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4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나열 뉴스는 독재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특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뉴스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깊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언론)이 가진 특권을 잃는다. 역설적으로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거기엔 무의미한 나열, 맹목적인 외침만이 있을 뿐이다. 독재 사회에서는 뉴스도 영화도 단지 나열에 불과하다. 거기엔 깊이와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

 

 현대사회 대부분의 영화들은 스스로 나열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빌리엘리어트에서 빌리는 흰 옷을 입은 소녀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청색 반바지를 입은 남자아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빌리는 그 안에 등장하는 소녀들, 심지어 영화 속 다른 남자들과도 다르다. 영화 속에서 춤을 추는 다른 소녀들은 주목받지 못한다. 그녀들은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같은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모든 언론사들이 앵커의 얼굴, 목소리, 뉴스 세트, 정장의 색 등에 변화를 주지만 거기엔 다름이 없다. 다른 앵커, 다른 세트, 다른 옷은 이미 동어 반복의 우리 안에 갇혀 있다.

 

 그들의 열띤 나열에는 다름이 없다. 나열하는 뉴스에는 본디 시선과 시각, 주관성과 철학이 있을 수 없다. 개별자의 생각, 날카로운 시선이 결여되어 뉴스는 밍밍한 맛을 낼 뿐이다. 다름이란 치열한 자기 깎기의 결과물이다. 달라지기 위해 하나의 대상을 치열하게 깎고 또 깎아야 한다. 나열의 형식은 본디 개별자의 이러한 깎는 수고를 덜어준다. 나열은 깎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충실하게 더하는 일이다. 더함으로써 날카로움을 잃는 대신 안전함, 즉 위험성으로부터의 해방을 얻는다.

 

 나열 뉴스에서, 경쟁이란 무엇이 빠졌는가만을 말한다. 만약 다른 데는 AB를 가지고 있는데 내가 A만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다. 나는 왜 B를 가지지 못했는가? 기자들이 흔히 쓰는 물 먹었다는 표현은 자기 수중에 B가 없기에 오늘 충실한 나열에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열의 게임에서 재미를 보는 것은 역설적으로 자기 자신, 바로 언론뿐이다. 내가 왜 이 채널을 보는가? 채널을 선택한 수용자(시청자)에게는 실익이 없다. 어느 채널이든 뉴스를 지켜보는 것 자체가 악몽이다. 수용자들은 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풍경만이 펼쳐지는 끔찍한 동화의 주인공이 되어야만 한다.

 

 서점은 다름의 천국이다. 다양성이야말로 서점의 생명이다. 한 주제, 한 영역, 하나의 사건에 대해 보는 이마다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았기에 손님에게 선택의 재미가 생긴다. 대한민국 뉴스는 다름이 없기에 손님의 발길이 끊겼다.

 

 대한민국 뉴스엔 무엇보다 깊이가 결여돼 있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모두 날카로운 것이다.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끝을 날카롭게 다듬어야 한다. 뭉뚝한 것은 표면 위에서 깨지고 부서진다. 성역이란, 표면에서 깨어지고 부서질 뿐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없는 장소다. 성역은 날카로움이 없는 공간, 즉 선진국보다는 후진국, 민주화가 덜 된 사회, 부패한 국가, 봉건적인 조직에 더 자유롭게 자리한다. 성역이란 언제나 날카로움이 없는 언론과 한 쌍이다. 성역이 굳건한 곳마다 반드시 창끝이 무딘 언론이 있기 마련이다. 언론의 창끝이 뭉뚝해서 그저 표면 위에서 적당히 깨지고 적당히 부서지기 때문에 성역은 유지된다.

 

  AB, C 중에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가가 아니라 A1, A2, A3... 혹은 A’, A”, A’”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BC가 없어야 한다. BC는 더 깊이 들어가야만 하는 A를 위해 제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열의 경쟁보다 훨씬 위험하다. 나열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이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로 수용자들은 즐거움과 행복을 되찾게 된다. 거기엔 다름이 있고 깊이가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 편집장    김정은.jpg


 

 

 


  1.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나열 뉴스는 독재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특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뉴스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깊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언론)이 가진 특권을 잃는다. 역...
    Date2019.07.02 Views64
    Read More
  2. 이상한 출장

    이상한 출장 “카메라 기자 인생 30년에 가장 굴욕적이었어.” “오죽했으면 내가 출장기간에 억울한 부분을 하루하루 메모를 해놨다니까.” “이런 출장 인지도 모르고 갔지.” “갔다 와서 엄청 싸우고 다신 안 간다고 ...
    Date2019.07.02 Views65
    Read More
  3.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영역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영역 ▲ 아리랑국제방송 스튜디오 ‘아리랑국제방송’은 국내에서 ‘국제방송’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방송 중인 거의 유일한 채널이다. 어느덧 개국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긴 세월이 말...
    Date2019.07.02 Views60
    Read More
  4.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현재의 MNG(Mobile News Gathering)는 고화질 원본 영상을 HEVC 코덱(H.265)으로 압축한다. 모바일 통신망(LTE, 3G 등)을 통해 송출하는‘ 저용량 고효율’ 방식을 사용한다. 불과 1~2Mbps의 대...
    Date2019.07.02 Views24
    Read More
  5. 기억의 상처를 안고

    기억의 상처를 안고 ▲ 한강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시커멓게 변한 한강은 점점 수위를 높이며 주변 공원들을 삼켜나갔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폭우에 취약시설이 붕괴되고 저지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
    Date2019.07.02 Views18
    Read More
  6. 뉴미디어 새내기가 본 영상기자의 역할

    뉴미디어 새내기가 본 영상기자의 역할 뉴미디어 부서 생활 6개월, 이곳에 있다 보니 영상기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뉴스 영상을 책임진다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우리가 만들던 뉴스가 TV를 벗어나 여러 형태로 확장되면...
    Date2019.07.02 Views34
    Read More
  7. 나열하려는 욕망의 바닥

    나열하려는 욕망의 바닥 하루 중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난도 높은 일이다. 어떤 사건이 뉴스 가치가 높은가? 누가 혹은 누구의 말이 오늘 더 집중 조명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개인마다 천차만...
    Date2019.05.08 Views86
    Read More
  8. 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몇 달 된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지난 2월 1일, 수도권 상공에 헬기 2대가 떴습니다. 매년 한다는‘ 경찰청 설 명절 고속도로 교통상황 및 귀성길 장면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상황이 대...
    Date2019.05.08 Views85
    Read More
  9. 기독교계 뉴스 취재 현장의 실상

    기독교계 뉴스 취재 현장의 실상 기독교 뉴스 CBS 뉴스는 기독교계 내부의 일반적인 영역만을 다루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이슈와 사건들이 한국 기독교계를 통해 어떻게 재해석되고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
    Date2019.05.08 Views79
    Read More
  10. 다시 찾아온 기회 그리고 설렘

    다시 찾아온 기회 그리고 설렘 2017년 4월 KBS 대전방송총국을 떠나 인구 10만의 작은 시골도시 충남 홍성으로 내려왔다. 내겐 입사 후 2번째 순환근무 지정이었다. 취재기자 2명과 영상기자 1명(나)이 7개 시, 군 지자체와 도청, 교육청 그 관련 기관들을 모...
    Date2019.05.08 Views32
    Read More
  11. 뉴스는 건축이다

    뉴스는 건축이다 국회 의사당 기본설계 자리를 지킨 건축은 시대를 증언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것은 하나의 기호다. 시간을 거슬러, 오늘도 사라지지 않고 유구히 존재한다. 건축물을 통해 인간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 시점의 방향성을 얻는다. 만약 영상기자가...
    Date2019.05.08 Views27
    Read More
  12. ‘가난의 포르노’ 그리고 소수자들

    ‘가난의 포르노’ 그리고 소수자들 연말 세상은 미디어의 전쟁터이다. 크리스마스의 화려 한 조형물과 캐롤, 휘황찬란한 조명과 광고들의 홍수 사 이로 기업들은 판촉활동에 열을 올리고, 각종 미디어 기 업들은 특집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시청자들...
    Date2019.03.08 Views191
    Read More
  13. 2019년, 다시 영상저널리즘을 생각한다

    2019년, 다시 영상저널리즘을 생각한다 올 한해는 나라나 회사나 나에게도 많은 일이 일어났던 한해였다. 파업으로 (내 인생의 마지막 파업이라 명명했다) 2017년의 절반을 길바닥에서 보내고 회사로 돌아오니 영상편집부장 업무가 맡겨졌다. 부서를 추스를 겨...
    Date2019.01.03 Views935
    Read More
  14. 한국의 전략가들이 주시해야 하는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한국의 전략가들이 주시해야 하는 미국의 전통적 대외정책 지난 6월 12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렸다. 그러나 회담 이후 북미 관계는 교착상태에 빠져있다.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거 정권 교체 대...
    Date2019.01.03 Views1254
    Read More
  15. 영상기자의 현재와 미래

    영상기자의 현재와 미래 한국영상기자협회 편집위원 김정은 기자(KBS)가 영상기자들 이 현재에 무엇을 해야 하고 미래에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영 상기자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 이번 호부터 총 4편의 글을 영 상기자(협회보)에 게재한다. 제1편 행위와 ...
    Date2019.01.03 Views635
    Read More
  16. 52시간 근무제를 바라보는 지역방송사 현실

    52시간 근무제를 바라보는 지역방송사 현실 오늘도 시간 외 근무를 신청했다. 아무 리 발버둥을 치고 빠릿빠릿하게 움직여 봐도 시간 외의 울타리에서 벗어날 수 없 었다. 하루에 리포트 두 개를 제작하고, 틈나는 대로 미세먼지 날씨 스케치를 해 야 하고, 편...
    Date2019.01.03 Views92
    Read More
  17. 2018년을 돌아보며

    2018년을 돌아보며 퇴근길에 이모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김장할 정신도 없을 것 같아서 이모가 해 놓았으니 시간 될 때 찾아가라는 내용이 었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고 보 니, 올해도 저물어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부 캡을 맡은 지도 1...
    Date2019.01.03 Views60
    Read More
  18. 새해를 맞아 다짐하는 세 가지

    새해를 맞아 다짐하는 세 가지 다사다망(多事多忙). 2018년 직장인들 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일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쁨’을 뜻한다. 보름도 채 남지 않은 나의 2018년을 되돌아봤 다. 1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4.27 남북정상회담,...
    Date2019.01.03 Views75
    Read More
  19. [2019년 각오] ‘왜 하필’의 가치를 고민하는 시간

    ‘왜 하필’의 가치를 고민하는 시간 “왜 하필?”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12월 4일, 백석역에서 온수관이 파열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파 주의보가 발령된 평소보다 추운 날이었다. 온수와 난방 작동이 멈춘 몇몇 가정을 방문해 취재...
    Date2019.01.02 Views81
    Read More
  20. 그림을 그리자

    그림을 그리자 (중략) 점점 이 일을 하면 할수록 그 원류를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는 것이다. 사진이나 영상이나 그 기록의 힘과 속기 성을 따라갈 매체가 아직 없지만 대상을 관찰해서 특성을 파악해 다시 재현한다는 관점, 즉 재해석의 관점에서 ...
    Date2019.01.02 Views56
    Read More
  21. 채널2의 사회학

    채널2의 사회학 모두가 알다시피 채널 2는 현장음을 수신하는 채널이다. 기자의 의도가 확실히 담겨 특정한 목소리를 담아내는 채널1과 달리 채널 2는 의도되지 않는 현장의 소리가 담긴다. 이런 채널의 속성을 매체와 사회의 관계 문제로 가져가게 되면 두 채...
    Date2018.12.19 Views8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