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2 10:54

기억의 상처를 안고

조회 수 325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인쇄 첨부

기억의 상처를 안고

 

 

(사진)기억의 상처를 안고.jpg

▲ 한강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시커멓게 변한 한강은 점점 수위를 높이며 주변 공원들을 삼켜나갔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폭우에 취약시설이 붕괴되고 저지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이어졌다. 턱 밑까지 물이 차오른 팔당은 견디다 못해 수문을 열었다. 커다란 입에서 쉴 새 없이 흙탕물이 뿜어져 나왔다. 방류를 시작한 댐과 침수 위험에 노출된 주변 마을... .

 

 취재를 위해 차에 올라탔다. 잿빛으로 변해버린 강을 거슬러 한참을 올랐다. 거센 빗줄기가 차창을 때렸다. 늘 보던 한강의 모습이 아니었다. 공원의 농구 골대엔 수림만 겨우 보였다. 비가 얼마나 내린 걸까? 겁이 덜컥 났다.

 

 땀이 난 손으로 카메라를 부여잡고 2시간쯤 달려 댐에 이르자 응급구조 차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차에서 얼른 내려 구조대원에게 물었다. 그는 별 말없이 손가락을 쭉 뻗어 시커먼 강가 수풀 쪽을 가리켰다. ‘등’이었다. 사람의 등. 발뒤꿈치부터 정수리까지 모든 세포가 빳빳하게 서는 기분이었다.

 

 물 위에 둥둥 뜬 등은 중년 남자의 시신이었다. 곧이어 또 한 대의 구급차량이 도착하고 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황급히 강가로 갔다. 댐에서 가까운 유속이 빠른 상류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구조대원들까지 전부 휩쓸려 내려갈 수 있는 긴박한 상황이었다. 시신 수습에는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물을 잔뜩 머금은 시신은 무겁고 미끄럽다고 했다. 구조대원들이 로프로 시신의 허리와 팔다리를 감아서 뭍으로 간신히 끌어올렸다. 거대한 나무줄기를 당겨 올리듯 구조대원 대여섯 명이 맞잡고 안간힘을 썼다.

 

 뭍으로 올라온 시신은 익사 후 시간이 꽤 흐른 듯 보였다. 시신은 사후 경직으로 인해 팔을 앞으로 곧게 뻗은 채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물에 빠질 당시에 입고 있던 반팔 상의와 짧은 바지 그리고 샌들까지 그대로였다. 마네킹처럼 핏기없는 새하얀 팔다리가 옷가지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다. 카메라 영상으로 담기는 했지만, 뉴스로는 내보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에 고개를 돌렸다.

 

 과학수사대의 간단한 현장 부검과 사망 판정 후 시신은 구급차에 실려졌다. 경찰은 며칠 전 가평에서 불어난 강물에 실족으로 인해 휩쓸려 실종된 50대 남성이라고 추정했다. 구조에서 시신 수습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내가 본 장면들이 너무도 강렬하게 남았다. 주변에 최초 목격자와 경찰을 인터뷰 했다. 어느 순간 발을 떼려는데 카메라에 얹은 손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부지불식 간에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갔던 모양이다.

 

 차를 돌려 서둘러 서울로 복귀하는데 허탈감이 밀려왔다. 비에 젖은 옷가지는 금세 말랐지만, 현장의 끔찍한 기억이 한동안 머릿속을 헤집으며 나를 괴롭혔다.

 

 이듬해 여름, 결혼을 앞두고 와이프와 신혼집 청소를 하기로 했다. 청소도구를 사서 약속 시각보다 한 시간 먼저 아파트로 향했다. 주차장 출구 쪽 화단 앞에 경찰들과 주민 몇몇이 모여 있었다. 슬쩍 끼어들어 살펴보니 투신 현장이었다. 아파트 10층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자신의 집 테라스에서 몸을 던진 것이다. 추락하면서 부딪혀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있었고 시신은 화단에 쓰러져 있었다. 1년 전 팔당에서 본 시신이 생각났다. 트라우마 탓인지 (카메라도 쥐고 있지 않은) 오른손이 또 다시 굳어졌다. 속이 울렁거렸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변 상황을 찍고 최초 발견자와 평소 가깝게 지냈다던 지인들을 인터뷰 했다. 휴대전화기를 쥔 손이 계속 떨렸다. 투신자는 통장으로 활약할 만큼 평소 동네에서도 활달한 성격이었지만 근래 들어 급작스럽게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했다. 아마도 끝내 우울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서 투신하여 목숨을 끊은 듯했다.

 

 당직자에게 내용을 보고하고 신혼집으로 올라왔다. 투신 사고 취재가 처음은 아니다. 아주 끔찍한 사고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그것도 사고 직후에 모든 장면을 목격하게 될 줄을 몰랐다.

 

 그곳에서 2년을 살면서 그 화단을 지날 때마다 과거가 소환되었다. 팔당댐 익사사고와 투신사고와 겹쳐져 투영됐다. ‘그냥 지 나칠 걸, 못 본 척하고 가던 길을 갈 것을......’ 끔찍했던 당시 기억이 떠오를 때면 후회도 했다.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귀가 때마다 화단을 빙 돌아서 가기도 했다.

 

 ‘트라우마’는 의학적 용어로 큰 범주의 ‘외상’을 의미한다. 심리학에서는 트라우마를 ‘정신적 외상’, 즉 영구적인 정신장애를 남기는 충격으로 규정짓는다. 강렬한 경험에 따른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기억에서 지울 수 없는 내상을 입는 것.

 

 참혹한 사건 현장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영상기자들은 늘 ‘트라우마’ 가운데 살아간다. 비슷한 취재 환경에 놓이거나, 훗날 사건 현장을 다시 지날 때,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런저런 기억의 퍼즐들로 힘겨워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그라져 갔을 생명들. 그들을 제때 도와주지 못한 도의적 책임, 혹은 죄의식. 눈을 감기엔 너무 이른, 꿈과 미래가 창창한 가녀리고 여린 생명들, 그들을 떠나 보내는 슬픔. 남겨진 가족들의 찢어지는 고통....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라질 줄 알았던 기억 조각들은 가슴 깊숙이 박혀서 때가 되면 또다시 아물지 않고 욱신거린다. 영상기자들 중엔 정기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받는 이들도 다수 있다. 현장을 거부하거나 마다할 수가 없어 생긴 상처들 때문이다. 영상기자들의 직업적 숙명이기도 하다. 기자는 힘과 용기가 있어야 하며 현장에 대한 목격자로서 기민해야 한다고 배웠다. 현장을 거치며 생긴 마음의 상처들은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씨앗이라고 생각하라고. 그 씨앗이 지금은 싹을 틔우기 위한 몸부림으로 힘겹지만, 분명 밝은 미래로 아름답게 꽃 피워 보답해 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되기를 바랄 수밖에. 조각조각 쓰라린 가슴 한편으로 우리는 또 다른 트라우마를 심는다.

 

 

김원 / MBN    (증명사진) 김원.jpg

 

 

 

 

 


  1. 일반인과 연예 나영석 PD와 김태호 PD의 전략

    일반인과 연예 나영석 PD와 김태호 PD의 전략 나영석 2018년 6월 18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칸 라이언스 세미나’. 나영석 PD는 거기서 외국인을 상대로 강연을 했다. 한국에서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이 어떻게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가? 이를 주제...
    Date2020.01.08 Views326
    Read More
  2. 겨울에 시도해 볼 만한 소소하게 와인 마시기

    겨울에 시도해 볼 만한 소소하게 와인 마시기 ▲ MBN 부서원들과 와인 모임을 가졌다(사진 왼쪽 맨 앞이 필자). 삼겹살에 소주, 그리고 와인 한잔. 유난히 술 한 잔이 생각납니다. 그간 건강을 위해 술을 자제해 왔지만 뭐 추운 겨울이잖아요. 저와 일행은 이태...
    Date2020.01.08 Views294
    Read More
  3. 스마트폰 중계, 또다른 도전의 시작

    스마트폰 중계, 또다른 도전의 시작 ▲ 스마트폰 중계를 하는 아리랑TV 현장 분위기 방송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진화 중이다. 어느새 UHD 화질이 대중화되어가고 있고, 송출도 LTE에서 5G로 발전 중에 있다. 뉴스 영상취재 역시 마찬가지다. 방송 기술 발전의 ...
    Date2019.11.06 Views376
    Read More
  4. [줌인] 고(故) 안정환 선배를 추모하며

    고(故) 안정환 선배를 추모하며 동료들이 검은 옷을 입고 모인 빈소. 차고 건조한 느낌의 형광등 불빛 아래 놓인 영정사진. 그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람. 왜 그랬는지, 무슨 상황에서였는지 선배는 엄지를 치켜세우고, 비현실적인 미소를 짓고 있다. 지난...
    Date2019.11.06 Views438
    Read More
  5. 워킹대디도 힘들어요

    워킹대디도 힘들어요 ▲ OBS 강광민기자 가족 워킹맘은 힘듭니다. 육아만 하는 것도 너무 힘든데 직장 일까지 같이 해내는 엄마들은 얼마나 더 힘들까요? 이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최근에 남성의 육아 참여가 늘어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
    Date2019.11.06 Views311
    Read More
  6. [줌인] 수색꾼에게 필요한 것, 단 한 명의 친구, 동지

    수색꾼에게 필요한 것, 단 한 명의 친구, 동지 역사적으로 봐도, 진실과 정의는 언제나 높은 곳에 감춰져 있었다. 그것이 알려지거나 폭로되면 불편해지는 이들이 높고 깊고 후미진 데에 진실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사실일수록 우연히 땅에 떨어...
    Date2019.09.09 Views322
    Read More
  7. 무분별한 운영, 드론의 위험성

    무분별한 운영, 드론의 위험성 ▲ 지난 7월 18일 한 방송사에서 대구 스크린골프장 화재현장을 감식하고 있는 소방대원의 가까이에 드론을 날리고 있는 장면 4차 산업의 아이콘으로 주목받고 있는 드론은 손쉽게 온·오프라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소방...
    Date2019.09.09 Views431
    Read More
  8. [초상권] 살인하면 영웅이 되는 나라

    살인하면 영웅이 되는 나라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모텔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장대호(38)라는 사람이 투숙객 A씨와의 다툼 끝에 살인을 했다. 범행 동기에 대해서 그는 추호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반말을 했고, 숙박비 4만 원을 주...
    Date2019.09.09 Views330
    Read More
  9.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판문점 북미정상회담과 보도영상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이 열렸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만나는 순간이 라이브로 전파를 탔다. 이전 라이브 영상처럼 정제되지 않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TV 화면이 보는 이에...
    Date2019.09.09 Views223
    Read More
  10. 호모 비디오쿠스는 진화 중

    호모 비디오쿠스는 진화 중 내가 KBS에 입사한 2006년. KBS 9시 뉴스 시청률은 보통 20% 초중반, 잘 나올 땐 30%가 넘었다. 2019년 현재, 시청률은 반 토막이 났다. 다행인 것일까? 아직 시청률은 1위를 고수하고 있으니. 우리가 즐겨보는 네이버뉴스에서 KBS...
    Date2019.09.09 Views417
    Read More
  11. MNG가 바꿔놓은 풍경

    MNG가 바꿔놓은 풍경 2017년 8월. ‘혹시 모르니까.’ 전국이 이글이글 불타고 있던 대한민국보다 조금 더 기온이 높은 필리핀으로 ARF(아세안 지역 포럼)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혹시 모르니까’ 하는 생각으로 MNG 장비를 챙겼다. 데...
    Date2019.09.09 Views487
    Read More
  12. TV, 올드미디어일까?

    TV, 올드미디어일까? 역사적인 사건의 현장에 서는 순간마다 내가 영상기자가 된 것을 실감한다. 대중의 관심을 받는 사건의 현장마다 취재진이 몰려든다. 빼곡히 채워진 포토라인, 그 사이에 서 있을 때면 긴장감을 느낀다. 동시에 내가 영상기자란 것, 역사...
    Date2019.09.09 Views285
    Read More
  13. 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우리는 바다에 늘 손님입니다 “잡았다!”, “꿀맛!”. ‘생존 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모 예능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하는 자막이다. 문명의 손길이 덜 미친 촬영지에서 출연자들이 자급자족하고 지내며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이 제...
    Date2019.09.09 Views278
    Read More
  14. [줌인]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다름과 깊이가 있는 뉴스 나열 뉴스는 독재 시대의 욕망을 반영한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특권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특권을 지속시키기 위해 뉴스는 깊이 들어갈 수 없다. 독재 사회에서 뉴스는 깊이 들어가는 순간 그들(언론)이 가진 특권을 잃는다. 역...
    Date2019.07.02 Views447
    Read More
  15. 이상한 출장

    이상한 출장 “카메라 기자 인생 30년에 가장 굴욕적이었어.” “오죽했으면 내가 출장기간에 억울한 부분을 하루하루 메모를 해놨다니까.” “이런 출장 인지도 모르고 갔지.” “갔다 와서 엄청 싸우고 다신 안 간다고 ...
    Date2019.07.02 Views400
    Read More
  16.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영역

    아리랑 ‘영상기자’만이 갖는 독특한 영역 ▲ 아리랑국제방송 스튜디오 ‘아리랑국제방송’은 국내에서 ‘국제방송’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방송 중인 거의 유일한 채널이다. 어느덧 개국한 지 20여년이 흘렀다. 긴 세월이 말...
    Date2019.07.02 Views403
    Read More
  17.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 영상기자와 MNG 저널리즘 현재의 MNG(Mobile News Gathering)는 고화질 원본 영상을 HEVC 코덱(H.265)으로 압축한다. 모바일 통신망(LTE, 3G 등)을 통해 송출하는‘ 저용량 고효율’ 방식을 사용한다. 불과 1~2Mbps의 대...
    Date2019.07.02 Views995
    Read More
  18. 기억의 상처를 안고

    기억의 상처를 안고 ▲ 한강에서 구조대원들이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몇 날 며칠을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시커멓게 변한 한강은 점점 수위를 높이며 주변 공원들을 삼켜나갔다. 그칠 줄 모르고 내리는 폭우에 취약시설이 붕괴되고 저지대가 침수되는 사고가 ...
    Date2019.07.02 Views325
    Read More
  19. 뉴미디어 새내기가 본 영상기자의 역할

    뉴미디어 새내기가 본 영상기자의 역할 뉴미디어 부서 생활 6개월, 이곳에 있다 보니 영상기자의 역할이 어디까지인가 고민하는 일이 잦아졌다. 물론 뉴스 영상을 책임진다는 일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우리가 만들던 뉴스가 TV를 벗어나 여러 형태로 확장되면...
    Date2019.07.02 Views568
    Read More
  20. 나열하려는 욕망의 바닥

    나열하려는 욕망의 바닥 하루 중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난도 높은 일이다. 어떤 사건이 뉴스 가치가 높은가? 누가 혹은 누구의 말이 오늘 더 집중 조명될 필요가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개인마다 천차만...
    Date2019.05.08 Views331
    Read More
  21. 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매년 반복되는 풍경 헬기 위 영상취재 몇 달 된 이야기를 꺼내 봅니다. 지난 2월 1일, 수도권 상공에 헬기 2대가 떴습니다. 매년 한다는‘ 경찰청 설 명절 고속도로 교통상황 및 귀성길 장면 취재’를 위해서였습니다. (상황이 대...
    Date2019.05.08 Views371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CLOSE