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상기자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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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과 독일의 정치 지도자의 역사인식
    일본 군국주의 전범자와 정치인의 역사 인식 (5)일본과 독일의 정치 지도자의 역사인식  ▲ 1970년 12월 7일 나치에 의해 40여만 명이 희생된 폴란드 바르샤바 게토 유대인 추념비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맞아가며 눈물을 보이며 참회의 무릎을 꿇은 당시 빌리브란 서독 총리 (사진1, 출처 :독일 역사 박물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추축국(樞軸國)으로서 동맹을 맺고 함께 인도에 대한 죄를 범하고 전쟁에 패한 독일과 일본은 매우 닮은 점이 있으나 전후 처리에서는 역력한 차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의 격차이다. ‘일본 군국주의 전범자와 정치인의 역사인식’을 연재하면서 일제강점기 때, 아소타로(麻生太郞) 일본 자민당 부총재의 증조부 아소 타키치(麻生太吉)와 부친인 아소 타가키치(麻生太賀吉)가 조선인에게 다대한 피해와 고통을 준 사실을 밝혔다(본보 144호, 145호 참조). 아소 가계를 이어온 아소 씨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과거에 대한 반성과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오히려 망언을 함으로써 이웃 국가들에게 불신감을 초래했다. 일본 국내에서는 이웃 국가와의 관계회복을 위해 교착상태에 빠진 아시아 외교의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해결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과 같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추축국(樞軸國)이었던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이웃 국가들과 우호 관계 재구축을 위해 어떻게 노력해 왔을까. 일본과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인식에 대해서 알아보자.독일 정치지도자의 역사 인식 1970년 12월 7일 폴란드를 방문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폴란드의 수도 바르샤바의 게토에 갇혀 희생된 유대인 위령비를 방문하여 그 비석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 독일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진심으로 사죄했다(사진1). 브란트 총리는 그 장소에서 “과거를 잊은 자는 영혼을 앓는다”라고 참회하여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다. 브란트 총리의 행동은 유럽 각국을 비롯한 세계 나라들에게 독일이 진정한 마음으로부터 참회하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의심의 눈으로 독일을 주시하던 주변국은 비로소 독일을 향해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역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한 독일의 정치가는 브란트 총리만은 아니다.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은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을 방문해 국회에서 나치 독일이 유대인에게 범한 죄를 반성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용서를 구했다. 동시에 유대인 학살에 대한 역사적 책임을 강조한 후 “홀로코스트(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 희생자의 얼굴과 생존자의 기억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라고 호소했다.  쾰러 대통령은 역사 교육에 관심을 보였다. 자국민을 향해 “우리 교사와 부모, 그리고 언론인들은 제대로 나치 범죄사를 가르쳤는지, 그리고 젊은 세대에 대해서 제대로 역사를 가르쳤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봐라”고 촉구했다. 한편, 쾰러 대통령은 “독일은 외국인에 대한 적대 감정과 반유대주의가 사라지고 있지 않다”며 “단호하게 대처하자”고 외쳤다. 독일에서 대두되고 있는 극우주의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이 발언에 대해 독일의 여당과 야당은 지지를 보냈다.  2004년 6월 6일. 슈뢰더 총리는 독일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2차 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참전 희생자 묘지에 헌화했다. 슈뢰더는 독-프 양국 기념식에서 지난 과거에 대한 독일의 역사적 책임을 강조했다. 프랑스 시라크 대통령은 슈뢰더 총리에게 큰 경의를 표했고 프랑스, 영국의 주요 언론들은 2차 대전 유럽의 적대국들이 명실상부한 화해의 길에 접어들었다며 슈뢰더 총리의 태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008년 3월 18일 이스라엘 의회(크네셋)에서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해 용서를 빌었다. 독일 지도자가 이스라엘 의회에서 이 같은 사과 연설을 한 것은 2000년 요하네스 라우 전 대통령과 2005년 호르스트 쾰러 대통령에 이어 세 번째다. 그러나 실질적인 독일 정부 수반인 총리가 이스라엘 의회 연단에서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이스라엘 건국 60주년을 기념해 현지를 방문한 메르켈 총리는 “홀로코스트는 수치스러운 기억”이라며 이스라엘 국민에게 머리를 숙였다. 독일의 정치 지도자들은 나치 희생자에게 용서를 구한 것뿐만 아니라,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적 근거도 만들었다.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는 브란덴부르크 문 가까이에 세워진 유대인 희생자의 이름이 세워져 있는 추모탑이 있는 장소는 물론, 나치 희생자와 관계되는 주요 기념 장소에서 극우주의자에 의한 데모 행진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졌다.  2005년 3월 11일 독일의 여당과 야당은 논의를 거쳐 나치정권과 나치의 폭력에 의한 희생자 추모 장소에서 데모나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집회법 개정안이 합의에 이르렀다. 형법에 있는 국민선동에 관한 조항도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극우주의자가 나치정권을 미화하거나 정당화하고 나치 희생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사태를 발생시킨 경우 최고 3년 징역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이 개정 법안이 4월 15일 독일 의회에서 가결된 후, 베를린 홀로코스트 희생자의 추모탑에서 극우주의자들은 데모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같은 종류의 장소도 데모 금지 지역으로 정해졌다. 그 결과 독일의 극우파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 60년에 즈음하여 2005년 5월 8일 같은 탑 앞에서 예전부터 대규모 데모를 펼칠 준비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독일은 확실히 A급 전범을 군신(軍神)으로 제사 지내는 일본의 야스쿠니 신사와는 정반대이다. 같은 전쟁의 가해국인 독일과 일본의 역사인식에 있어서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 2013년 12월 26일 당시 아베 총리는 주변국들의 반발을 무시하고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사진2, MBC뉴스데스크 화면 갈무리)일본 정치 지도자의 역사 인식  아베신조(安倍晋三, 제90·96·97·98대 총리) 당시 일본 내각 총리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들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했다(사진2). 2005년 12월 23일, 아소 씨가 외상으로 재임하고 있을 당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국회의원이 되기 전부터 지금까지 40차례에서 50차례 정도 야스쿠니에 참배했다.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나 6학년 때다”며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외조부)의 손을 잡고 갔다”고 말했다. 요시다 시게루는 일본의 45대 내각총리를 역임했다.  독일과 일본은 같은 패전 국가이면서도 양국의 정치 지도자의 자세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2013년 12월 26일 오전, 아베신조(安倍晋三, 제90·96·97·98대 총리) 당시 일본 내각 총리가 과거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A급 전범들이 합사 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했다(사진2). 이후에도 계속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봉납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며 주변국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야스쿠니 참배는 제2차 세계대전 전범을 인정하고 옹호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이다. 아베는 일본 최대 극우 단체인 일본회의의 회원이기도 하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郎, 제87‧88‧89대 총리) 당시 일본 내각 총리는 2005년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여 주변 피해국으로부터 반발을 일으켰다. 고이즈미는 같은 해 8월 15일에 발표한 전후 50년 총리 담화애서 “우리나라는 한때 식민지배와 침략에 의해서 많은 나리들, 우선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 대해서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주었다”며 “역사의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 사죄의 마음을 표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시아 피해국은 진심이 담긴 사과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냉혹한 눈으로 일본을 바라보고 있다. 그 이유는 일본의 지도자들이 진심으로 과거를 반성하는 역사관을 가지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인식 문제에 있어서는 아직도 일본과 아시아 피해국과의 사이에 여전히 거리가 있다.한 원 상 (한국영상기자협회 고문)
    2023-12-21
  • 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발표 취재기
    [현장에서]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2030 부산 세계박람회 유치발표 취재기 ‘유치 성공하면 출장 다녀와서 쉬지도 못하겠네?’ 출장을 준비하는 나에게 모두가 건네는 염원(?)일지 걱정일지 모르는 관심 속에 파리 출장길에 올랐다.  부산은 오랜 시간 세계박람회 유치를 준비해왔다. 그리고 2023년 11월 28일은 ‘D-day’, 파리에서 열리는 BIE(The Bureau International des Expositions:국제박람회기구)총회에서 2030 세계박람회 개최국이 선정되는 날이었다. 나의 취재기는 결과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영상기자 개인에게 어떤 의미와 계기가 되었는지 이야기하고 싶다.부산총국에서의 첫 MNG Live 범국가적으로 일어나는 이슈는 지역에서 전담하여 다루기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파리 출장은 이야기가 달랐다. ‘부산’의 중심 이슈였으며, 오랜 시간 다뤄왔던 주제였기에 우리가 키를 잡았다. 게다가, 해외에서 처음 시도하는 MNG Live. 보고 들은 정보는 많지만 직접 해보지 않은 자는 모든 것이 두렵다. 예산이 넉넉하다면 업체를 통해 현지 기기와 USIM을 빌리는 안정적인 방법도 있었으나, 조직의 지속 가능한 활용에 있어서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다. 두 달 전부터 준비하고 알아봤지만 우여곡절이 많았다. 늦은 시간에 공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USIM 샵이 닫혔다든지, 특정 통신사 외 다른 통신사의 USIM을 구하기 힘들어 2만 보가 넘는 행군을 했다든지, 울며 겨자 먹기로 샀던 USIM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밤잠을 설쳐가며 골머리를 앓았다든지. 어찌어찌 첫 LIVE에 참여하게 되었고, 인터컴으로 들리는 주조 감독님들의 목소리가 인상 깊었다. “해외에서 하는 거 맞아? 소스가 너무 깨끗한데?” 성공적인 참여였다는 반증이라 생각한다. 처음 겪는 어려움은 성장의 자양분이라 생각하는 좋은 계기였다.타국에서 느끼는 진심 이제 MNG Live에 대한 변수는 제어할 수 있다. 자신감이 생겼다. 시시각각 변하는 정보와 에펠탑, 총회장, 시민단체응원전을 오가며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촬영 보조 없이 양쪽 어깨로 짊어진 무게가 당시는 그리 무겁지 않았다.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매시간 한국에서 요청하는 Live를 잘 끝내고도, 5분도 채 앉아있기 힘든 발생을 커버하고도 긴장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렇게 개최국 발표 시간이 다가왔고, 이게 국제행사의 공식발표인지 헷갈리는 어수선한 현장을 뒤로하니 사우디 관계자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늘 그렇듯 기뻐하는 장면을 담고 있었지만, 손이 떨리고 쿵쿵거리는 심장을 주체할 수 없었다. 5분 남짓 환호하던 이들이 잠잠해지고 나서야 긴장감이 풀리고, 씁쓸하고 아쉬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꽤나 오늘의 발표에 진심이었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펑펑 울고 있는 시민응원단과 눈시울이 붉어진 부산시 관계자를 보며 그 감정이 더 명확해졌다. 우리는 모두 진심이었고, 타국에서 다 같이 염원했다. 부산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자주 접하는 기사는 ‘부산의 먹거리’이다. 세계박람회는 그런 걱정과 패배감을 씻어낼 하나의 신호탄 같은 것이었다. 연쇄적으로 일어날 부산의 변화는 긍정적 모멘텀이기도 했다. 그런 순간이 눈앞에서 사라진다는 감정에 모두들 아득했을 것이다. 결과는 부정적이었지만 마음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되었음에, 타국에서도 같은 염원을 하며 겉으로든 속으로든 응원할 수 있었음에 벅찬 날이 아니었을까? ‘내가 그 현장에 있었다.’ 영상기자라면 한 번쯤은 생각했을 법한 감정이지 않을까? 복합적인 감정이지만 저 문장에 다 녹아있다. 처음 시도해 보는 두려움이 해소되고 자신감을 얻었을 때, 결과는 미미하고 아쉬웠지만 모두 하나의 염원으로 소통하는 마음을 보았을 때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이번 파리 출장은 나에게 경험의 깊이를 선물해 준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각자의 현장을 지키고 계셨던 모든 선·후배 동료에게 감사한다.KBS부산 장준영 기자 
    2023-12-21
  • 외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시각의 전쟁 취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현장에서]외신에 의존하지 않는 한국 시각의 전쟁 취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실금이 나뭇가지처럼 사방으로 뻗어있다. 괜스레 손을 가져다 대보지만 이물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도 유리창 바깥에서 난 상처 같았다. 내가 탄 방탄 버스의 양쪽 유리는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다. 이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의 흔적 중 하나라 짐작할 뿐이었다. 10월 26일, 이스라엘 공보부에서 주관하는 프레스투어에 몸을 실었다. 수도인 예루살렘에서 출발해 가자지구 인근 ‘홀릿(Holit)’이라는 마을로 가는 일정이었다. 홀릿은 논밭이 펼쳐지는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고 하마스 병력이 마을로 들이닥친 뒤 유령 마을이 됐다. 수많은 민간인이 포탄과 총에 의해 학살됐고, 일부는 납치됐다. 현재는 이스라엘 군이 하마스로부터 마을을 되찾아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홀릿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나는 왜 홀릿으로 가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했다. 외신이 공유하는 영상은 충분했다. 외신 화면 속 탱크와 화염, 먼지와 사람들은 이제 눈에 띄는 장면이 없나 찾아볼 정도로 즐비했다. 그러나 우리가 직접 담아온 영상과 현장이 없었다. 이 땅에서 우리 손으로 취재한 것들을 시청자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럴 때, 시청자들도 이 전쟁의 참상을 보다 관심 있게 바라볼 것 같았다. 그래서 방탄모를 쓰고 방탄조끼를 둘렀다. 납덩이 무게는 적잖이 무거웠지만 의무라 여겼다. 프레스투어에 참여한 언론은 MBC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CNN, 영국의 BBC를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인도 등 세계 유수의 외신들이 버스의 빈 좌석을 채웠다. 투어에 임하는 기자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었다. 사진기 하나만 들고 단신으로 참가한 사람도 있었다. 반면 버스 안에 고프로를 설치하고 홀릿으로 가는 내내 ENG 스탠드업을 이어가는 외신도 있었다. 웅성웅성 대화가 이어지다가도 창밖에 군인과 탱크가 점점 늘어날수록 버스 안은 고요해졌다.  참혹한 홀릿이었다. 깨진 유리창과 메케한 먼지가 우릴 먼저 반겼다. 잠겨있지 않은 집 안은 총알 자국으로 가득했다. 바닥엔 끈적한 핏자국이 군데군데 남겨있었다. 빈방을 정리하는 이스라엘 관계자들은 저마다 방역복을 입고 핏자국을 닦고 있었다. 나와 현기택 선배, 그리고 취재기자는 그 사이를 누비며 정신없이 취재했다. 취재 제한 시간이 있는 탓이었다. 완성된 문장 하나를 다듬고 만들기보다 즉흥적으로 스탠드업을 이어갔다. 정신없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그렇지만 마냥 녹화 버튼을 누를 수 없었다. 구겨진 혹은 먼지에 덮인 가족사진들 앞에서 이곳에 왜 왔는지를 다시금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비단 홀릿 취재뿐만이 아니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출장은 매 순간 나를 흔들었다. 서안지구 분리 장벽 앞에서 중계 준비를 하다가도 도시 전체에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안전이 우선이기에 부리나케 방공호를 찾았다. 방공호가 없어서 타고 온 차 한 쪽에 방탄모를 쥐고 웅크려 앉기도 했다. 텔아비브에선 ‘뻥’ 소리와 함께 아이언돔이 미사일을 격추한 순간을 겪었다. 취재 현장 근처에서 최루탄이 터져 눈앞이 따갑던 적도 있었다. 정말 사고가 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었다. 긴장 속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스스로에게 침착하라고 되새기는 것 뿐이었다. 이번 전쟁 지역 출장은 내게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었다. 외신들과 같은 현장을 누빈 점, 가족 잃은 슬픔에 무너져가는 사람들을 만나본 점 등은 이 경험이 나의 기자 생활에 큰 밑거름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사이렌과 포탄 굉음 앞에서 한없이 나약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얼마나 안전을 보장받고 이곳에 왔는지를 되새겨봤다. 무거운 납덩이만으론 나와 동료의 안전이 보장받긴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사전적, 제도적 교육이 필요해 보인다. 2007년 샘물교회 피랍사건 이후 우리 언론은 전쟁, 분쟁 지역으로의 입국이 제한됐다. 그러다 작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시작으로 이스라엘 전쟁까지 그 문틈이 조금씩 열리고 있다. 국내 언론이 앞으로 이런 위험지역 취재를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계속 벌어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방탄조끼와 방탄모도 중요하지만, 선배 기자들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전에 어떤 절차를 밟고, 어디까지 취재가 가능한 지 교육이 뒷받침됐을 때 보다 안전한 취재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럴 때면 나의 몸을 감싸는 납덩이도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MBC 장영근 기자 
    2023-12-21
  • 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현장에서]EEZ 중국 불법어선 단속 동행 취재기  2023년 11월 29일 새벽 6시, 해경 부두에 정박한 3,000t급 대형 함정의 모습은 조금은 겁먹었던 나에게 든든한 위로를 주었다. 비로소 안심하며 생애 처음으로 EEZ(Exclusive economic zone, 배타적경제수역)까지 해경 함정을 타고 취재를 출발했다. 목포에서 EEZ에 도착하기까진 쉬지 않고 약 7시간의 시간이 소요됐다. 안에서 내부 시설물도 파악하고, 취재기자와 어떤 방식으로 취재할지에 대해 고민했다. 가장 큰 고민은 불법 조업 어선의 유무였다. 불법 조업 어선이 발견될 때까지 단속을 하겠다는 해경의 의지는 대단했지만, 정해진 일정 동안 실제 발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결론은 모든 단속을 전부 취재하는 것. 이후 7시간이 지나 EEZ에 도착했단 방송이 나왔다. ENG를 들고 갑판 위로 올라갔다. 바다 위로 꽤 많은 취재를 다녀봤지만 압도적인 풍경이었다. 온 사방을 둘러봐도 작은 섬이나 육지는 보이지 않고 끝없는 바다만 보였다. 무언가 의지할 수 없다는 생각에 공포가 다가왔다. 쉬지 않고 시작된 불법 조업 어선의 단속. 3,000t급의 대형 함정을 뒤로하고 10명이 탈 수 있는 단속정 위에 ENG와 몸을 실었다. 흔들림 없는 편안한 에이O 침대에서 혹한기 야전 침낭으로 바뀐 기분이었다. 파도의 높이는 내 키를 넘었고 우리는 가감 없이 그 파도를 느껴야만 했다. 장비에는 쉼 없이 물이 쏟아져 흠뻑 젖었다. 핸드헬드의 파인더 안쪽은 파도보다 더 거세게 흔들렸다. 중국 어선에 탑승하는 일은 담력 테스트였다. 단속정의 뱃머리를 어선 옆에 부딪히면 줄을 거는 것도 없이 순식간에 올라타야 했다. 흔들리는 단속정과 다른 높낮이의 어선, 언제 벌어질지 모르는 밑바닥, 빠지면 더 이상 취재가 불가능한 장비, 이 모든 것들이 내 발을 더 얼어붙게 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올라 본 배 위의 모습은 정말 더러웠고 좁았다. 배를 건조하는 스타일이 다른 건지 관리가 안 된 건지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어선과 중국의 어선은 많이 달랐다. 여기저기 어질러진 생선과 잡기들 사이로 다시 맡고 싶지 않은 악취가 풍겨왔다. 좁은 어선 위에서 10명의 해경과 10명의 중국 선원들 사이에서 취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앵글이 한정적이었고 내 몸 하나 가누기도 쉽지 않았다. 4번의 단속이 끝나고 저녁 10시, 함정 안의 4인 숙소의 침대에 노곤한 몸을 눕혔다. 드디어 오늘 하루가 끝났구나. 스르르 감기는 눈에 정신도 블랙아웃하려는 순간, 쾅 하는 큰 소리가 났다. 뭐지? 암초에 부딪혔나? 아니었다. 파도가 함정의 옆면을 두드리는 소리였다. 거기에 더해 1분에 한번씩 내 몸이 붕 떠올랐다. 높은 파도를 넘는 배가 하늘로 날았다가 바다에 착지하는 느낌을 소리와 내 감각으로 느꼈다.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었지만 웃기게도 멀미가 나를 잠 들 수 있게 해줬다. 시간마다 파도 소리에 깨고, 술에 취한 것 같은 정신으로 잠에서 깨는 이 느낌이 이번 취재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다. 귀밑이든 코밑이든 어디에 붙이든 멀미약은 소용없었다. 그냥 술에 취한 것 같은 정신과 걸음걸이를 취재를 해야한다는 사명감 하나로 버텨내야 했다. 취재가 끝나고 육지에 올랐을 때, 글로만 읽었던 육지 멀미를 체험했다. 다시는 풍랑주의보에 바다를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순간이었다. 이번 취재를 겪으며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그중 하나는 ENG가 아닌 컴팩트한 장비를 챙기지 않았던 것이다. 내 육체를 너무 맹신했고, ENG의 조작성이 컴팩트함 보다 더 큰 효율을 줄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더 많은 앵글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겼다. 두 번은 경험하기 어려운 취재지만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된다면 다양한 장비를 챙겨가면 좋을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읽은 뒤 바다에 취재 나가는 동료분들이 계시다면 한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다. 바다에서의 취재는 안전보다 중요한 요소는 없다. 항상 안전에 유의하시길 바란다.KBS광주 이우재 기자
    2023-12-21
  • OVER THE TOP, OVER THE VIDEO JOURNALIST - WAVVE 탐사보도프로그램 ‘악인취재기’의 ...
    [현장에서]OVER THE TOP, OVER THE VIDEO JOURNALISTWAVVE 탐사보도프로그램 ‘악인취재기’의 취재기 1분 30초, 그 너머를 보다 : RT 50분 10부작 진흙밭을 구르더라도 좀 더 자유롭고 직관적인 취재를 하고 싶은 욕망, 영상기자라면 누구나 마음 한 켠에 품고 있을 것이다. OTT 플랫폼으로 방영되는 탐사프로그램 제작을 처음 제안 받았을 때 가슴이 뛰었다. ‘보도국 소속 영상기자 최초 OTT 제작 참여’라는 타이틀보다 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 건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방송이라는 틀 안에 갇혀 할 수 없었던 직관적인 취재를 해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악인취재기 1편 정유정 편은 확보된 영상이라고는 정유정 공판 출석 장면, 변호사 인터뷰, 사건현장 스케치가 전부였다. 어떻게 50분짜리 탐사프로그램 두 편을 만들어야 할지 막막했다. 고심 끝에 네 가지 큰 줄기를 정했다. 첫 번째, 정유정 가족, 특히 정유정의 아버지를 무조건 만나서 인터뷰한다. 두 번째, 살해 및 유기장면, 사건동선 등 존재하지 않는 영상은 재연으로 제작한다. 세 번째, 인서트 영상을 다양한 장비와 구도로 최대한 많이 촬영한다. 네 번째, 기자와 전문가 인터뷰는 장비와 구도를 정형화 시켜 10부작 악인취재기만의 독창적이면서 통일성을 갖춘 영상을 구현한다. 한 달 보름동안 거처를 부산으로 옮기고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심정으로 곳곳을 찾아 다녔다. 영상기자라면 누구나 잘할 수밖에 없는 그것, ‘뻗치기’의 무한 반복 끝에 정유정의 아빠를 만날 수 있었고 인터뷰도 성공했다. 아버지를 인터뷰하며 새롭게 알게 된 사실(아버지 본인의 범죄 사실과 정유정의 유년시절, 가족 간의 사연) 을 통해 프로그램의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가며 퍼즐을 맞추듯 영상을 구현해 갔다. 필요한 인서트 영상들은 차트를 업데이트하며 차곡차곡 데이터베이스를 채웠다. 드론, 고프로, 360카메라 등의 인서트 영상이 편집단계에서 많이 활용됐다. 남은 퍼즐 한 조각 ‘재연’. 재연은 팩트를 기반으로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연출의 영역일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영상을 구현해 내야 하는 과정에서 비보도국 PD와 보도국 영상기자가 서로의 관점 차이로 부딪힐 수밖에 없는 지점이 많이 있었다. 현장을 취재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과 정유정의 동선을 기반으로 한다고 하지만 일정 부분은 ‘이렇게 했을 것이다.’, ‘이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등의 추측을 영상으로 구현해야 했다. 이런 제작방식이 자칫 보도윤리에 벗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과 고민에 휩싸이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협회에서 배포한 영상보도 가이드라인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현장취재 시 촬영장비는 기본 ENG를 비롯해 드론, 고프로, 360카메라, 필요에 따라서는 휴대폰으로도 촬영을 했다. 스튜디오 인터뷰들과 재연촬영은 SONY FX3, CANON 5D MARK-4에 시네마렌즈를 주로 사용했다. 부수장비로는 짐벌, 숄더마운트+팔로우포커스, 틸트집을 유용하게 사용했다. 조명도 직접 운용했다. 세상은 넓고 악인은 많다  영상기자 입장에서 악인취재기의 백미는 브라질 현장취재였다. 악인취재기 4, 5편 ‘돌나라 오아시스’ 편은 영상기자가 PD 역할까지 병행했다. 막중한 임무를 갖고 국내에서 성범죄를 저지르고 브라질로 도주한 교주를 찾아 지구 한 바퀴를 돌았다. 돌나라 오아시스라는 사이비 종교 교주 박명호가 숨어들어 간 곳은 브라질의 수도 브라질리아에서 고속도로를 12시간 달리고 비포장도로를 4시간 더 달려야 다다를 수 있었다. 돌나라 신도들은 계속 우리 취재진을 위협했다. 몸싸움과 욕설은 예삿일이었고 손에 집히는 주변 물건들을 이용해 신변의 위협을 가하며 취재를 방해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두터운 철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지만 드론을 이용해 박명호 교주가 숨어든 내부 시설과 광활한 농장을 촬영할 수 있었다. 지난해 4월 돌나라에서 일어난 어린아이 5명의 사망사고와 관련해 브라질 현지 경찰, 검찰, 법원 관계자들을 만났고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착취, 아동문제, 성범죄 등의 실상이 제대로 수사되고 있는지 취재했다. 주 브라질 한국 대사관과 교민들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브라질 검찰에서 돌나라 오아시스의 여러 범죄 혐의를 확인하고, 벌금부과 및 국외 추방을 위해 자산을 동결했다는 사실과 관련 자료를 단독 입수! 영상기자의 프로듀싱 능력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지 않도록 악착같이 취재한 성과였다. NEXT LEVEL 영상기자는 촬영기자인 동시에 연출자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우리는 연출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주 능숙하게. 취재동선을 설정하고 취재기자와 스태프를 이끌며 날씨, 배경, 조명, 바람, 햇빛 등 아주 디테일한 하나하나까지 우리는 그 누구의 컨펌 없이 현장을 장악하고 있다. 각 방송국 내 그 누구보다 탁월한 현장 연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 능력을 제작에 활용하면 영상기자 그 너머의 NEXT LEVEL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덧 방송 뉴스가 플랫폼 시장에서 경쟁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메인 뉴스는 쪼개고 쪼개져 숏폼과 짤들로 최대한 짧고 빠르게 전달되는 한편, 반대로 그 짤들을 모으고 모으고 영혼까지 끌어 모아 사람들이 봐주길 애원한다. 나에겐 ‘악인취재기’가 그랬다. 지금까지 쌓아온 내 능력들로는 모자라 영혼까지 쥐어짜 취재하고 촬영하고 제작했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게 셋톱박스 너머의 세상을 보듯, 영상기자 너머의 광야를 달려보자. P.S. ‘악인취재기’는 지금 WAVVE에서 절찬리 방영 중이며 여전히 영혼까지 끌어모아 시즌2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JTBC 김영묵 기자 
    2023-12-20
  • 내가 사랑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프레임 밖에서] - 영화 추천내가 사랑한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  극장으로 가는 발걸음에 묘한 설레임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영화를 보러 가며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마치 오래전 첫사랑을 재회하듯, 기대감과 실망감 언저리의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전날 숙취와 복잡하게 얽혀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2003년 개봉했던 ‘냉정과 열정사이’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영화 속 준세이가 느꼈을 기적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개봉한 지 20년 된 영화가 다시 스크린에 걸릴 수 있는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것도 ‘헐리웃 시리즈물’이나 ‘천만관객’등의 수식어와는 거리가 먼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일본감독의 멜로 영화’가. 이윽고 영화가 시작됐다. 나직이 짤막한 주인공들의 대화. 그리고 피렌체의 전경과 함께 울려 퍼지는 OST 타이틀곡 ‘The Whole Nine Yards’.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다. 훅 하고 화끈거림이 올라와 나도 모르게 얼굴을 손으로 가려본다. (부끄럽게도) 눈에서 땀도 조금 났던 것 같다. 무슨 감정이었을까. 영화 속 아오이와 준세이는 그때 그대로인데, 나는 어느새 40대가 되어 있었다. 냉정과 열정사이를 처음 봤던 건 스무 살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서툰 학교생활과 미래에 대한 불안함, 정돈되지 못하고 갈곳 없이 방황하는 열정들. 그때의 나 역시도 그랬다. 어설프지만 반짝거리던 날들이었다.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했다는 이유만으로 연례행사처럼 가끔씩 이 영화를 꺼내보곤 했지만 그사이 많은 것들이 변해갔다. 영화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지고 느꼈던 감정들이 바스러져 갈 즈음 재개봉 소식이 전해졌다.극장에서 20년 만에 마주한 냉정과 열정사이는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매끈한 디지털영상에 적응된 눈앞에 펼쳐진 색바랜 피렌체 풍경은 그 자체가 하나의 유화 같았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이해되지 않던 인물들의 미묘한 심리와 극적 장치들이 차분하게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단지 나이를 먹어서일까. 지난 시간만큼 나의 경험이 늘어난 탓일까. 주인공들의 굵은 감정선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마빈과 메미의 감정, 조반나의 알 수 없는 행동과 이 영화가 왜 하필 피렌체와 유화 복원을 소재로 삼았는지. 준세이가 치골리의 유화를 통해 자신의 사랑을 복원해 가듯, 나는 오래전의 나를 복원해 나갔다. 스무살의 나를, 나는 영화를 통해 재회한 것이다. 차창 밖으로 멀어져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처럼 영화는 점점 멀어져갔다. 고요한 암흑에 엔딩 크레딧까지 끝나자 마침내 재회의 시간이 끝났다는 서운함이 밀려왔다. 관람객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을까? 아무도 먼저 일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렇게 또다시 영화와 기약 없는 이별을 했다. 밀도 높은 열일곱 개의 곡으로 이루어진 OST는 영화의 장면들을 자연스레 떠오르게 하는데, 특히 음대생이 연주하던 동명의 곡 ‘냉정과 열정사이’의 첼로 선율은 복원되어가는 유화처럼 이 영화의 메세지를 깊게 전달한다. 차분한 기타 선율에 바이올린과 첼로가 대화하듯 교차하는 ‘History’ 그리고 재회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End Title까지. 열일곱 개의 곡이 마치 하나의 곡처럼 느껴진다. 언젠가 피렌체에 가게 되면 이 음악들을 들으며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영화 속 장소들을 거닐어 보고 싶다. 영화는 나와 작품 사이에 수많은 우주를 만들어내는 힘을 가지고 있다. 한 편의 영화는 거대한 태양과도 같다. 매일 뜨는 태양이 한번도 똑같은 적이 없는 것처럼 영화 역시 보는 사람마다,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을 남긴다. 훗날 오늘의 감정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흐르는 시간이 가슴 아픈 건 풍화되어 사라지는 감정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찰나의 순간과 감정들이 까마득하게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 우리는 무언가를 기록하게 된 것이 아닐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생각해본다. 이런 작품을 마음속에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자 행복인지. 오늘 다시 만난 냉정과 열정사이를 통해 냉철한 40대의 삶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20대의 젊은 날 들을 회상해 본다. 무미건조해지지 않기 위해, 메마르지 않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몇 번이고 이 영화를 만나고, 헤어져 볼 생각이다. 김남성 / SBS A&T
    2023-12-20
  • 2023 특집 다큐멘터리 [우리도 광주처럼]
  • 전쟁, 인권, 언론자유 기자정신을 깨우다
    전쟁, 인권, 언론자유 기자정신을 깨우다 2023 힌츠페터 국제보도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작품이 휩쓸어 시상식, 내달 8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서 개최 ▲지난 10월 7일 발발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하마스 간의 전쟁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전 세계에서 날아든 취재진이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 중이다. 지난 10월 26일 국내외 언론에 공개된 이스라엘 남쪽 가자 지구 2km 부근. 키부츠 홀릿 (Kibbutz Holit) - 사진제공 MBC 현기택 차장   전쟁이 기자정신을 깨운 걸까. 올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중심으로 인권, 언론자유, 민주주의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이 선정됐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조직위원회는 2023 제3회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최우수작인 ‘기로에 선 세계상’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러시아 내부 이야기를 취재한 <인사이드 러시아: 푸틴의 국내 전쟁(Inside Russia: Putin’s War at Home)>을 선정했다. 이 작품은 전쟁이 발발하기 전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동원령을 발표하기까지 푸틴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운동, 전쟁 정보의 투명한 공개와 언론·표현의 자유 보장 요구 등 다양한 사람들 의 이야기와 현장을 담고 있다.  뉴스 부문은 2022년 8월 러시아의 포격과 공습이 끊이지 않았던 우크라이나 동남부 바흐무트 에 머물며 전쟁의 참혹함을 기록한 <바흐무트 전투(The Battle of Bakhmut)>에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이 보도가 “전쟁이 민간인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심층 취재하여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강인한 회복력과 희망을 담았다”고 평가했다.  특집 부문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에서 발생한 러시아 바그너 그룹의 폭력과 학대를 보도한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내 러시아의 소프트파워(Russian Soft Power in The CAR)>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민간 용병 기업인 바그너 그룹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의 정치권력과 유착해 정치·사회적 영향력을 키워가는 러시아의 대리자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2018년 바그너 그룹을 취재하다 살해당한 기자들의 취재를 동료 기자들이 이어받아 완성했다.  비경쟁부문 공로상인 오월광주상은 방사능 피폭 위험을 감수하고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 현장을 영상에 담은 ‘구 소련 우크라이나 중앙TV’ 소속 영상기자 4명에게 돌아갔다. 블라디미르 쉐브첸코, 유리 볼다코프, 빅토르 크리프첸코, 블라디미르 타란첸코는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제4호기의 대형 폭발사고와 수습 과정을 4개월간 취재했다. 보호 장비도 없이 사고 현장을 기록한 이들은 피폭의 여파로 폐암 선고를 받고 사망하거나, 심각한 피폭 후유증에 오랜 치료를 이어가야 했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심사위원회 (심사위원장 아흐메드 아사르·로이터통신 아시아 비디오사진부문 총괄 편집장)는 “세상에 진실을 전하기 위해 언론인이 감수해야 하는 위험에 공감하며 수상자들과 전세계 언론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언론인의 청렴, 정확성, 확고한 진실 추구에 대한 맹세를 다시 되새기자”고 강조했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은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은 오는 11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조직위는 앞서 지난 6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국제공모를 받아 1, 2차 심사를 거쳐 수상자를 확정했으며, 지난 9월 13일 5.18기념재단 오월기억저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상작과 수상자를 발표했다. 부문별 수상자에게는 트로피와 상금 1만 달러가 수여된다.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인권과 정의 구현 현장에서 역사를 기록하는 영상기자를 발굴하기 위해 5.18기념재단과 한국영상기자협회가 5.18의 참상을 알린 독일인 영상기자 故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이름을 따 2021년 제정한 국제보도상이다. 올해 국제공모에는 영국 BBC를 비롯해 독일, 미국, 캐나다, 말레이시아, 한국 등 전 세계 14개국 영상기자와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이 작품을 출품했다.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은 “힌츠페터 기자가 전한 ‘5.18의 진실’이 한국 시민들의 민주화의 자각과 의지를 끌어냈듯, 우리가 찾아낸 또 다른 힌츠페터들과 그들의 보도가 새로운 국제연대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원한다”며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작을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인권·평화·언론자유를 되돌아보고, 더욱 강건하게 발전하는 동력이 되면 좋겠다.”고 밝혔다.  게오르크 빌프리트 슈미트 주한독일대사도 “권력자들이 폭력을 행사할 때마다 목격자 여부를 확인하고 그 장소를 봉쇄한다”며 “불의와 억압에 투쟁이 중요한 시점에서 1980년 당시 한국인들의 용기 있는 행동과 민주주의를 향한 인식을 높이 평가하고, 이를 기록한 독일인 영상기자 힌츠페터 기자의 이름을 딴 국제보도상 진행에 감사”를 전했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11-20
  • 한국영상기자협회·5.18재단, 시상식 전후로 다양한 특별 행사 개최
    한국영상기자협회·5.18재단, 시상식 전후로 다양한 특별 행사 개최 수상자에게 직접 듣는 전쟁과 인간 이야기… 협회원과 함께하는 서울‧광주 투어 통해 국제 교류 확대 ‘기대’  한국영상기자협회(회장 나준영)와 5.18기념재단(이사장 원순석)은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들을 초청해 서울과 광주에서 다양한 특별 행사를 연다. ▶ 수상자에게 직접 듣는 ‘전쟁과 인간’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민주, 인권, 평화, 언론 자유의 위기를 현장에서 직접 취재하고 보도한 작품에 주어진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올해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작에도 영향을 미쳤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기록한 작품들이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한국영상기자협회와 5.18기념재단, 한국전파진흥협회는 직접 취재하고 보도한 영상기자들을 통해 현장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들 단체는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시상식 하루 전인 11월 7일 서울 상암동 MBC골든마우스홀에서 ‘전쟁과 인간’을 주제로 특별 세미나를 연다.  1부는 올해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들이 나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러시아 민주주의의 위기(‘기로에 선 세계상’ 수상자) △우크라이나 전쟁 한가운데서 만난 사람들(뉴스 부문 수상자) △러시아의 세력 확장과 아프리카 민주주의의 위기(특집 부문 수상자)를 직접 전한다.  2부는 국내 정치학자, 언론학자, 저널리스트들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심도 있는 분석과 견해를 내놓고, 수상자와 국내외 언론인, 시민, 학생들과 토론하는 ‘전문가 세미나’가 준비되어 있다. 전문가 세미나에는 김지용 해군사관학교 교수가 ‘전쟁과 민주주의 그리고 언론’을 주 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분석하고 해결 방안을 위한 제언을 할 예정이다.  김동석 국립외교원 교수는 최근 들어 아프리카에서 서구 세력 대신 러시아의 영향력이 커지는 현상을 진단하고, 이로 인해 생기는 문제들을 짚어볼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채영길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국제 분쟁이나 국제 문제 보도에 있어 한국 언론이 서구 거대매체에 의존하는 경향을 살피고 국제뉴스 취재·보도 관행을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점검한다.  나준영 영상기자협회장은 “이번 세미나는 협회원은 물론 언론·미디어 분야나 국제 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 시민들도 2023 힌츠페터국제보도상 수상자들이 취재하고 전한 이야기들을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자리”라며 “국제 문제 전문가들의 심도 있는 분석과 함께 우리 언론과 시민사회가 어떻게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토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영상기자협회 회원과 함께 하는 서울・광주 투어  특별 세미나를 전후로 수상자들은 영상기자협회 회원과 함께 서울과 광주 투어에 나선다. 수상자들은 11월 6일에는 국립중앙박물관, 경복궁, 광장 시장, 청계천 등을 협회 회원들과 함께 돌아보고, 교류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협회는 수도권 회원사는 물론 지역 회원사에서 도 원하는 회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독려할 예정이다. 특히 회원들이 전 일정을 수상자들과 함께하며 서울의 역사문화유산을 탐방하면서 다양한 방송·언론 분야의 소통을 통해 국제 교류가 활성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시상식 다음날인 11월 9일과 10일에는 힌츠페터국제보도상을 탄생하게 한 한국 민주화 운동의 성지 광주를 방문한다. 수상자들은 5.18민주묘지와 힌츠페터 기자의 유품이 안장된 5.18 구묘역 등 5.18 역사 현장을 탐방하고, 광주KBS와 광주MBC 프로그램에도 출연해 수상작에 대해 이야기도 나눌 예정이다. 안경숙 기자 (cat1006@naver.com)
    2023-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