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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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경영
  • WBC 그 '위대한 도전'의 현장을 가다
    제목 없음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  제1회 WBC 출전 선수들보다 투타에서 한 수 아래로만 여겨졌던 제2회 WBC 선수들이 전대회의 4강 신화를 넘어 준우승이란 엄청난 결과를 가지고 금의환향했다. 나는 운 좋게도 그들이 준우승 신화를 창조하는 현장에서 카메라 렌즈를 통해 그 기쁨을 함께 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3월 10일 한국 방송풀기자단-KBS 이정화, MBC 민병호, SBS 김영성 기자 그리고 홍성락 편집요원-은 오후 6시30분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맡겼다. 도쿄에서 벌어진 WBC예선전을 우리 야구팀이 조 1위로 통과한 덕분에 우리 방송3사 풀팀은 애리조나주 피닉스로 향하게 되었다.    미국 현지 국내선을 포함해서 17시간만에 도착한 애리조나주 피닉스는 현지시간으로 3월 10일 오후 8시경이었지만 우리 취재팀은 피곤함도 잠시 잊고 현지 한인 식당에서 식사중인 김인식 감독과 코치진 취재를 하기 위해서 공항에서 한인 식당까지 총알택시를 탄 양으로 급하게 이동하였고 간신히 감독과 인터뷰를 마칠 수 있었다. 정신없이 인터뷰 화면을 인터넷으로 보내고 기자 오디오 송출까지 마친 시각은 현지 시간으로 새벽 6시쯤이었고, 취재팀은 이미 장시간의 비행과 업무로 초죽음 상태였지만 이것은 단지 서막에 지나지 않았다.    11일과 12일엔 미 프로구단인 샌디에고 파드리스와 LA 다저스와 연습 경기 취재가 있었다. 우리 대표팀은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된 상태라서 두 연습  경기에서 모두 졌지만 표정들은 밝았다. 애리조나 피닉스는 건조한 사막   날씨 때문에 많은 미국 프로 구단들의 스프링캠프지로서 유명한 곳이라서 준 메이저급 야구장이 많았다. 야구장내에서의 ENG 취재도 별 제재 없이 할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나와서 관중과 취재진들의 편의를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곳에서의 취재물은 호텔에서 인터넷 송출로 했는데 약 250 - 300Kb 정도로 1분정도의 영상물을 약 2시간 정도에 보낼 수 있었다.    현지 시간으로 13일 대표팀을 따라 2라운드 시합이 벌어지는 샌디에고로 1시간 20여 분을 비행기를 타고 이동했다. 도착하자마자 대표팀이 숙소에 들어오는 모습과 감독과 선수들의 인터뷰 취재를 다급하게 마친 후  호텔에서 인터넷 송출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다음 날은 샌디에고 펫코파크 구장에서의 우리 대표팀 공식연습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연습 현장에는 우리 한국 기자들보다 외신과 일본 기자들이 훨씬 많아서 한국팀이 아닌 일본대표팀을 취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한국 기자단은 신문과 방송을 다 합해도 약 30여명 정도였고 그 중 방송사는 지상파 3사 풀팀 5명과 YTN 3명등 8명에 불과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고 해도 너무 초라한 규모의 방송 취재단이란 생각이 대회 내내 지워지지 않았다. 대회가 열리고 있는 구장 밖에 각 사별로 중계차를 대고 실시간 송출하는 일본 방송취재단을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론 풀팀 구성으로 각 방송사의 특성을 저버리고 단일 영상으로 뉴스를 내보내야 하는 오늘날 한국의 처지가 안타깝게 느껴졌다.    8강전 첫 경기인 멕시코전을 홈런이 좀처럼 나오기 힘든 구장인 펫코파크에서 이범호 등이 3개 홈런을 앞세워 8대 2로 가볍게 승리하던 날 야구장을 찾은 수천명의 현지 교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만발했다. 세 번째 한일전의 열기는 관중석에서부터 전해졌다. 1만 여명의 한국관중과 그보다 좀 더 많은 일본 관중간의 응원 열기는 경기 시작 전부터 야구장을 압도했다. 2차전의 승리 주역인 봉중근의 완벽투와 이용규의 발 빠른 야구덕분에 4 대 1의 승리… 2회 연속 4강을 확정 짓는 순간 감독과 선수들 그리고 응원하던 교민들의 환호하는 모습은 잊을 수 없다. 승리에 환호하는 응원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우린 공식 기자회견장에서 자랑스러운 우리 선수들을 취재하였다.    준결승전 상대팀은 중남미의 강호이자 거의 모든 선수들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동 중인 베네수엘라였다. 시합 하루 전 김인식 감독은 공식 연습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대한 도전은 이제 시작되었다” 란 말로써 현재의 심정과 시합에 임하는 자세를 집약적으로 표현해주었다고 본다. 준결승전에서 LA 다저스 구장을 마치 잠실야구장인양 가득 메운 현지 교민들의 일방적인 응원에 힘입어 무려 10대 2로 베네수엘라의 막강 전력을 침몰시켰다. 이 경기에선 그동안 부진했던 추신수의 공수 활약이 돋보였다.    현지 시간 23일 월요일 오후 6시30분에 이번 대회 5번째 한일전이자 우승팀을 가리는 대망의 결승전이 벌어졌다. 5만 6천여석의 다저스구장이 거의 만원을 이루었고 그 관중의 70%정도는 한국 교민들이었다. 한일 취재진들의 눈에 안 보이는  취재 전쟁도 시작되었다. 수많은 일본 방송 취재단에 맞서서 우리 풀팀도 비록 수적으론 크게 열세지만 가열 차게 역사의 현장을 취재했다. 아쉽게 졌지만 결승전다운 명승부를 치렀다.  9회 말 극적인 3대3 동점까지 일궜지만 연장 10회 이치로의 안타로 2실점 후 5대 3으로 졌다. 경제 불황으로 침울했던 국민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었던 20여 일간의 대장정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우리 취재진은 물론, 현지에서 열성적으로 응원하던 교민들과 국내에서 응원하던 국민들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야구 인프라 등 모든 조건에서 열악한 상태에서 만들어낸 값진 결과이기 때문에 한국 야구의 위대함을 전 세계에 떨칠 수 있었고 또한 당연히 이번 제2회 WBC 대회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우리 야구 대표팀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 현장에서 몸과 마음은 힘들었지만 그들과 함께 했기에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이중우 / KBS 영상취재국 차장
    2009-04-14
  • MBC 조직 개편, 대대적 인사 단행
    MBC 조직 개편, 대대적 인사 단행 지난달 6일, MBC가 조직을 축소 개편했다. MBC는 1실 8본부, 19국 69부, 16CP로 구성된 조직을 1실 6본부, 12국 90부로 줄였다. 특임CP, 전문프로듀서 등 유사 보직 53개를 폐지조직 구조를 본부-국-부로 단순화했으며, 미래 수익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드라마, 예능국 등에 기획개발부를 신설했다. MBC 측은 이번 개편에 대해 “조직 슬림화 및 조직 구조 통일성 강화를 통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목적으로 개편을 단행했다”며 “매출 관리 등 핵심역량 중심의 개편으로 조직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9일에는 국장, 부국장을 비롯한 대대적인 인사가 있었다. 인사 내용(회원)은 다음과 같다. ▲ 영상 담당 부국장 양윤모 ▲ 영상취재부장 임병길 ▲ 시사영상부장 김상진 [국장 · 부국장 인사] ▲라디오본부장 서경주 ▲편성제작국장 이주갑 ▲보도국장 전영배 ▲드라마국장 조중현 ▲디지털기술국장 이우철 ▲제작기술국장 손목헌 ▲경영지원국장 배수한 ▲편성본부 아나운서실장(담당 부국장) 김창옥 ▲보도본부 논설위원실장(담당 부국장) 이우호 ▲TV제작본부 영상미술센터장(담당 부국장) 강호진 ▲경영본부 사업센터장(담당 부국장) 윤병언 ▲경영본부 신사옥추진센터장(담당 부국장) 홍병의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4-14
  • <릴레이 인터뷰> JIBS 오일령 기자
      “인간관계 유지의 비결,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 1. KBS 김휴동 기자가 오일령 기자를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오 기자의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김 기자의 추천사에 대한 소감 한 말씀. 김휴동 선배가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로 보잘 것 없는 나를 추천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한편으로는 오랜만에 지면으로 선배소식을 보게 되어 매우 반가웠다. 마치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어 의뢰인과 만나 그동안 못 다한 얘기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암튼 이렇게나마 안부를 전할 수 있어 매우 기쁘고, 나에 대해 꽃보다 아름답다는 극찬을 해주신 김휴동 선배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2. 오일령 기자가 생각하는 ‘김휴동 기자’는? 그리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했지만 취재현장이든 사석이든 선배는 시종일관 점잖은 신사였다. 화내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항상 후배들의 얘기를 먼저 들어주시고 나중에 그에 대해 논리적으로 말씀을 해주셨던 보기 드문 선배였다. 또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선배이다. 전에 운동 하시다 다리를 다쳐 한 동안 고생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3. 카메라기자로 일한지는 얼마나 됐나? 그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JIBS는 2002년 5월 31일, 월드컵 개막과 함께 지상파 방송 새내기로 힘차게 출발했다. 내가 1기로 입사했으니 이 일을 시작한 지도 햇수로 8년이다. 기억에 남는 일을 꼽으라면 그해 7개월 간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다. 우선 월드컵에서 우리나라가 승승장구하던 6월, 제주에서는 도지사를 선출하는 재?보궐선거가 있었고, 장마가 끝나자마자 8월 말 ‘루사’라는 초대형 태풍이 제주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강타하면서 사상 최대의 피해를 입었다. 복구 작업이 한창이던 11월에는 체육계의 큰 축제인 83회 전국체육대회가 제주에서 개최되었고, 그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대통령 선거라는 엄청난 행사를 치러야 했다. JIBS 개국 원년, 이러한 굵직한 현장에 적은 인원과 취약한 장비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수습 때의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 당시 타사의 선배들이 “10년 동안 겪어도 다 겪기 어려운 일들을 너희들은 7개월 만에 겪어냈다”며 해주셨던 격려의 말씀들이 떠오른다. 비록 지치고 힘들었지만, 이것이 진짜 프로가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위안했던 그 시기가 가장 행복했던 것 같다. 4. ‘인간관계’를 매우 잘 하시는 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다면? 내가 특별히 사람관계를 잘 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내 관계 유지의 비결이라면 내 위치에서 진실 되게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여러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그 관계 속에서 경쟁할 때는 치열하게 경쟁하고, 양보할 때는 흔쾌히 양보하고, 윗사람에게는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아랫사람에게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하다 보면 원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 스스로도 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한다. 여기에 함께 하는 소주 한 잔은 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윤활유가 되어 준다. 여러분도 어려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소주 한 잔하며 풀어보길 바란다. 아마 소주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5. 앞으로의 목표나 계획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미디어법과 관련해 방송광고공사 해체와 민영미디어랩 도입으로 지역방송은 비상경영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 여파는 부분을 불문에 영향을 미치고 있고 보도부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볼 때 현재 상태가 유지되기는 힘들다고 본다. 우리 회사 또한 노조를 중심으로 다각적인 대응 방법과 대안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악화되어 가는 방송환경과 끝을 모르는 경기 침체 속에서도 ‘내실을 다지며 사랑하는 나의 가족들이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 이것이 내 계획이자 소망이다. 6. 협회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얼마 전, 협회장 주재로 제주 지역 회원사 간담회 자리가 있었다. 협회에서는 앞으로 수도권과 지역, 지역과 지역 간에 원활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협회 홈페이지를 개편한다고 말했다. 모두 좋은 생각이라고 공감했으며, 연례적인 소통이 아닌 상시적인 소통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얼마 전, 양용철 방송카메라기자협회장 주재로 제주 지역 회원사간 간담회 자리가 있었다. 앞으로 지역 회원사를 협회보를 통해 소개하고 홈페이지를 대폭 개선한다고 밝혔는데 모두들 공감했다. 새로운 회장단 구성을 축하드리고 지금까지 잘 하고 계시지만 앞으로도 HD시대에 맞는 교육프로그램을 발굴하여 모든 회원들이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부탁드린다. 그리고 각 회원사 회원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는 설문조사를 한번 계획하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8. 다음 이어지는 인터뷰 주자를 추천해 주세요! 이번 인터뷰 주자로 선정되면서 모 선배께서 지금까지는 수도권 기자들 위주로 인터뷰가 진행되었으니 다음 주자는 지역사 기자를 추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여러모로 생각을 해본 결과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10년 전 아카데미에서 ENG를 처음 공부하면서 알게 된 울산MBC의 최창원 기자이다. 최 기자는 이론뿐만 아니라 실기에도 열심히 였으며, 나뿐 아니라 동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 정도 많은 사람이라 같이 있으면 참 편안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연락하지만 2년 전 본 후 안부를 전하지 못했다. “창원아, 잘 지내지?”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4-14
  • <인터뷰> 윤재구의 싱싱 다이어트
    <건강한 몸, 멋진 몸 만들기> 윤재구의 싱싱 다이어트 “윤재구 님! 건강검진 결과 나왔습니다. 비만 1단계에 고지혈증, 지방간, 담낭에 콜레스테롤이 많이 꼈고요…” 회사에서 일 년에 한 번씩 시행하는 건강검진 결과를 받아들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옆에서는 집사람이 살 빼라고 독촉을 하고 아이들은 뚱뚱이 아빠라고 연신 놀려댄다. ‘살을 빼야겠다. 그래! 한 번 해보자. 담배도 끊었는데 이깟 살 못 빼겠는가?’ 그래서 시작한 나만의 다이어트가 회사에서 인기몰이를 했고,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다. 입사 전에 비해 많이 통통해진 모습, 지금의 모습이 보기 싫지는 않지만 늘어가는 뱃살에 대해서는 누구나 빼야 한다는 경각심을 느끼고 잇을 것이다. ‘살을 어떻게 빼야하나?’ 대부분의 정보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적게 먹고 하루에 30분 이상 땀나게 운동 하세요” 등 너무나 식상한 멘트, 누구나 알고 있는 멘트뿐이다. 그래서 나만의 다이어트 방법이 필요했다. 그렇게 탄생 된 것이 ‘윤재구의 싱싱 다이어트’다. 그럼 지금부터 내 다이어트의 비법을 공개해 볼까? 사실 인터넷에 실린 이야기들과 원론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나에게 맞는 다이어트 원칙을 세웠을 뿐이다. 내 다이어트의 첫 번째 원칙은 “배고프지 말기”이다. 다이어트는 배가 고프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배고픔을 느끼게 되면 식사 때 폭식을 할 가능성이 99.9%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먹거리를 갖고 다니면서 수시로 먹었다. 주로 먹은 것은 사과와 고구마! 대신 다른 간식은 일체 먹지 않았다. 그렇게 조금씩 자주 먹다보면 위가 준다. 위가 줄어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주정도 라고 한다. 그 시간동안 인내가 필요하다. 뭔가 부족한 것 같아도 꾹 참아라. 그러다 보면 조금만 먹어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역시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하루에 2시간가량의 운동을 해야 한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는 것은 핑계. 짬나는 시간을 이용해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운동하자. 나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켜 약 3개월 만에 13kg 정도를 감량했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원칙을 꾸준히 지킨다면 누구나 건강한 몸, 멋진 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나 역시 아직 다이어트 중이다. 그리고 체중은 감량했지만 ‘건강한 몸, 멋진 몸’을 만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하여 다음엔 멋진 복근에 도전하려한다. 메뉴는 주로 청국장, 순두부, 된장찌개를 먹고 밥을 먹기 전 반을 덜어내고 먹는다. 그리고 살이 찌찌않는 반찬을 먼저 먹고난 후 식사를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밥을 적게 먹을 수 있다. 저녁은 집에서 먹을때는 야채 샐러드만 먹는다. 배가 고프면 고구마를 우유와 함께 먹는다. 상대적으로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지므로 우유와 치즈를 많이 먹는다.. 술자리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으며 안주는 야채와 두부등을 먹는다. 윤재구 / KBS 영상취재국 기자
    2009-04-14
  • <줌 인> "붙잡지마세요!"
    “잡지마세요”  “잡지마세요”란 한마디와 함께 소매를 툭툭 털며 법정을 빠져나가는 국회의원이 있었다. 얼마 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항소심 유죄 선고가 난 국회의원에게 기자가 인터뷰를 시도하다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었다.  그 와중에 그 국회의원의 보좌관들은 카메라기자의 영상 취재를 막기에 급급했다. 손으로 카메라렌즈를 막고, 몸으로 밀치면서 길을 만들기에 바빴다. 취재를 하던 방송사 카메라기자들은 그런 몸싸움 도중에 카메라가 부서지고, 넘어지고 다치는 일까지 발생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인인 국회의원을 취재하다가 일어난 일이다. 위험한 현장에서나 필요하다는 취재 안전장비가 이곳에서도 필요한 것일까?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그 대표는 국민에게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알릴 의무가 있고,  국민은 그 대표에 대한 알권리가 있다. 그리고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취재, 보도를 하는 의무와 권리가 있다.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의무와 권리만을 떳떳하게 행사하면 되는데, 그렇게 취재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면서까지 피하면서 다닐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위엄이나 기품이라는 뜻의 “품위”라는 말이 있다. 국회법상 국회의원은 품위를 유지할 의무가 있다. 다시 말해서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윤리나, 도덕에 반하는 범죄행위를 행하여서는 안 되고, 인격적으로도 그에 걸 맞는 행동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딱히 카메라를 피해가는 것이 품위와는 그리 상관없을지라도, 이리저리 피해가는 모습은 취재하는 기자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보기에 씁쓸하기 따름이다. 거기에다가 더하여 보좌관들까지 취재하는 기자들을 방해하는 모습을 보면 부아가 치민다. 국민의 대표인 이상, 당당하게 잘못이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라고 떳떳하게 말하고, 잘못이 있으면 용서를 구하는 것이 더 국민들에게 더 좋은 인상을 심어주면서 품위를 지킬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사실 기자라는 직업이 집요하게 파헤치고 달라붙는 것이 일이지만, 좀 더 의연한 모습을 기대하면서 현장에 있는 기자들도 품위 있게 취재를 하기를 바라는 것은 그 국회의원에겐 무리한 요구일까? 마치 용납될 수 없는 죄를 지은 죄인마냥 피해가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  모든 국회의원들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의 ‘아우라(?)’를 풍기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인 소신을 가지고 현장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는 의원들을 대하면, 뿐만 아니라 도덕성과 성실성을 가지고 진지하게 일하는 의원들을 보면 과연 국민의 대표로서 그 인격을 존중하게 된다. 국회의원이라고 처음부터 그런 품위 있는 인격이나 국민들로부터의 존경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행한 만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국회의원이란 자리 때문에 어깨에 힘부터 주는 것은 구시대적 악습에 지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국민을 대변하는 사람으로서 국민과,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 특히 특정계층과 소수, 소외 계층을 대변하기위한 비례대표는 더 큰 성실성과 도덕성, 전문성이 요구된다. 자신이 누구를 위해서 소위 말하는 금뺏지를 달았는지 생각하여야한다.  기자가 붙잡은 소매를 더러운 것이 묻은 양 털어내는 그 국회의원에게 말하고 싶다. 거창하게 말하면 우리나라 민주정치의 발전을 위해, 국회 구성원들의 품격과 품위를 위해, 우리나라 국민개개인을 위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앞으로 나아가길 위해! “붙잡지 마세요!”
    2009-01-16
  • 제21대 신임 협회장 인삿말 "서로 사랑하는 협회를```"
    "서로 사랑하는 협회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 요즘 근황은 어떠신지  사실 요즘 잠이 안 온다. 앞으로 협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아직 구체적으로 업무에 대해 파악을 한 것은 아니나 머릿속이 여러 가지 생각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회장으로서 열심히 달리기 전,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한국방송카메라기자협회 신임 회장으로 선출된 소감  이 자리까지 온 것은 후배들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내가 이 자리에 적합한 사람인지 아닌지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고 갈등도 많이 했지만, 후배들의 지지가 있어 든든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부담이 크지만 열심히 해 보고 싶다.    3. 현재의 협회에 대한 생각  내가 차기 회장으로 나설 것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협회에 대한 아쉬움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간 협회는 양적으로 큰 성장을 이루었다. 규모뿐 아니라 사업 등 여러 부분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 그렇다보니 ‘회원들 간의 관계’에 대한 소홀함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회원들 간의 관계 개선’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현장에서 만나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한 협회의 회원이라고 할 수 있나? 회원끼리 상호존중하고 사랑하는 협회,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아니 꿈꾸는 협회이다.     5. 신임 집행부 구성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머릿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으나 결정짓지는 못했다. 아직 협회 사업에 대한 인수인계를 받지 못해 어떤 자리에 어떤 사람이 적합한지 판단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무처장만 이중우 기자로 정해 놓은 상태다. 신입 집행부의 완벽한 구성은 12월 중, 인수인계를 받은 이후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6. 회장으로 취임하신 후, 진행하시고자 하는 사업이 있으시다면  앞에서도 말했지만, 다른 계획은 없다. 앞의 여러 회장님들께서 진행해 오신 사업을 이어나가면서 회원 간의 관계 개선에 힘쓰고 싶다. 나는 그것을 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할 생각이다. 인터넷 공간만큼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유대를 쌓기에 용이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임기를 시작함과 동시에 회원들이 ‘자꾸만 들어와 보고 싶은 홈페이지 만들기’에 매진할 계획이다. 기대해도 좋다. 기대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7. 협회 회원들에게 한 말씀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 같아 그렇지만, ‘카메라기자’로서 ‘카메라기자협회’ 회원으로서 동료에게 조금씩만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카메라기자협회의 650여 명 회원이 모두를 알기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모르는 얼굴이라도 현장에서 만났을 때, 먼저 다가가 웃으며 인사하는 여러분이 되었으면 한다. 내가 그런 ‘분위기’(?)를 조성해 보도록 하겠다. 서로 사랑하자! 카메라기자협회의 힘은 여러분의 ‘사랑’과 ‘결속’에서 나온다. 8. 송년 인사 한 마디  어느새 12월이다. 쥐 띠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며칠 있으면 소 띠 해란다. 지난해 모두 눈썹을 휘날리며 열심히 살아오셨으리라 생각한다. 다가오는 2009년에도 소처럼 묵묵히 열심히 일하는 카메라기자들이 되었으면 한다. 여러분의 건승을 기원한다. (사진 : 양용철 신임회장) 안양수 기자 soo179@hanmail.net
    2009-01-16
  • 새로운 형태의 뉴스형식 "2580minutes"
    2580 MINUTES & 카메라기자 “자성 없는 위기를 택할 것인가, 자성의 기회를 택할 것인가?”  카메라기자는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역사의 기록자이며, 사건의 현장을 사실 그대로를 전달하는 훌륭한 보고자이며, 취재현장의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하는 동반자이다.  언제나, 현장에 서있는 카메라기자!  그러나 카메라기자의 현실은? 황당하지만 취재파트끼리 취재영상을 주고, 받고, 보내고, 나누기까지 하며, 너무도 쉽게 자료영상에 의지하는 뉴스들이 목격되고 있다. 결국, 본래의 의미가 퇴색된 POOL, 인원 부족으로 인한 취재의 한계가 자료영상뉴스를 양산하며 카메라기자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HD방송, NLE 편집, NPS system 등과 같이 방송환경도 급변하고 있다. 주어진 영상취재에만 급급해한다면, 발전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카메라기자의 존재감을 상실케 하는 현실인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에 대한 문제의식이 부족했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되찾기 위해 이제는 카메라기자로서 자신을 되돌아보아야할 때다. ‘땡’하고 기다렸다 뉴스를 보는 시대는 저물가고 있으며, 언제 어디서든 시청자 스스로가 다양한 방법으로 정보를 취득하고 있는 현실이다. 뉴스도 변화를 시작했고, 또한, 카메라기자도 변해야만 하는 것이다. 급변하는 방송의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계속 찾아야 한다. 수많은 현장의 경험과 제작의 노하우는 또 다른 새로운 뉴스를 탄생시킬 수 있다.  영상뉴스, 테마영상, 카메라기자들의 코너들이 지속되는 속에 KBS인터넷 뉴스에 등장한 '온새미'의 시도와 성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故 최진실 씨의 사건 보도 때는 그 완제품 뉴스가 KBS 인터넷 뉴스검색의 최고 클릭수를 기록 했다고 한다. 카메라기자 스스로가 스스로의 역량을 개발하려는 노력은 매우 뜻 깊고 현실의 상황을 개선 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하며 계속 이어져야 할 일이다.  2580minutes도 같은 고민의 결과물이다. 기사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조건으로 뉴스를 만드는 노력이 그것이다. 영상으로 기사를 써서 직접 완제품으로 만드는 시도, 인터뷰와 자막을 통해 그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새로운 형태의 뉴스형식으로써의 2580minutes 시청자와 교감하고 소통하는 뉴스를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인 바로 카메라기자로서 시도할 가치가 있었다. 서민의 생계를 위협한 경유값 폭등에 대한 현실을 동행 취재한 ‘기름 값이 미쳤다.’ ‘람사르(Ramsar) 총회’를 개최할 우리나라의 대표 습지를 소개한 ‘우포늪’ 애니메이션산업의 현실과 애니메이션이 제시하는 미래를 말한 ‘애니메이션은 미래다.’ 제2의 IMF를 우려하는 목소리를 담고 내용을 살펴 본 ‘IMF괴담 시즌2’ 기름유출사고이후 절망을 넘어선 서해의 현장 르포 ‘다시 살다. 서해’ 어려운 경제상황에서도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 ‘2008 여름스케치’ 개발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DMZ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  ‘골드로드 DMZ’ 사생활 보호냐? 범죄예방이냐? 의 논란을 넘어 다양한 쓰임새를 통해 살펴 본 ‘CCTV' 무심히 지나쳐 온 잃어버린 인터넷 한글 되찾기 ‘한글’  르포부터 그래픽 아이템까지 취재영상을 넘어 카메라기자의 역량으로 가능한 다양한 형식을 시도해 보았다. 물론, 촬영과 편집의 실험도 병행되었다. 무엇보다도 아이템의 기획! 사전 취재, 섭외, 현장 취재,  기사를 함축하는 자막, 인터뷰이(interviewee)의 진지한 이야기, 완제품 종합편집까지 보다 카메라기자의 역량을 확대해서 정성껏 만든 잘 차려진 뉴스를 생각했다.  만들어진 2580 minutes는 기존의 뉴스와는 상당히 달랐다. 물론 한계도 발견했고, 막상 뉴스로 소화하기 어려운 점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접근 방법들이 쌓이면 카메라기자가 전달하는 뉴스가 새로운 뉴스아이템의 한 형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커졌다.  앞으로 더욱 기대감을 갖게 하는 것은 가장 큰 이유는 2580minutes를 제작하는 카메라기자의 다양한 시선이다. 한국인의 골목길 정서를 통해 정부와 국민간의 소통부재를 제시한 ‘소통’ (심승보 부장) 나눔의 의미를 짚어준 ‘구호병원’(양동암 차장)에서 보듯, 카메라기자가 갖고 있는 다양한 시선과 주제표현에서 새로운 뉴스를 보았기 때문이다. 영상뉴스를 넘어 선 방송뉴스 특성을 잘 포함시켜낸 완제품 그 완제품들은 현재를 관통하고 있었다. 카메라기자가 가진 시선들이 무궁무진한 소재가 되어 뉴스로 만들어 질수 있을 것이며 기존의 뉴스와는 다른 새로운 방송 뉴스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바로 그것이다.  성급하지만, 미래의 카메라기자는 어떠해야 할 것인가? 보다 주체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에 대한 답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다양한 논의를 거쳐야할 문제다. 주체가 되어 기획, 제작, 방송하는 카메라기자의 모습! 뉴스 제작 Director로서의 역할을 생각할 수 있다고 본다.  POOL영상, 자료영상으로 모든 언론 방송사가 천편일률적인 영상과 뉴스를 만들어낸다면, 어떤 시청자가 카메라기자에게 박수를 보내겠는가? 건강한 경쟁만이 건강한 결과를 이끌어낸다. 현장에서는 어깨를 맞대는 경쟁자로서, 취재가 끝난 뒤에는 수고했노라 서로를 격려하는 동료로서, 모두가 자신이 가진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는 카메라기자가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미래를 그려보았으면 한다.  위기는 곧 기회다. 우리는 지금 위기와 기회가 공존하는 오늘을 살고 있다. 자성 없는 위기를 택할 것인가, 자성의 기회를 택할 것인가. 위기의 해법은 카메라기자! 스스로의 존재감을 되찾아가는 길에 있다. 정민환 / MBC 보도국 영상취재1팀 차장
    2009-01-16
  • SBS 카메라기자 55명의 글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를 발...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를 발간하며... “카메라기자들의 마음만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전해지길”  카메라기자협회 지원으로 험지교육을 마치고 돌아와 출근하는 길. 올림픽대로는 꽉 막혀있었지만 가을햇살이 너무 포근해 짜증스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막히는 길 위에서 이런저런 행복한 상상에 빠져들었다. 그때 문득, 지금까지 다녔던 해외출장들이 떠올랐다. 카메라기자가 된 후 12년, 참 많은 곳을 다녀왔구나! 기억을 되살리려 했지만 두세 곳을 제외하곤 기록으로 남겨놓지를 않아 막연하기만 할뿐 어디서 누구를 만났는지도 알 수가 없다. 사진으로나마 남겨두었으면.... 너무 아쉬웠다. 책 한권 써도 될 만한 이야기꺼리들이 게으름과 무관심 때문에 한두 장 채울 만큼도 기억에 남아있질 않다니....  사무실에 도착해 부서원들에게 출근길에서 느꼈던 심정을 이야기하며, 혼자서는 힘들지만 모두가 함께하면 책 한권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안을 했다. 당시 팀장인 장준영 부장을  비롯한 여러분이 카메라기자들의 해외출장 경험담을 소재로 책을 써보자는데 의견을 모아주었다. 작년 9월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팀원 모두가 너무도 자랑스럽게 느껴진 순간이다.  한명이 글 하나씩만 쓰면 당장 3개월여 남은 연말에도 출간이 가능할 듯싶었다. 저술계획서를 만들어 여러 출판담당자들에게 메일을 띠우기 시작했다. 돌아온 답변은 대부분 콘셉트는 마음에 들지만 저자가 너무 많아 어렵다는 것이었다. 생각만큼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제안자의 입장에서 가장 크게 간과했던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오히려 글도 빨리 쓸 수 있고 쉬울 것이라 싶었던 일이 가장 큰 장애가 될 줄이야. 저자가 많은 출판을 가장 꺼려한다는 것을 출판사가 정해지고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두 세 명만 되도 각자 다른 의견을 통일하기 힘든데 50명이 넘는 글쓰기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구상한 콘셉트 그 자체를 받아들여 돈 들이지 않고 출판할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다. 난감했다. 언론재단의 문을 두드려보기로 했다. 몇 군데에서 퇴짜를 맞고 시름에 잠겨있을 무렵 ‘삼성언론재단’으로부터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회사에서도 도움을 주었다. 밑천은 마련된 셈이다.  이젠 글쓰기만 남았다. 한 분 한 분 쓰기 시작한 글감이 모여 55개가 되었다. 변영우 본부장을 비롯해 이형기 팀장, 김영창 팀장, 선후배 동료 대부분이 자신들의 소중한 이야기보따리를 아낌없이 풀어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때 카메라가 내 눈물을 닦아 주었습니다”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나의 눈물을, 너의 눈물을, 그리고 우리의 눈물을 담은 차가운 카메라 속의 뜨거운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말이다.  카메라기자 55명의 마일리지를 얼핏 계산해보았다. 천만마일은 족히 되지 않을까 싶다. 그 거리만큼이나 거기에 깃든 각자의 사연들은 얼마나 다양할까? 남극을 비롯해 오지, 지진과 쓰나미로 상처입고 고통 받은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느낀 가슴시린 이야기들, 공안에 쫒기고 전쟁 중인 땅에 억류되어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던 사선에서의 기억 등 카메라기자만이 겪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경험 있는 카메라기자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자기고백도 진솔하게 담겨있다.  IMF 구제금융 때보다 힘든 시기라는 탄식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의 카메라는 차갑기보다 나와 너, 우리 모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온기로 가득해야 한다. 우리의 책이 지향하고자 했던 대목이다. 비록 카메라는 차갑지만, 그 속을 가득 채운 카메라기자들의 시선은 너무도 따뜻하다는 것을 세상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투박한 글이지만 카메라기자들의 마음만은 생명력을 잃지 않고 생생하게 전해지리라 믿는다.  또 하나의 바람은 우리의 책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카메라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인지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줄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보통사람들은 카메라를 들고 일하는 사람들을 흔히 감독(카메라감독)으로 알고 감독님이라 부른다. 호칭의 호불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업무의 영역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음에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개인적으로도 감독님이란 호칭이 어색하고 난감할 때가 있지만, 그때마다 일일이 차이점을 설명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우리가 기자라는 본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한다면 그 걸로 족하다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이름 붙여진 카메라기자라는 호칭도 소중한 것이기에 그렇게 불려 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조정영 / SBS 영상취재팀 차장 
    2009-01-16
  • 카메라기자들이 뽑은 2008 10대 뉴스 및 굿 뉴스 메이커
    2008 카메라기자들이 뽑은 10대 뉴스 1. 촛불집회 및 광우병, 미 쇠고기 수입 파동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논란에도 불구하고 수입이 결정되면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가 100회 넘게 이어졌다. 이번 집회는 투쟁 일색이었던 기존의 시위 양상과는 달리 수만 명의 시민들이 참가하는 문화제적 성격의 집회로 특징지어졌으나, 6월말을 기점으로 일부 시위대의 폭력과 경찰의 과잉진압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2. 리먼 파산 등 미국발 세계 경제 위기  미국발 서브프라임 사태로 촉발된 세계 경제의 위기가 금융위기를 거쳐 이제 본격적인 실물경제의 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기업들은 물론이고 서민, 금융권까지 그야말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엄동설한에 덜덜 떨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998년 IMF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은 아닌지,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크다. 3. 숭례문 화재  지난 2월 10일 저녁 8시 47분경 국보 1호인 숭례문이 2층 누각화재로 전소 붕괴되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때 건축된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이다. 숭례문 방화범 채모 씨는 범행 동기에 대해 어처구니없게도 토지보상 등 개인불만이라고 밝혀 국민을 두 번 허탈하게 만들었다. 4. 미국 대통령 오바마 당선  지난 11월 5일, 버락 오바마 민주당 상원의원이 2008 대선에서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다. 건국 232년 만에 첫 흑인 대통령 탄생이다.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미국사회를 통합으로 이끌어 새로운 미국을 만드는 데 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5. 연예인 자살  올해는 안재환, 최진실에 이어 트랜스젠더로 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장채원과 커밍아웃한 모델 김지후 까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히 최진실의 죽음은 그녀의 모습을 보며 삶의 힘을 얻었던 여성들에게 엄청난 충격과 함께 상실감을 안겼다. 이들의 죽음 후 연예계는 한동안 무력감에 빠지는 등 적잖은 후유증을 남기기도 했다. 6. 베이징 올림픽 선전  지난 8월 개최된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이 종합 7위를 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특히 박태환 선수가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남자 수영 400m에서 금메달을 땄고, 야구에서는 남자 단체 구기 종목 사상 최초로 9전 전승 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장미란 선수도 세계신기록을 세워 여자 역도 금메달을 땄다. 7. 중국발 멜라민 파동  멜라민 분유 파동, 중국 생산 과자 멜라민 검출 등으로 어느 때보다 ‘중국산’에 대한 불신이 높아졌다. 특히 대기업 제품에서도 멜라민이 검출되면서 ‘믿고 먹을 것이 없다’는 불신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상태다. 이를 계기로 주부들 사이에서 믿을 만한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먹는 ‘엄마표’ 먹거리가 유행을 하고 있다. 8. 이명박 정부 출범  지난 2월 25일 이명박 정부가 본격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실용, 비핵, 개방, 3000 등의 ‘키워드’를 재차 언급하며 경제논리에 입각하되 북한의 적극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정책을 펼 것임을 시사했다. 덧붙여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의 길을 택하면 남북협력에 새 지평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9. 삼성 특검, 이건희 회장 퇴진  이건희 삼성 그룹 회장이 22일 '특검 암초'에 좌초되어 삼성그룹을 '세계의 삼성'으로 성장 시킨지 20년 만에 모든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번 특검에서 특검팀은 삼성 그룹 전,현직 임직원들 명의의 차명의심 계좌에 대한 자금 추적 및 조세 포탈 사건과 관련 해 이건희 회장 등 4명을 특가법상 조세포탈죄로 기소했다. 10. 금강산 관광객 피살  지난 7월 11일 금강산에서 50대 여성 관광객이 북한군 초병의 총격을 받아 사망했다. 남측 인사의 왕래가 상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금강산과 개성공단에서 우리 국민이 북측 인사에 의해 살해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사건은 남북관계 경색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올해의 굿 뉴스 메이커 김장훈 가수 김장훈이 9년 동안 벌어들인 수입의 거의 전부인 30여 억 원을 보육원과 후원대상 학생들에게 기부해 왔다는 것이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김장훈 씨는 공연스케줄도 기부할 곳을 정해 거기에 맞추어 잡고 기부금이 많이 소요되는 5월 가정의 달을 앞둔 4월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공연활동에 나선다고 한다. 이소연   지난 8일 오후 8시16분 39초에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기지에서 우주로 떠난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씨가 12일간의 우주 대장정을 마치고 19일 오후 5시30분께 카자흐스탄 오르스크 초원지대로 무사 귀환했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18종의 과학실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이소연 씨는 현재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 신분으로 유인 우주기술 개발과 관련한 연구 등을 진행하고 있다.
    2009-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