협회보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YTN 최윤석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에 적응하며, 동시에 카메라기자로서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다듬어가는 협회보의 역할을 차기 편집위원들이 잘 수행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OBS 이홍렬 열의와 책임감을 갖고 시작했는데 생각한 것만큼 성의껏 못한 것 같아 조금 부끄럽다. 편집위 위원들과 함께한 활동으로 많을 것을 배우고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함께해준 편집위원들, 고생 많았던 안양수 기자, 어려운 원고 청탁에도 흔쾌히 수락해준 OBS선후배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mbn 이종호 회의에 많이 참석을 하지 못한 관계로 되도록 쉬운 과제를 맡겨준 다른 편집위원들께 미안한 마음과 고맙다는 인사를 이자리를 빌어 드립니다. 그동안 편집위원을 하면서 원고를 부탁하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줄 몰랐습니다. 이제 끝이라니 시원섭섭하네요.
    2009-01-09
  • <줌인> 프리미어 리그가 주는 교훈
    프리미어리그가 주는 교훈  예전에 어느 시인이 축구를 보러 영국에 간다는 말을 듣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축구를 하려고 가는 것도 아니고 축구를 보려고 영국까지 간다고? 월드컵 때나 텔레비전 앞에서 손에 땀을 쥐고 대표팀을 응원하던 내게 그 시인의 말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내가 프리미어리그 취재로 영국에 가서 관중석에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면서 그 시인이 왜 영국까지 가서 축구를 보는지 이해가 되었다. 모든 관중이 하나가 되어 응원을 하는데 그 열기에 내 심장이 떨릴 지경이었다. 아마도 시인은 그 심장의 떨림을 잊지 못해서 계속 영국을 찾는 거라고 짐작해 본다. 다른 나라의 축구와 다른 점이 분명히 많겠지만 내 눈에는 유독 다르게 느껴지는 게 한 가지가 있다. 경기를 하는 90분 내내 모든 축구 선수들이 쉼 없이 뛰어다닌다는 것이다.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도 90분 동안 그라운드 곳곳을 누빌 수 있는 강철 체력일 것이다.  요즘 프리미어리그에서 화재가 되고 있는 팀이 있다. 챔피언 십 리그인 2부 리그에서 올라온 헐 시티란 팀인데 강팀을 꺾기도 하고 대등한 경기를 해 리그 초반이긴 하지만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 팀이다. 얼마 전에 헐 시티의 경기를 보았는데 왜 이 팀이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유심히 보았다. 이들이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다른 팀들보다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90분간 11명이 쉼 없이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다. 11명의 박지성이 있는 팀이었다.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뛰어난 기술을 가진 선수는 없었지만 11명의 선수가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준비된 팀인 것이다.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지고 있는 선수들이었다.  과연 우리는 시청자라는 관중을 열광시키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한 가수를 취재하러 연습실에 간적이 있다. 연습실에 세션맨들이 꽤 많이 있었다. 젊은 피아니스트, 트럼펫을 부는 관록이 묻어나는 노신사, 북을 치는 타악주자 그리고 코러스를 담당하고 있는 아카펠라 그룹까지 모두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한 동안의 준비가 끝나고 리허설을 하는데 장난기가 가득했던 피아니스트는 환상적인 손놀림으로 건반을 주무르듯 했고 복덕방에서 장기나 두면 딱 어울릴 것 같았던 트럼페터에게선 수 십 년 동안의 세월이 선율을 타고 나왔다. 북치는 타악주자는 또 어떠랴. 가수와 농담을 주고받을 때와는 다르게 나이에 비해 완숙미가 묻어나오는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배나온 아저씨들로 구성되어 있는 화음을 넣는 아카펠라 그룹은 잠시 쉬는 틈을 이용해 화음이 아닌 그들 각각의 노래실력으로 모두 훌륭했다. 그들이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의 실력에 감탄을 하고 있다가 문득 그럼 나는 어떤가? 그들에게도 나는 한 명의 프로페셔널리스트일텐데… 그들의 눈에도 내가 전문가처럼 보일까? 순간 얼굴이 후끈 달라 올랐다. 저들처럼 눈을 감고도 연주를 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려면 엄청난 노력을 했을 텐데 과연 나는 시청자들에게 전문가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관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강력한 체력과 관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연주력은 모두 땀의 결실인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열정과 그 열정의 결실로 숙련미까지 갖출 수 있다면 어떤 현장에 있던지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감동과 열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영상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누구랄 것도 없다. 나부터 하면 된다.
    2009-01-09
  • 디지털, 네트워크, 아카이브, 영상 편집을 바꾸다!
    디지털, 네트워크, 아카이브, 영상편집을 바꾸다! “카메라기자도 다양한 업무영역이 선순환 될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해야”    지난 호에서는 기술발전으로 인해 변화하고 있는 영상취재를 이야기해본데 이어 이에 못지않게 큰 변화의 소용돌이에 있는 영상편집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최근 수년간의 영상편집의 변화는 크게 넌리니어 편집, 네트워크 시스템, 아카이브와 같은 키워드들로 정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편집의 컴퓨터화가 진행 중이고 디지털화된 자산을 네트워크해 효율을 극대화하는 네트워크 기반 제작시스템(NPS)과 디지털화된 자산을 효율적으로 보관하고 활용을 다각화하기 위한 아카이브 시스템이 진행되는 게 디지털 방송시대의 큰 흐름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지금까지의 변화를 정리해보고 또 앞으로 진행될 변화의 방향과 이 변화가 카메라기자의 업무와 위상에 미칠 영향에 대해 알아보자. 넌리니어 편집  아직도 대부분의 뉴스는 일대일 VTR편집기를 이용해 이루어지고 있고 넌리니어 편집기는 디졸브, 와이프, 영상합성, 음성변조 등에 사용되는 일종의 효과편집기의 역할에 머물고 있다. 기능 성능 면에서 VTR편집기에 비해 월등하고 그렇다고 가격이 그렇게 비싼 것도 아닌 넌리니어 편집기가 기존 편집기를 대체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인제스트 시간으로 인해 뉴스의 생명인 신속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테이프리스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뉴스편집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인제스트 시간문제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 파나소닉의 P2카드의 경우 인제스트가 필요 없고 소니의 XDCAM 방식도 저해상도를 임포트해 편집하고 고해상도만 배치임포트하는 방식으로 인제스트가 훨씬 간편하고 쉬워져 넌리니어 편집으로의 전환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현재 SBS가 2004년부터 디지털 뉴스룸을 구축해 100% 넌리니어 편집을 하고 있고 MBC도 2008년 NPS(networked production system)를 구축 중으로 2009년부터는 모든 편집이 넌리니어 기반으로 이루어질 예정이고 KBS도 2009년 NPS 구축 예정으로 알려지고 있다. OBS와 지방에서는 2004년 진주 MBC 등에서 100% 넌리니어 편집이 이루어지고 있고 일부 지방 방송사도 테이프리스 카메라 도입과 함께 NPS를 이미 구축해 본격적인 넌리니어 편집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넌리니어 편집은 단순한 영상편집의 컴퓨터화 차원을 넘어 영상취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성능이 좋아진 노트북은 완벽한 넌리니어 편집기로 기능해 이미 카메라기자들의 필수 촬영장비가 되어가고 있다. 해외취재현장에서 취재한 영상을 노트북 컴퓨터에서 편집해 송출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모습이다. 공유를 즐겨라, 디지털 뉴스룸  넌리니어 편집은 단순히 편집의 컴퓨터화를 넘어 디지털화된 영상자산의 공유라는 더 큰 가능성을 가져다준다. 한번 디지털화된 영상자료는 쉽게 복제할 수 있고 또 하나의 영상자료를 여러 대의 넌리니어 편집기가 동시에 편집할 수 있다. 말 그대로 원 소스 멀티 유즈가 실현된다. 신속성에다 열화로 인한 화질 손상도 없고 미디어 자산 관리 시스템을 이용하면 수 십 명의 기자와 제작인력이 영상을 컴퓨터에서 프리뷰해 볼 수도 있다. 이런 개념들을 통합해 탄생한 게 디지털 뉴스룸이다.  영상기반의 제작시스템을 디지털화하고 영상자산과 기사의 텍스트 자산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연동해 네트워크 기반의 뉴스취재제작시스템이 탄생하게 되었다. 2004년 SBS가 최초로 대규모의 디지털 뉴스룸 시스템을 선보였다. SD기반 시스템으로 세계 최대 규모의 네트워크제작 시스템이었다. SBS의 디지털 뉴스룸 구축은 방송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디지털 뉴스룸은 모든 방송사가 선망하는 제작시스템으로 많은 관심을 끌고 디지털 뉴스룸 구축이 시도되었지만 그 후 몇 년간 제대로 구축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게 또 한국 방송의 현실이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이유는 뉴스제작특성상 시스템 안정성과 변화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일 것이다.  SBS의 경우 사옥이전이라는 모멘텀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OBS도 재창사라는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뉴스 외에 최대 규모의 NPS를 구축한 MBC 제작NPS도 일산사옥 신축과 함께 이루어졌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눈부신 기술발전은 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고 있고 테이프리스 카메라 도입과 함께 NPS시스템 구축이 활기를 띠고 있다. NPS시스템이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 데는 넌리니어 편집을 지원하는 스토리지와 미디어 자산을 관리하는 자산관리시스템(MAM, Media Asset Management)의 발전때문이다. 최근에는 아비드 소니 TGV등의 업체들은 자체 넌리니어 편집기에 자체 스토리지, 자산관리시스템 등을 제공해 대부분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필요가 없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간의 정합도도 높아 안정성이 높아졌다. 이로 인해 한 장비업체에 대한 종속도가 높아질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높은 시스템 안정성으로 인해 방송사고에 대한 위험을 최소화하면서 뉴스제작시스템을 디지털화할 수 있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뉴스제작 시스템은 앞으로 네트워크기반 제작시스템이 대세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상파 3사중 SBS에 이어 MBC가 2009년 상반기 구축을 목표로 추진 중이고 KBS도 파일럿 시스템운용과 베타테스트를 거쳐 구축 기획중이다. OBS는 2008년 개국에 맞춰 보도 제작 통합 제작시스템을 구축했고 지방사들 중에서도 진주 MBC가 완벽한 디지털 뉴스룸을 구축했고 삼척, 포항, 춘천, 대전, 대구 MBC 등이 관심을 갖고 구축했거나 추진 중이다. 그 외 많은 방송사들의 HD전환과 맞물려 NPS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아카이브  NPS도입은 뉴스제작의 디지털화와 네트워크화로 제작부분의 편집 품질 향상과 워크플로우 개선이 우선이었지만 부수적으로 영상의 디지털 자산화를 통한 아카이브 시스템을 가능하게 한다. 이미 디지털화된 영상자산은 넌리니어 편집기에서 편집 및 재가공이 쉽고 이를 공유스토리- 니어라인 스토리지- 딥 아카이브에 계층적으로 보관할 수 있고 각 스토리지에 보관된 영상 자산은 온라인상에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 편집의 효율은 높임은 물론 워크플로우를 개선시킨다.  우선적으로 사내 영상자산의 온라인 유통은 진정한 원소스 멀티유즈를 가능하게 한다. MBC의 경우 일산 제작센터에 드라마 예능 제작용 NPS를 구축했고 여의도에는 뉴스 NPS와 교양제작 NPS를 구축할 예정이다.  모든 제작시스템이 NPS에서 이루어지고 영상 자산들은 결과적으로는 회사 아카이브에 저장되게 된다. 회사 아카이브에 저장된 여의도의 영상을 일산 NPS에서 온라인상에서 다운로드 받아 편집할 수 있고 일산의 영상자산을 뉴스제작에도 바로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영상자산의 유실과 노후로 인한 화질 저하 문제도 개선된다. 영상을 아카이브에 디지털화할 경우 물리적으로 분리된 두 곳의 장소에 아카이브를 설치하고 백업해 안정성이 높고 온라인상에서 디지털로 계층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산관리는 사람의 실수가 아닌 한 유실률이 매우 낮고 영상의 훼손도 백업기술을 이용해 최소화할 수 있다.     디지털화된 자산의 부가가치 창출도 가능해진다. 현재 MBC의 경우 회사 아카이브의 영상을 IPTV등에 유료도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영상자산은 다양한 포맷으로 트랜스코드하기 쉬어 다양한 포맷으로 변환해 다양한 형태로 판매 유통이 자유롭다. 향후 영상 판매도 디지털 기반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온라인상에서 쉽게 구매와 다운로드가 가능해진다면 영상자산은 뉴스제작으로 인한 광고판매로만 제한된 이윤창출이 다각화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시스템 확장된 업무 영역  이런 영상편집의 디지털화는 뉴스 완제품의 품질을 높인다는 장점도 있지만 가장 큰 장점은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높은 업무 효율성은 한편으로는 적은 인력으로 더 많은 아웃풋을 퀄리티 저하 없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기도 하다. SBS의 경우 디지털뉴스룸 구축당시에 비해 뉴스시간은 거의 두 배로 늘었지만 영상편집은 인원 충원없이 뉴스제작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전 세계의 디지털 뉴스룸 구축 사례에서도 방송사의 구조상 디지털 뉴스룸 구축은 인력의 구조조정을 가져오기 보다는 인력 재배치와 함께 인력 증원을 막는다고 한다. 디지털화는 기존 업무는 높아진 업무효율로 더 적은 인원이 커버하고 새롭게 생겨나는 디지털화 된 원본을 아카이브시키는 아카이브 매니저, 영상 입력을 총괄하는 인제스트 매니저와 같은 새로운 업무들이 생겨나게 된다. 촬영, 영상편집에만 지나치게 편중된 카메라기자의 업무가 이제는 시스템 관리 운용과 영상자산 관리 업무들로 확장되게 될 것이다. 아직은 시작 단계인 아카이브는 이후 영상자산관리 영역의 업무를 한층 다각화시키고 확장시켜나갈 가능성이 높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카메라기자들도 새로운 업무 영역을 개척하고 다양한 업무영역이 선순환 될 수 있도록 미래를 준비해야할 것이다.     이창훈 / MBC 보도국 영상취재2팀 기자
    2009-01-09
  • "YTN" 우리는 상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상식[常識] :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분별 따위가 포함 "우리는 상식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방송의 공정성을 지키기 위해 낙하산 인사의 출근을 저지한 지 어느덧 110여일이 지났다. 오랜 투쟁으로 지치고 힘들지만 너무나 상식적이지 않은 현재의 상황을 지극히 상식적인 수준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이른 아침 한 자리에 모인다. 낙하산 인사 출근 저지 113일 인사횡포 불복종 투쟁 73일, 하지만 현 정부 출범이후 구씨의 YTN 사장 내정설이 흘러나오던 시간부터 고려하면 6개월이 넘는 기간이다.  우리의 투쟁 의지를 불타오르게 한 사건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지난 10월 7일 단행된 대대적인 징계조치이다. 5공 시절 언론탄압 이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해고 정직 감봉 등의 인사횡포는 대한민국 언론사를 20여 년 전으로 역사를 되돌린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를 더욱 단결하게 만들었다.  인사횡포 이후에도 구씨는 가끔 회사에 와서 직원들을 밀치고 들어가는 시늉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직원들은 낙하산이자 국감장에서의 거짓 증언을 한 위선자는 우리 회사에 들어올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구씨의 출근을 막았다. 결국 구씨와 사측은  노조가 물리력으로 구씨의 출근을 막았다고 주장하며 노조의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냈다.  어느 날 우리는 이른바 입심투쟁을 통해 구씨 자신이 어찌하여 YTN 사장으로 오려하는지, 직원들을 설득시키면 받아들이겠다고 아침 집회때 구씨를 기다려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왜 구씨가 YTN의 사장이 될 수 없는지를 설명하고 구씨의 대답을 들어봤지만 구씨는 지극히 원론적인 대답만 외우듯이 이야기하고 현 상태에 대한 직원들이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가 없었다. 자신도 합당한 논리를 갖지 못한 구씨는 우리가 물러가라 구호를 외치기도 전에 물러났다. 입심투쟁을 통해 우리는 구씨가 낙하산 인사일 뿐만 아니라 그 자질과 역량이 언론사 사장이 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우리는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로 투쟁을 펼쳐 나가고 있다. 33명이 징계를 당했을 때도 파업을 선택하지 않고 새로운 투쟁을 시작했고 구씨가 월급장난을 쳤을 때도 어느 누구도 노조에게 탓을 하지 않았다.  언론사는 뉴스라는 상품을 팔고 수익을 올리는 업체다. 최근의 미 대선은 가장 가치 있는 뉴스상품이었다. 그런데 사측에서는 기사 승인권을 빌미로 미대선 특보 방송을 취소하고 결정한다. 이에 노조와 기자협회 지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결국은 미대선 특보를 방송할 수 있었다.  방송을 하겠다는 노조, 방송을 하지 않겠다는 사측, 어느 쪽이 더 상식적인가? 뉴스는 방송사 직원들의 것이 아니다. 국민의 것이다. 우리가 사실을 잘못 전달하거나 거짓을 사실인양 보도하면 국민을 희롱하는 것이다. 뉴스는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간자적 입장에서 사실을 전달하고 방법을 제시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런 역할을 해내지 못하면 그 뉴스는 뉴스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린 죽은 뉴스가 된다.  과연 낙하산 인사가 사장으로 있는 뉴스를 시청자들이 사실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MB정권이 정말 잘한 정책이 있어 그것을 뉴스로 제작 방송을 했을 때 시청자들이 그것을 믿을 수 있을까? 시청자의 신뢰를 잃은 뉴스는 뉴스가 아니다.  YTN은 얼마 전 개국 5천일을 맞았다. YTN의 이름조차 생소하던 13년 전부터 5천일의 시간동안 뉴스를 만들고 방송하면서 이 자리까지 왔다. 그런데 한 순간에 이 자리를 뺏으려 한다면 누가 쉽게 넘기겠는가? 우리는 지치지도 쓰러지지도 않고 공정방송을 할 수 있는 날까지 싸울 것이다. 이것이 상식이다. 이동규 / YTN 보도국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9
  • 암벽등반 촬영교육을 다녀와서```
    제목 없음 새로운 앵글을 위해 등반 길에 들어서다 지금까지 등산을 하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른 터라, 가벼운 마음으로 등산학교에 참가하였다. 게다가 등반 장소인 설악산을 그 동안 5~6번 정도 가 본적이 있어 그 곳은 내게 친근했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목적지를 향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설마 초보자인 내가 저 멀리 보이는 가파른 암벽을 오르진 않겠지’라는 섣부른, 몹쓸 판단을 하면서. . . 설악동 입구에 도착한 우리는 3박 4일 동안 교육받을 등반 교구와 산에서 먹을 행동식을 챙겨 숙소인 비선대 산장으로 출발하였다. 30 여 분을 걸어 숙소에 도착하였고, 황급히 점심을 해치운 뒤 바로 교육장으로 향하였다. 첫 교육은 20 여 미터 정도 높이의 암벽 밑에서 이루어졌고, 등반하기 전에 기본적인 로프 매듭법에 대해 배웠다. 실제 암벽 등반은 손과 발만을 이용하지만,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안전을 지켜줄 자기 확보 줄을 허리에 매고 진행한다. 그래서 이러한 자기 확보 줄과 로프와 로프를 연결하는 법을 반드시 숙지해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로프 매듭법에 대해 배워 나갔다. 테이프 매듭부터 여러 종류의 8자 매듭까지, 종류별로 매듭을 짓다 보면 매듭 이름도 헛갈리고 뇌 혈관이 꼬이는 듯한 아노미 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대략 매듭법에 대해 배운 뒤 바로 자기 확보 줄을 허리에 매고 20 여 미터의 절벽을 올라갔는데, 홀드(바위 표면의 패인 부분이나 틈)도 많고 커서 그런지 첫 암벽등반은 어렵지 않게 올라갈 수 있었다. 사실 암벽화를 준비해 와서 수월했고, 암벽화의 고마움을 절실히 느꼈다. 암벽에서의 추락, 커져만 갔던 고소 공포증 등산학교 첫 날은 솔직히 할 만했다. 둘째 날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이 날은 실제 릿지(소규모 급준한 바위능선) 등반에 대비해 자기 확보줄 연결과 다음 등반자를 위해 로프 사리는 방법을 배웠다. 반복해서 연습을 해보았지만, 로프를 연결하는 순서가 뒤바뀌기 일쑤였고 카라비너(연결 쇠고리)를 조작하는 것도 서툴렀다. 어렴풋이 등반 방법을 익힐 때쯤 바로 릿지 등반을 시작하였다. 우리는 초장부터 끝이 보이지 않는 가파른 암벽에 몸을 맡겨야 했다. 나는 강사들이 우리를 과대평가해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것을 시키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두, 세 피치(암벽과 암벽 간)를 오르고 다음 피치를 오를 때쯤 나는 순간 움찔했다. 50cm정도 되는 거리를 건너서 암벽에 매달려야 하는데, 순간 두려웠다. 아니나 다를까 발은 지면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힘껏 점프를 한 순간 추락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 자기 확보줄에 의지해 대롱대롱 매달렸지만, 이때부터 공포에 사로 잡혔다. 자꾸만 절벽 아래만 눈에 보이고 오금이 저렸으며, 바위 위에 일어서기 조차 힘들었다. 내가 왜 이 암벽에 매달려서 이 생고생을 해야 하나 한탄을 하기도 하였다. 가까스로 두, 세 피치를 더 올라가 결국 하강을 했지만 그때 느꼈던 공포로부터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워서도 머리가 빙빙 도는 듯한 어지러움 증세에 시달려야 했고, 온 몸은 까지고 긁히어 만신창이가 되었다. 공포를 떨쳐 버리고 내 한계의 끝에 오르다 그 전 날 고전한 것을 만회 해보고자 이 날은 출발할 때부터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껏 살면서 이렇게 스스로 나약하게 느껴진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더욱 약이 올랐다. 지금 오르는 등반 코스는 분명 올라 갈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코스라는 것을 상기하면서 한 발씩 올라갔다. 특히 선등자가 어디를 잡고, 밟고 올라갔는지를 정확히 보면서 머리 속으로 시뮬레이션 등반을 계속해 나갔다. 요령이 생겨서 그런지 어제보다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암벽을 오르다 순간적으로 손으로 잡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부터 당황하기 시작했다. 또 다시 앞이 캄캄해졌다. 전날 밤 잠들기 전에 잠깐 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완등할 거라고 다짐을 했기에, 조금 힘들면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오르고 또 올랐다. 특히 한 피치, 한 피치를 오를 때마다 조원들은 나를 응원해 주었고, 서로 응원을 하며 힘을 북돋았다. 결국 긴 릿지 암벽 등반 동안 우리 조는 한 명의 낙오자 없이 정상에 올랐고, 긴 고생 끝에 느끼는 성취감은 너무나 달콤했다. 우리는 정상에서 단체 사진도 찍고 행동식으로 허기도 달래며 여유를 만끽했다. 특히 정상에서 깊숙이 들이 마시는 담배 한 모금은 온 몸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평소 가파른 절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을 보면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는데, 완등의 기쁨이 그들을 암벽등반에 미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민환 / SBS 영상취재팀 기자
    2009-01-09
  • <대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카메라기자
    <대 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카메라기자  지난 3일,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카메라기자’를 주제로 대담이 있었다. 성균관의대 삼성서울병원 정신과 전홍진 교수의 강의와 진행으로 이루어진 이번 대담에는 MBC 정연철 기자, SBS 정상보 기자, YTN 성도현 기자가 참여했다.  자유 토론에 앞서 진행된 강의에서 전 교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다음은 전 교수의 강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영어로는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이며, 통상 PTSD라고 한다. 이 질환은 불안장애의 일종으로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외상)을 경험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반응이다. PTSD가 오면 해당 스트레스(외상)가 없어져도 그 당시를 회상시키는 활동이나 장소를 피하게 되고 신경이 날카로워지며 잠을 잘 자지 못하게 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은 크게 침습적 증상, 회피와 무감각으로 나눠볼 수 있다. 침습적 증상은 외상적 사건들이 생활에 침투해 재 경험하게 되는 것으로 보통 투사 검사를 해보면 증상의 유무를 가늠할 수 있다. 데칼코마니 작품처럼 모호한 그림을 보면서 자신이 겪었던 외상과 연관을 시키는 것이다. 정상인들은 박쥐나 곤충처럼 보인다고 하는 그림을 ‘피’와 연결을 시킨다든지 죽어있는 사람과 연결을 시킨다든지 하는 것이 그 예이다.  회피와 무감각에서 ‘회피’는 말 그대로 불쾌한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상에 관련된 생각이나 외상을 회상시키는 자극을 회피하는 것이고, ‘무감각’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감소되고 매사에 무감각해지는 것을 말한다. PTSD 환자가 계속 ‘회피’를 할 경우, 증상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으며, 그렇게 증상이 심각해지면 얼굴에 표정이 없어지고 ‘무감각’도 더욱 심해질 수 있다.  하나 눈여겨 봐야할 증상이 ‘지나친 각성’이다. 외상을 겪은 사람들은 항상 위험에 처할 것을 두려워해 모든 것을 경계할 수 있다. 이를 견디지 못해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장 큰 부작용이 ‘불면증’이다. ‘불면증’이 오면 정신뿐 아니라 육체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반드시 치료가 필요하다. 이 외에도 공황(극심한 공포 반응), 불안 장애, 우울한 감정 및 우울증을 경험할 수 있다. 이 때 괴로운 기분을 둔화시키기 위해 알코올이나 다른 약물(담배, 마약)을 남용하게 되는데 이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PTSD의 원인은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극심한 스트레스(외상)이다. 그러나 그런 극심한 그트레스(외상)을 겪는다고 해서 누구에게나 PTSD가 발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스레스(외상)을 일으킨 사건이 그 사람에게 주는 주관적인 의미이다. PTSD는 극심한 스트레스(외상)을 겪은 사람 중 40~90%에게 나타날 수 있으나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10%정도이다. 이 10%에는 죄책감이 있는 경우, 우울증이나 불면, 불안 장애가 있었던 경우가 포함될 수 있다.  직업의 특성상 PTSD에 노출된 가능성이 많다고 하더라도, 구성원들이 이에 대해 자각하고 스스로 관리하는 능력을 키운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음의 세 가지를 지키도록 노력해보자. 먼저 스트레스(외상)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위로한다. 단, 이야기를 들어주되 절대 충고를 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한다. 쉽지 않겠지만 주위에서 함께 노력해 준다면 생각의 굴레에서 비교적 빨리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사회적 지지 체계를 넓혀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친구나 가족이 용기를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 이상 도움이 되는 것은 없다. 특히 조절 능력을 회복하기 위해 스스로의 인내가 필요한 시기에는 누구보다 가족의 도움이 필요하다. 이런 시점에 가족이 외면을 한다면 인내를 갖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열심히 일만 하다 보니 가족을 챙기지 못해 가족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본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조차 가족의 관심은커녕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다. 비단 이런 문제 때문에 아니더라도 가족은 나의 가장 든든한 백이다. 사회생활뿐 아니라 가족생활에도 신경을 쓰자. 가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 PTSD 치료 방법으로는 약물 치료, 바이오피드백, 이완요법, 집단 치료, 인지 행동 치료 등이 있다. 다른 치료와 함께 약물 치료를 하면 더욱 도움이 되는데, 약물 치료가 잘 되지 않는 이유는 복용함과 동시에 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술이나 다른 약물을 중단하고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참아야 하는데 그 시기를 넘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나은 편이다. PTSD라는 것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알더라도 치료를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PTSD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직업군의 경우, 외상에 노출될 때마다 혹은 정기적으로 PTSD에 대한 스크리닝을 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할 것이다. 또 그런 부분에 대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이렇게 전홍진 교수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대한 강의가 끝이 났다. 그리고 대담 참석자들과 전 교수의 자유로운 질문과 답변의 시간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자신이 직접 겪은 경험과 주위의 경험 등을 들어 궁금한 점을 기탄없이 털어놓았다. 그럼,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연철 : 나는 물속에서 패닉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예전에 수중촬영교육을 갔을 때 일인데 시야가 안보이면서 숨이 막히는 듯 그것을 이겨내 보려고 더 깊이 들어갔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 온 몸이 마비가 되고 목이 조여 오면서 정말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경험을 한 후, 물에 대한 공포심이 생겼다. 사실 지금도 그것을 완벽히 떨쳐버리지는 못하고 있다. 수중 교육을 다녀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는 샤워를 하면서도 목이 조임을 느끼기까지 했다. 지금도 문득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전처럼 그렇지는 않다. 다만, 목을 감싸면 그 때가 기억나 아무리 추워도 목을 감싸는 티셔츠나 머플러는 하지 않는다. 아직 완벽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 같다. 전홍진 :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 기자에게 PTSD 증상이 나타났던 것이라고 볼 수는 있겠다. 그러나 지금은 벗어난 상태라고 할 수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정 기자의 경우, 생명의 위협을 느낄 정도의 사건이었으나 그것이 무마되는 속도가 빠를 수 있었던 것은 그 대상이 ‘물’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물’이 무섭기는 했겠지만, 그렇다고 마시지 않을 수 없고, 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항상 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PTSD는 피하면 피할수록 심해지는 병이다. 반면 자꾸 접하면 접할수록 PTSD에서 벗어나는 속도가 빨라질 수 있다. 정 기자는 피할 수 없는 물이었기에 그 공포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런 정도의 공포를 겪으면 누구나 그 대상에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정 기자는 매우 양호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여기서 이렇게 자세히 이야기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PTSD 환자는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누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되는데 그것 자체가 어렵다. 그러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상보 : 나는 정연철 선배처럼 생명의 위협을 느낄만한 사건을 경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취재를 다녀온 직후 술을 많이 마셨던 것 같다. 몇 해 전 ‘남아시아 쓰나미 참사’를 취재하기 위해 태국 푸켓에 다녀온 이후 한 동안 그랬다. 허무한 기분이 들면서 태국으로는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문득 문득 생각이 나는 것이 내 발밑에서 올라오던 악취이다. 정신없이 취재를 다니다가 발밑에서 악취가 올라오면 ‘이 아래 시체가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생활에 문제가 생겼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당시를 생각나게 하는 것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다.  내가 입사도 하기 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취재를 갔다가 그 충격과 괴로움에서 해어나지 못해 회사를 그만둔 선배도 있다고 한다. 그런 경우를 보면 카메라기자로서 당연히 해야  는 일이 사람에 따라서는 부담을 넘어 고통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전홍진 : 그렇다.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어떤 상황에 처했다고 모든 사람이 PTSD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며, 그 부분에 특히 취약한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에 취약한 사람이라고 해서 정상보 기자가 이야기한 케이스처럼 직업을 포기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스크리닝이다. 스크리닝을 통해 문제 여부를 파악하고 문제가 있을 경우, 조기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며, 쉬운 방법인 것이다.  정상보 기자의 경우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면, 전혀 걱정할 것 없다. 정상보 기자의 경우 PTSD 증후가 있었다고도 보기 어려우며 그런 상황을 겪었다면 누구든 그 정도의 괴로움은 느꼈으리라고 생각한다. 단,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술’이다. 그런 상황을 겪고 난 후, 술로 푸는 것은 좋지 않다. 정상보 기자의 경우, 술로 풀었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술이 어떤 기능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 그것이 빨리 잊을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스트레스(외상)을 겪었을 때, 술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른 쪽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성도현 : 나는 참 많은 것을 겪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현장에도 갔었고, 파키스탄 내전에도 쓰나미 참사 현장에도 갔었다. 이라크 전쟁을 제외하고 기자들이 갈 수 있는 웬만한 곳은 다 갔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취약한 사람’과는 정 반대되는 사람인 것 같다. 현장에 있을 때는 허무하다는 등의 생각을 했지만, 다녀와서 동료들과 술 한 잔 마시고 또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잊어버린다.  그런데 이 자리에 와서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니 본인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것을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을 하다보면 남달리 ‘여린’ 사람들이 있다. 팀 내에서도 그런 사람들은 되도록 험한 현장에 보내지 않으려고 한다. 하지만 인력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본인이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전홍진 : 그렇다. 이 PTSD에 대한 이해와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PTSD에 대한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TSD라는 병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경우, 스스로 이상 징후가 느껴질 때 그것을 이겨내려 노력하고, 전문가를 찾아가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장 문제는 모르기 때문에 치료받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혼자 앓다가 걷잡을 수 없는 정도로 나빠지는 케이스이다. 그러므로 카메라기자 역시 직업의 특성상 PTSD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육이나 스크리닝 등의 시스템을 만들어 관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요즘은 건강검진에 대한 국민적 의식이 높아져 예전에 비해 많은 수의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있다. 그런데 그 건강검진 내역에 ‘정신과’ 분야가 있는 병원이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PTSD 증상으로 불면증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도 다른 질환이 없다면 ‘건강 검진’은 정상으로 나오는 것이다.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다. 현대 사회의 특성 때문에 ‘마음의 병’은 ‘몸의 병’만큼이나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 그러므로 이에 대해 인식하고 스스로 문제가 있으면 드러낼 수 있는 시스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본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1-05
  • <릴레이 인터뷰> MBC 박동혁 기자
    <이어지는 인터뷰 - MBC 박동혁 기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1. SBS 홍종수 기자가 ‘말한 모든 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보기 드문 친구’라고 소개하며 이번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추천했다. 홍 기자의 ‘추천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실 관계 여부를 떠나서(?) 일단 기분은 좋았다. 누군가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이 기쁜 일 아닌가?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홍종수 기자가 나에 대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일이 없는 것 같은데 말이다. 실제로 그렇지는 못하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다. 홍 기자의 눈에 내 노력이 보였나 보다. 말은 적게 실천은 많이 하며 살고 싶다. 2. 박동혁 기자가 생각하는 ‘홍종수 기자’는?  홍 기자는 매우 ‘조화로운 사람’이다. 봐서 알겠지만 매우 긍정적이고 활발한 성격을 가졌다. 밝기 때문에 놓칠 수 있는 부분을 홍기자는 놓치지 않는다. 사람에게 세심한 관심과 배려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홍 기자가 ‘조화롭다’고 생각한다. 한쪽에만 치우치지 않고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멋진 친구다. 그 밝음을 닮고 싶다. 3. 얼마 전 결혼을 했다고 들었다. 요즘 근황은 어떠한가?  결혼식 날부터 지금까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어떻게 결혼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식이 끝나 있었고, 또 다시 정신을 차려보니 지금 이렇게 않아 있다. 안사람은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오늘은 야근을 끝냈으니 안사람 당부대로 집에 들어가 밀린 집안일(?)을 해야겠다. 결혼은 생활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지금 내 연차가 가장 바쁜 시기인 것 같다. 경찰팀에 있다 보니 더욱 그렇다. 이런 와중에도 결혼 준비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배려해주신 여러 선배님들 덕분이다. 이 자리를 비러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4. 카메라기자로 일한지는 얼마나 됐나?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햇수로는 6년, 만 5년 됐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1년 차였을 때 갔던 살인 사건 현장이다. 그 때도 어제처럼 야근을 했었다. 그날 밤 경기도 양주와 인천에서 두 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공교롭게도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많았다. 친 아버지가 자식을 살해했다는 점, 아이가 둘이라는 점, 두 아이 중 한 아이는 살아남았다는 점, 살아남은 아이는 둘 다 딸이라는 점 등… 끔찍했고, 살아남은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다. 그 아이들이 종종 생각난다. 그 무게를 어떻게 이고 살아가고 있을 런지 걱정되고 궁금하다.  카메라기자를 하면서 많은 것을 봤다.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볼 수 없는, 아니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말이다. 뷰 파인더를 통해서 관찰을 하다보면 두개의 기억을 갖게 된다. 일반적인 상황의 기억과 뷰파인더 안의 기억. 뷰파인더 안의 기억은 보통의 기억보다 구체적이고 강렬하다. 원래는 잘 꿈을 꾸지 않는데 입사해서 3년 정도 많은 꿈을 꿨다. 불타고, 죽고, 다치고, 손가락을 자르고, 할복하고... 그래도 지금은 그런 꿈이 많이 줄어 든 것을 보면 다소 적응이 되었나 보다. 5. 지난 5년을 돌아봤을 때 가장 힘들었던 일이 있었다면.  지난해 내 동기인 김경철 기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떠난 것이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그즈음에야 서로를 이해하고 마음을 주는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다. 경철이는 나와 많이 달랐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서로를 이해하고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의지하게 되었을 무렵 경철이가 훌쩍 떠나버렸다. 말과 글로 경철이에 대한 느낌을 규정지어 버리고 싶지 않다. 어디있는 가는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곳에서 따뜻하고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6. 앞으로 계획, 또는 바람이 있으시다면?  항상 계획도 많고 바람도 많다. 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기자생활 하면서 '앎‘에 대한 욕심이 많아졌다. 알지 못하면 볼 수 없다. 볼 수 없으면 기록할 수 없다. 눈을 뜨고 망막에 맺히는 상은 보이는 것이지 보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정조시대 문인 유한준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 보이는 것은 예전 같지 않으리라”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따를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따를 수 없다. 이를 좀 바꿔서 이야기 하면, 아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좋아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 각각 다르다고도 말 할 수 있다. 좀 더 알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싶다. 그리고 느리게 걷고 싶다. 7. 협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지난 호에 홍종수 기자가 했던 말에 공감한다. 보도 윤리나 준칙이 있다지만 별반 실효성이 없는 것 같다. 있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다. 우선은 정기적인 교육을 통해 카메라기자가 지켜야할 기본적인 소양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구체적인 수준의 보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계속 보완하고, 교육을 통해 회원들에게 일깨우다 보면 전체적인 취재 문화가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번 홍종수 기자는 상가를 예로 들었지만, 환자 인터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자들은 화상을 입어서 고통 받고, 기도 손상을 입어 말도 못하는 사람에게 달려들어 인터뷰를 강요한다. 이것은 폭력이다. 항상 급변하는 현장에서 전에 겪지 못한 다양한 상황들을 겪다보니 무언가에 대한 판단을 그때그때 올바르게 하기가 힘이 든다. 현장을 알지 못하는 데스크에선 이런 저런 취재지시들이 내려올 것이고 논리적으로 차분히 지시에 대해 변을 늘어놓기에는 많은 것들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버린다. 그래서 어찌되었건 일단 해놓고 보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협회에서는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8.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부분이 가장 고민되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본 결과 YTN 이상은 기자를 추천하기로 결론을 냈다. 이상은 기자는 나이에 비해 굉장히 순수한 사람이다. 그 순수함이 함께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술 한 잔 하고 싶을 때 그가 생각난다. 술을 좋아해서 술에 대한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지금 ‘공정 방송 수호’를 위해 열심히 투쟁하고 있을 텐데, 이 자리를 비러 힘내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정말 괜찮은 남자인데, 세상 여자들은 뭐하는지 모르겠다. 얼른 좋은 사람만나 결혼했으면 좋겠다.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